욕심 많고 거짓말 잘하는 세속적인 '뺑덕어멈'이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탄생했다.

고전소설 <심청전>을 모티프로 한, 영화 <마담 뺑덕>은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한 여자, 그리고 그의 딸 사이를 집요하게 휘감는 사랑과 욕망, 집착의 치정 멜로로 변신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정우성과 묘한 매력을 지닌 신인 배우 이솜에 대한 기대로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마담 뺑덕>은 심청의 효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만 흐릿하게 그려졌던 심학규와 뺑덕 어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불러내, 사랑과 욕망, 집착이라는 적나라한 인간의 감정을 덧입혔다. 영화 속 '덕이'는 점점 더 센 수위의 욕망을 좇다가 눈이 멀어가는 심학규를 통해 순진한 처녀에서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버림받고 복수를 꾀하는 악녀로 변해간다.

▲ 영화 <마담 뺑덕> (영화사 제공)

영화는 '지독한 사랑'이라는 주제에 억지로 <심청전>을 끼어 맞춘 느낌이다. 심청전을 치정 멜로극으로 뒤바꾼 시도는 훌륭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막장드라마'를 영화로 옮겨왔다는 아쉬움이 크다. 고전소설 속 심청이는 효심 지극한 딸이지만, <마담뺑덕>의 심청은 효성과는 그다지 관련도 없다.

현대판 심청이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무서운 딸이지만, 고전 소설 속 심청이는 눈먼 아버지를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효심 깊은 딸이었다. 그런데 이 심청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효심 깊은 딸의 이야기를 넘어,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 고전소설 '심청전'을 모티프로 한 <마담 뺑덕>이 치정 복수극으로 변신했다.(이미지=영화사 제공)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는 옛날 황주 도화동의 이름난 유학자였다. 그는 서른도 되기 전에 병에 걸려 장님이 된다. 어느날 심 봉사는 다리를 건너다 개천에 빠진다. 지나가던 화주승이 심 봉사를 구하며, "명월산 운심동 개법당(開法堂) 부처님께 공양미 300석을 바치면 눈을 뜰 것"이라고 알려준다. 사찰의 이름 '개법당’은 '법을 열다'의 뜻으로, 심봉사가 단순히 사물을 보는 눈(目)이 아닌 자기 안의 '참된 눈(目)'을 떠야 함을 의미한다.

심청은 기꺼이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印塘水)에 빠진다. 인당수가 어디에 소재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인간의 신체에도 인당이 있다. 양 눈썹 사이 바로 위 오목한 곳에 위치한 '인당(印堂)'은 천목혈(天目血) 즉, 하늘의 눈을 의미한다. 이 혈의 기능이 활발해지면 통찰력과 투시력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인당수에 빠졌고 이윽고 새로운 눈을 떴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했다. 황후가 된 심청이는 전국에 있는 맹인들을 위한 잔치를 크게 연다. 그곳에서 딸과 재회하게 된 심 봉사는 딸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눈을 비비자 눈이 턱 하니 떠진다.

기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심 봉사가 눈을 뜨자 여기저기서 맹인들이 하나둘 눈을 뜨더니 모든 맹인이 눈을 뜬다. 판소리 <심청가> 중 심 봉사가 눈 뜨는 대목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내려가는 봉사들도 제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 한 맹인 중도에서 눈을 뜨고,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앉아 뜨고, 누워 뜨고, 서서 뜨고, 화내다 뜨고,
울다 웃다 뜨고, 자다 깨다 졸다 번뜩 뜨고, 눈을 꿈적거리다 뜨고,
눈을 부비다가도 뜨고, 지어 비금주수(飛禽走獸)까지 눈을 떠서 광명 천지가 되었구나.

미처 잔치에 도착하지 못한 맹인들까지 길에서 눈을 뜬다. 행복한 결말을 위한 심한 과장일 수도 있지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가진 한민족다운 결말이기도 하다.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큰 선택을 실행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며 깨닫는다. 심 봉사 또한 딸을 통해 관념의 틀을 깨고 깨닫게 되고, 주변 사람들까지 자기 안의 새로운 눈을 뜨고 깨닫는 것이다.

고전소설 <심청전>은 모든 사람 안에 내재되어 있는 깨달음이 대중화되는, 실로 이상적인 인간 사회를 구현했다. 그러나 현대로 옮겨 와서는 치정 복수극으로 전락한 것만 같아 영화를 보고 오는 내내 씁쓸했다.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