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테리 길리엄 감독이 4년 만에 선보인 영화 ‘제로법칙의 비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더 마스터스 섹션 초청작이자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돈, 명예, 성공, 행복, 사랑 등 사람마다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는 각각 다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 가치가 바로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한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삶의 의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한 평생을 바쳐 찾은 삶의 의미가 ‘의미 없음’이라면?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 텐가. 영화 ‘제로법칙의 비밀’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삶의 본질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Life is Nothing,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 영화는 왜 그토록 소중한 인생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영화의 주인공은 연산 시스템 회사인 맨컴에서 일하는 코언 레스(크리스토프 왈츠). 그는 매일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며 살던 어느 날 특별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삶의 의미를 알려주겠다는 전화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엄청난 힘을 느끼며 급당황, 그만 전화를 떨어뜨리고 만다. 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구해줄 기회였기에 끊어진 전화가 안타깝기만 하다.

코언은 다시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며 출퇴근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특별한 전화를 놓칠지도 모른단 생각에 고통스럽다. 그는 건강이 안 좋다는 핑계로 재택근무를 신청하지만 단박에 거절당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맨컴의 회장(맷 데이먼)을 만나게 되고, 재택근무를 조건으로 제로법칙 프로젝트를 제안받는다.

제로법칙이란 우주가 팽창을 거듭한 끝에 거대한 블랙홀의 충격에 빨려 들어가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0’(ZERO)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코언의 임무는 복잡한 연산 큐브 조각들을 찾아내서 제로 시스템의 비밀을 푸는 것이다. 단, 주어진 시간 내 퍼즐을 맞추되, 꼭 ‘0’이 ‘100%’가 되게 해야 한다.

코언은 수식 계산을 혹독하게 반복하지만 100%에 도달하지 못한다. 오히려 100%에 도달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공허감만 더욱 크게 밀려올 뿐이다. 마치 삶의 의미를 찾으려 집착하면 할수록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처럼 말이다.

 

수식계산에 지친 코언은 회장에게 묻는다. 왜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느냐고. 왜냐하면 원래 삶은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무상한 삶에 좌절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공허감을 직시하고 삶이 뿌리에서부터 허무요, 고통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새로운 창조는 시작된다.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며 우리가 풀어야 할 인생 숙제다.

이 영화는 막바지에 이르러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어리석게 전화(삶의 의미)를 기다리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살라고 말이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려면 과거 혹은 미래로 달려가는 의식을 영점으로 회복해야 한다. 그랬을 때 욕망,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이 허상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을 ‘우리’라 부르는 주인공 코언을 통해 인간 의식의 한 단면과 삶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했던 영화 제로법칙의 비밀. 종교적 세계관과 우주 물리학을 결합한 철학적 주제, 감각적인 색채 영상 등 감독의 독특한 연출법이 돋보인다. 쉽지 않은 영화지만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싶다면 강추.
 

글. 이효선 기자 sunnim03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