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평균적으로 뇌의 10%만을 사용한다"는 대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 ‘루시(Lucy)'. 영화는 '10%'라는 지점에서부터 그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간다. 영화 속 논리에 따르면 뇌 사용량 24%가 되면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고 40%가 되면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 62%에 이르면 타인의 행동을 컨트롤하게 되고, 궁극의 100%가 되면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진화'가 이뤄진다.

'루시'의 제작과 연출, 각본까지 모두 도맡은 뤽 베송 감독은 시사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배트맨은 자기 뇌의 12%를, 슈퍼맨은 50%를 사용했다. 뇌를 100% 온전히 다 사용하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증'에서 시작해 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캐릭터 '루시'가 탄생했다. 평범한 삶을 살던 여자 루시(스칼렛 요한슨)는 어느 날 지하 세계에서 극악무도하기로 유명한 미스터 장(최민식)에게 납치된다. 루시는 몸속에 강력한 합성 약물(C.P.H.4)을 넣은 채 강제로 ‘마약 운반책’이 된다. 다른 운반책들과 같이 어딘가로 끌려가던 루시는 갑작스러운 외부의 충격으로 합성 약물이 체내로 퍼지게 된다. 그 일로 인해 루시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면서 그녀의 삶이 180도 달라진다.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소재인 '초능력자'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그저 그런 영화 중 하나, 그 이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영화가 말하는 오류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오류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때문이다.


인간은 평균적으로 뇌의 10%만을 사용한다?


이 영화에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이유, 영화 '루시'의 오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자. '루시'의 대전제는 '인간의 평균 뇌 사용량은 10%다'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영화 포스터에도, 영화 소개 문구에도, 영화 속 뇌 학자인 모건 프리먼이 수업하는 장면에서도 수차례 등장한다. 게다가 돌고래는 뇌의 22%를 사용한다며 인간보다 돌고래가 뇌를 더 잘 사용한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정말 나와 당신과 같은 '평균적인' 인간들은 자기 뇌의 10%만을 사용하면서 사는 것일까? 우리가 '천재'라고 말하는 아인슈타인 정도는 되어야 뇌를 10% 이상 쓸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미국의 심리학과 교수들이 공동 집필한 책 《보이지 않는 고릴라 (The Invisible Gorilla)》에 따르면 일반인들은 물론, 심지어 상당수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도 이른바 '10% 신화'라 불리는 이 개념을 사실이라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뇌 전체를 사용한다. 사용되지 않는 뉴런은 죽고, 쓰지 않는 뇌 회로는 위축된다. 뇌에서 일부 영역에만 불이 들어온 것처럼 찍힌 뇌 영상 이미지가 이런 잘못된 통념이 자리 잡는데 한 몫 했을 수 있다. 뇌 영상 이미지에서 불이 켜져 있는 부분(색이 있는 부분)은 해당 뇌 영역의 활동량이 기준치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검은색으로 찍힌 부분이 우리가 사용하지 못하는 뇌의 나머지 90%는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뇌 전체를 사용한다는 것이 뇌의 모든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뇌를 100% 사용하지만, 뇌의 잠재력을 모두 깨워내서 100% 활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조건 속에서도 뇌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은 없을지라도 뇌를 끊임없이 계발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삶이 다르듯이 말이다. 잠재성 계발 측면에서 보자면 ‘10% 뇌사용’은 굳이 틀린 말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뇌과학적 진실과 영화의 대전제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여 영화 '루시'를 그저 허무맹랑한 상상력의 집합이라고 치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영화 루시는 '10% 신화'를 넘어서는 통찰과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뇌과학적 진실과 상관없이, 루시는 100%를 향해 쉼 없이 질주한다. 뇌의 20%를 쓰게 된 루시는 자신의 몸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진화에서 혁명으로(from evolution to revolution)"라는 대사를 던진다. 루시가 경험하는 '진화'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점진적인 변화'라는 뜻의 진화를 넘어 '급격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뜻하는 '혁명'이 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은 자신의 뇌를 20% 넘게 쓰게 되는 순간부터 뇌에 '장애'가 없어진다는 것. 즉, 뇌의 '무한확장'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지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루시는 합성 약물의 힘을 빌림으로써 '이해'라는 단계를 생략하고 뇌의 무한확장에 다가가게 된다. 존재의 무한함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경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존재의 무한함을 이해하게 된다면? 뇌의 무한확장은 미스터 장이 죽도록 찾아 헤매는 강력한 합성 약물 C.P.H.4가 없어도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된다.


뇌를 100% 사용하게 된 루시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
"I'm Everywhere. (나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루시의 합성 약물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책 《뇌 안의 위대한 혁명 B.O.S》에서 찾아보았다. 'B.O.S'란 뇌운영시스템(Brain Operating System)이다. 누구나 뇌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운영시스템 OS가 있어야 컴퓨터가 제 기능을 다 하듯, 인간의 뇌도 보스(BOS)를 통해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보스, 즉 뇌운영시스템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나의 뇌를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 아는 것이다. 평범했던 루시가 비범한 초인적 존재가 되었듯이, 우리가 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존재의 무한함을 이해하는 '두뇌 사용 설명서', 보스를 통해 이해의 폭이 커지고 그만큼 뇌의 능력치가 확대되는 것이다. "혼돈을 만든 것은 지식이 아니라 무지"라는 영화 '루시'의 대사처럼, 제대로 앎으로써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영화 '택시'에서 봤던 박진감 넘치는 도심 차량 질주 신(scene)도,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으로 분한 미스터 장의 훌륭한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봐도 손색없을 화려한 액션 신도 있다. 영화 중간중간 다큐멘터리와 같은 화면들이 교차되면서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한 장면을 보는 기분도 든다.

하지만 영화 '루시'의 진가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 전달되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루시는 삶에 대하여, 좀 더 깊이 보자면 생명, 좀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세포 자체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관객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마저도 초월해버린 '루시'는 "I'm everywhere"라는 한 마디로 답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글. 강만금 sierra_leon@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