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이 때 아닌 역풍을 맞았다. 

경상우수사 배설 장군의 후손들이 제작진을 상대로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배 장군은 이순신 장군의 암살을 시도하고 거북선을 불태운다.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후손 측의 입장이다. 이들은 지난 15일 경북 성주경찰서에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 전철홍 작가, 원작 소설가 김호경 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창작의 자유인지 아니면 죄로 봐야 할지는 네티즌 사이에서도 설전이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서 배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오늘 새벽에 배설이 도망갔다’라고 적었다. 이어 배설은 정유재란이 끝난 뒤 권율 장군에게 붙잡혀 참수됐다. 그러나 훗날 조정에서는 그의 무공을 인정해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싸운 12척의 배는 배설이 칠천량해전에서 보존해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설의 공(功)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논란의 아쉬움은 모든 문제를 법으로만 해결하는 데 있다. 배설 장군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전쟁에서 어떠한 공을 남겼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중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배설 장군을 대중에게 올바르게 알리는 것은 명예를 찾는 것만큼 중요하다.

또한 역사와 창작물의 관계다. 이에 대해 2011년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PD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사극에 나타난 역사인식’에서 논의됐다.(기사 바로가기 클릭)

이창섭 한국PD연합회장은 “역사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로 재구성한 것”이라며 “드라마로 활용하기 위한 역사적 변용의 뜻으로 (역사왜곡이 아니라) ‘극적 변용’을 써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는 사실이므로 진실인데 반면 드라마는 허구이기 때문에 거짓이라는 것은 근대 사실주의 이분법”이라며 “이를 해체하지 않는다면, 역사가와 사극제작자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역사와 영화 속의 배설 장군을 선악(善惡)으로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이는 후손과 제작진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과 같다. 

올해 극장가는 사극이 점령했다. ‘역린’, ‘군도’, ‘해적’에 이어 ‘명량’의 1,700만 명 돌파가 그것이다. 덕분에 관련 책도 많아지고 있다. 이는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한 점에서 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손의 고소 공방을 통해 제작진은 고증에 힘써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있다.

한 가지 바람은 배설 장군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는 것이다. 일기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본 이순신 장군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 전혀 다를 수도 있으니깐. 그러한 자료가 많아진다면 사극 드라마나 영화도 더욱 탄탄하게 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