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세상에 나서기 전에 꼭 다녀야 할 학교에요.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녀야 할 학교죠.”

당차다. 세상 사람들은 왜 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해야 한다고 하는 것들에 쫓겨서 사는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다짜고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에 다 다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7월 30일 인천에서 이 당찬 학생을 만나고 왔다. 앳되고 귀여운 얼굴을 한 신채은 양(17)은 대안학교인 벤자민학교 1기생으로 재학 중이다.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에 대해 끝없이 묻고 또 도전하는 1년을 보내고 있다.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1기 신채은 양

채은이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은 “행복해요” 였다. 하지만 벤자민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올해 초까지만 해도 채은이는 싫은 것투성이인 사춘기 소녀였다.

“그냥 다 싫었어요.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무조건 하라고만 하니까 공부를 안 했어요. 매일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집에도 늦게 들어가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완전 중2병에 걸려서 심각했어요. 엄마한테 크게 혼나도 놀기만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중간고사 때 순간 ‘나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번쩍 드는 거에요. 이대로라면 나중에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어요. 사실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았어요. 신나게 놀았다기보다는 노는 ‘척’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공부를 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중2병이란 중학교 2학년 청소년들이 겪는 혼란이나 불만, 그로 인한 반항과 일탈 행위를 뜻한다. 채은이의 중2병은 공부를 통해 사라지는 듯했다. 성적이 하위권이던 채은이는 무섭게 공부에 집중했고 전교 7등까지 올랐다. 그런데 공부에 욕심을 낼수록, 고등학교 입학이 가까워질수록 채은이는 불안해졌다. 나은 것 같던 중2병도 더 심해졌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엄마한테 조르고 졸라서 과외도 받았어요.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가 힘들어진다고 하니까 부담감이나 스트레스가 엄청 컸어요.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 따라가려면 해야 하는 게 무척 많은데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부족하니까 불안했어요.
시험기간이라도 되면 엄청 예민해져서 언니하고 많이 싸웠어요. 그 싸움이 부모님께까지 번져서 아빠 엄마까지 온 가족이 다 힘들었어요. 부모님이 말씀하시면 제가 하는 대답은 무조건 하나였어요. ‘싫어요!’ 그때는 다 싫었어요."

싸움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았다. 쉼 없이 평가만이 반복되는 학교생활을 잘 해내자니 자신은커녕,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모든 것이 불만이었고 짜증이었다. 이렇게나 생글생글 예쁘게 웃는 지금의 채은이가 된 것은 벤자민학교가 준 놀라운 변화다.

“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서 시키는 것 하기에도 바빠 죽을 지경이었어요. 가족들을 이해하거나 서로 진심에서 나오는 말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벤자민학교를 다니고 가족끼리 사이가 정말 좋아졌어요.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나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돌아보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챙기게 되더라고요.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는 온 가족이 다 행복해요.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아요."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1기 신채은 양의 직업체험 아르바이트 현장.
아버지와 어머니가 채은이를 응원하기 위해 가게를 직접 찾아오기도 하셨다.

사실 채은이는 올해 초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배정받은 학교 교복까지 사둔 상태였다. ‘여고생’을 꿈꾸던 채은이가 1년 동안 학교를 쉬고 적성과 진로 탐색을 위한 직업체험, 예술활동, 사회활동을 하는 대안학교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채은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은 사이가 좋지 않던 4살 위 언니였다. 언니가 채은이에게 한 말은 한마디. “이대로 고등학교 가면 넌 후회할 거다.” 적성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대학에 입학한 언니는 지금 대학교 1년을 보낸 뒤 다시 진로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채은이에게 언니의 한 마디는 강력했다. 그리고 채은이는 벤자민학교 입학을 위해 간 면접캠프(벤자민인성영재캠프)에서 확신을 하게 되었다.

“전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어요. 다른 사람들하고 비슷하게 살고 공감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벤자민학교 입학 전에 간 면접캠프에서 깨달았어요. 캠프를 통해서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알고 그걸 위해 지금 준비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정말 가치 있는 삶, 나 스스로 자랑스럽고 뿌듯한 삶을 살고 싶다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캠프에서 만난 벤자민학교 응시생들이 채은이를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채은이가 만났던 친구들과는 너무 달랐다.

“첫인상은 '대한민국에 이런 애들이 있다니!’ 였어요. 보통 친구들 만나면 연예인, 남자, 선생님 이야기하는데, 벤자민 애들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걸 할 때 정말 행복한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완전 충격이었어요. 정말 친해지고 싶고 닮고 싶었어요.
지금은 정말 사랑해요. 벤자민 친구들을 정말 ‘사랑’을 해요. 제가 벤자민학교에 안 다녔다면을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지금 벤자민 친구들을 알게 돼서 정말 고맙고 기뻐요.”

보통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 하지만 보통 학교가 아닌 벤자민학교에서는 ‘인성’이 기준이다. 그렇다 보니 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서로 인성으로 ‘경쟁’을 한다. 하지만 경쟁 방식이 좀 남다르다.

“저희끼리도 경쟁해요. 서로 더 잘하고 더 많이 성장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더 많은 체험을 하고 얻어가려고 다들 애써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서로 많이 챙기고 나눠요. 내가 잘하려면 친구들도 잘해야 나도 잘할 수 있거든요. 내가 어떤 일을 통해서 뭘 겪었는지 이야기하고 나누면서 서로 더 많이 보게 되고 깨닫게 돼요. 다같이 힘내고 응원하고 그래야 저도 성장하니까요.
이렇게 보면 성장 안 하는 친구는 없어요. 방법이나 정도, 속도가 좀 다를 수는 있지만 모두 자기 나름의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내 인생이니까 내가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웃음)”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1기 신채은 양

학교에서는 성적이 오르면 잘하는 거고 성적이 떨어지면 문제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채은이는 "벤자민학교에서는 누구나 다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학교에서도 학생의 ‘성적’이 아니라 ‘성장’을 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일반 학교 이야기를 했더니 채은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학교 다닐 때는 고민도 별로 안 했어요. 고민되는 것들은 무지 많았는데 고민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고민은 아예 안 하게 됐어요. 대신 불평불만만 늘었죠. 해야 하는 것만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벤자민학교는 달라요. 여기서는 내가 고민하면 해결할 수도 있어요. '나는 왜 자기관리가 잘 안 되지? 왜 사람들 대할 때 이런 게 잘 안 되지?’ 이런 고민이 생기면 자기관리를 해야 할 때, 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뭘 배우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그때그때 내가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던 걸 적용하고 또 보완하면서 바꿔나갈 수 있어요. 고민하고 해결하고 또 성장하고. 행복해요.”

벤자민학교를 통해 자기가 정말 많이 바뀌고 있다는 채은이는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아직 정확한 학과나 직업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꿈을 찾는 그 길 위에 있고 목적지에 꼭 도달하리라는 확신 말이다.

“제 마음속에 ‘홍익’이라는 씨가 뿌려졌어요.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이 말에 완전 꽂혔어요 요즘. (웃음) 홍익이라는 씨가 뿌려졌고 뿌리를 내렸으니까 잘 돌봐서 꼭 수확해낼 거에요. 평생 살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완전히 내 꿈을 찾는 데 쓸 수 있어 정말 행복해요. 더 많은 학생이 이런 기회를 얻게 되면 좋겠어요."

글/사진=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