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부산 동래시장을 갔다. 기운차림봉사단에서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었다. 먼저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국기가 없는 집이 많구나’라고 생각했다. 또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큰 소리로 말했다. 

“8월 15일은 광복절입니다. 집에 태극기 있으십니까?”

“태극기를 꼭 다세요!” 

할수록 신 났다. 한편으로는 이런 내 모습이 놀라웠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려면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벌렁거렸는데……. 지금은 편안하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1기생 고원정 (17) 양의 이야기다. 올해 벤자민학교에 입학한 지 어느덧 5개월이다. 그동안 어떠한 일이 있었을까? 

 

▲ 고원정 양이 지난 11일 부산 동래시장에서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 나눠주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사진=기운차림봉사단 부산동래지부 정영아 사무국장 제공)

 

봉사는 또 다른 ‘나’
 

원정이는 누가 시켜서 마지 못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입학하고 달라진 점은 많이 나서게 된 것이다. 직업체험 교육 프로그램으로 고깃집, 애완동물을 돌보는 팻시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하고 싶은 열망이 강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봉사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눠주고 싶어요.”

처음에는 무료 급식소에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힘들지만 나누는 기쁨이 좋았다. 지금은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인 식당에서 설거지 봉사를 한다. 기운차림봉사단에서 운영하는 1천 원 식당이다. 독거 어르신, 몸이 아픈 사람이 많이 온다. 

“그분들이 (밥을 먹을 때) 공짜가 아니라 대가를 낸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을 세워주는 거잖아요. 그게 좋았어요. 일하시는 분들이 손님들을 꾀고 계세요. 아무 생각 없이 밥을 줄 수 있는데, 여기는 밥을 꾹꾹 담는 모습을 보고 참 정이 많구나 느꼈어요.”

봉사활동은 성격도 바꿨다. 사람을 자꾸 대하다 보니 무뚝뚝한 성격도 바뀐 것 같다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왜 이렇게 살가워졌느냐?”라고 묻더란다. 학교 다닐 때와 달리 지금은 시간이 많다. 봉사를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 부산 기운차림식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고원정 양(사진=기운차림봉사단 제공)

 

원정이에게 봉사란 무엇일까? 

“또 다른 나인 것 같아요. 봉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그때마다 나를 다른 관점으로 보게 돼요.”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4월 세월호 침몰사고의 영향도 있었다. 당시 수학여행으로 떠난 많은 고등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어른들이 앞만 보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인성이 바뀌어야 한다고. 그래야 사고가 사고로 끝나지 않고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에서 행동으로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1기생 고원정 양(사진=전은애 기자)

원정이가 벤자민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가치를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적 위주의 학교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또한 부모의 권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휴학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때마침 문을 연 벤자민 학교가 원정이에게 새로운 나를 찾는 여행이 되었다.

하지만 벗어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원정이도 알고 있다. 중학교 시절 두려움이 많은 기회를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넘어뜨리고 용기를 가지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가족과 함께 관람한 영화 <명량>이 도움이 됐다. 

“부하가 도망치다가 붙잡히는 장면이 있어요. 두렵다고 말해요. 이순신 장군은 (군율에 따라) 바로 죽였죠. 나도 그 사람처럼 두려움을 가지고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릴 수 있겠구나. 그 두려움을 죽이고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그런 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카카오톡 프로필을 <두려움이 용기로 돌아오는 순간 그 용기는 백배 천배가 된다>라고 바꾼 계기다.

원정이의 꿈은 진행형이다. 입학할 때는 요리가 매우 좋아서 요리연구가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건축으로 이동했다. 달라진 점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다. 

지인이 건축 관련 일을 한다고 듣자 냉큼 달려갔다. 남자는 지방대학교를 졸업해도 일이 있는데, 여자가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려면 정말 죽었다고 생각하고 노력해도 될까 말까라고. 그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만져보고 부대끼는 시간이 좋았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었던 일이다.

딸의 변화가 놀라워!

 

▲ 고원정 양의 가족. 가운데가 아버지 고도운 씨이고 오른쪽은 어머니 김부경 씨(사진=김부경 씨 제공)

그렇다면 원정이를 벤자민학교에 보낸 부모는 어떠할까?

 

아버지 고도운 씨(자영업)는 학창시절 1년 정도 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등 시간만 지나면 진학하는 것이 틀에 박혔다는 것이다.

“저를 돌아보더라도 덧없이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딸에게 1년 동안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라고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면 생활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죠.”

형제 없이 자란 외동딸이라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자기만 생각하고 주위와 잘 지내지 못할까 봐. 그런 찰나에 만난 벤자민학교는 기회(Chance)였다.

“학생끼리 서로 경쟁하지 않잖아요. 서로 도와주니 협동심이 생길 것입니다. 일도 만들어서 하니 창의력도 길러질 겁니다. 그런 면에서 1년이 네 앞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것이라고 딸에게 말해줘요.”

어머니 김부경 씨는 딸의 변화를 더 많이 느낀다. 이전에는 방에 들어가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문 닫아놓고. 너는 덥지도 않으냐. 제발 나와라. 이야기하자. 그랬었죠. 지금은 집에 없어요.(웃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느라 딸이 바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부모에게 거의 통보하고 일을 한다”라며 “스스로 정해서 하니깐 재밌어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가족의 대화를 주도하는 것도 이제는 딸이다. 아버지는 “지금은 자기 이야기를 안 들어준다고 뭐라고 말할 정도”라고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