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단군전 숭령전(사진=윤한주 기자)

충주단군전은 10월 3일 개천절에 단군대제를 올린다. 지난해 충주시장과 충주교육장, 성균관 유도회원, 학생 등 150여 명이 참배했다.

단군을 모신 숭령전(崇靈殿)은 1429년 평양에 건립한 조선시대 사당과 이름이 같다. 단군과 동명왕을 제사 지내던 곳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봉안한 의미를 가져온 듯하다.

문을 여니 단군영정과 위패인 근역시조단군영위(槿域始祖檀君靈位)가 있다.

근역이란 우리나라를 뜻한다. 근(槿)은 무궁화로, 예로부터 무궁화가 많이 자라는 우리나라를 근역이라고 하였다.

태극기가 가슴에 그려진 옷을 입은 단군은 최근에 기증받은 것이다. 그런데 영정 뒤에는 최초의 영정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오랜 영정임을 알 수 있었다.

곽호종 전 회장은 영정 하단을 살펴보고 “단기 4286년(서기 1953년) 계사년에 그린 것 같다”라고 말했다. 누렇게 바랜 영정을 보니 관리가 필요한 것 같았다.

▲ 단군전 숭령전에 있는 단군영정이다. 곽호종 전 회장은 단기 4286년(서기 1953년)에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윤한주 기자)

밖으로 나와서 숭령전을 살펴봤다. 서향으로 지었고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획했다. 가구는 삼량(三樑: 양쪽 처마 도리와 용마루 도리로 꾸민 지붕틀)집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책을 펼쳐서 덮은 것 같은 구조)에 단청을 하고 있다.

숭령전 뒤로 돌아가니 녹음이 짙은 산이 보였다. 고려말 배극렴이 이곳에 은거하자 태조 이성계가 찾아왔다고 하는 어래산(御來山, 고도 393m)이다. 위화도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그를 세 번씩이나 찾았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삼방리(三訪里)’다. 임금이 찾은 산은 어래산御來山이 됐다. 산 정상은 국사봉으로 불린다.

▲ 대한불교조계종 성지사다. 이곳에서 어래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원용선 유학자가 세운 천제단을 만날 수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천제단을 찾아서

1945년에 단군전을 세운 터가 남아있느냐고 물어보니 한수덕 이장은 있다고 말했다. 산을 올라가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했다. 가자고 했다.

이종상 성균관유도회 주덕읍지회장과 곽 전 회장도 처음으로 단군전 터를 가본다고 했다. 이 회장의 차를 타고 어래산으로 향했다.

어래산천제단을 가려면 대한불교조계종 성지사(삼청리 산37-2번지)를 찾으면 된다. 사찰 왼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산 중턱이라 그런지 20분이면 충분했다. 마침내 돌로 쌓은 제단이 보였다. 

▲ 한수덕 이장과 이종상 회장이 성지사에서 어래산 등산로를 따라 천제단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우리나라 천제단이라고 하면 마니산참성단, 태백산천제단, 구월산천제단 3곳이 있다. 충북에서 천제단이 발굴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됐다.

돌로 쌓은 제단 위로 비석이 있었다. 비문 앞면 위는 ‘태극기’를 그렸고 아래는 ‘천제단’이라고 새겼다. 뒷면은 ‘단군 4288년(1955년) 정해 3월 3일 길일’이라 새겨 ‘상축국운 하제창생’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제단은 1년 전에 주덕읍에서 복원한 것이다. 원 제단이 아닌 셈이다.

▲ 천제단 비문 앞면 위는 ‘태극기’를 그렸고 아래는 ‘천제단’이라고 새겼다. 뒷면은 ‘단군 4288년(1955년) 정해 3월 3일 길일’이라 새겨 ‘상축국운 하제창생’이라고 했다.(사진=윤한주 기자)

오동식 주덕읍장은 “직접 가서 보니까 비석이 넘어가 있었다. (그래서) 복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읍에서 입수한 원 천제단 사진과 자료를 보면 돌을 2단으로 쌓았다. 1단은 가로 8m, 세로 1.5m, 높이 1.2m이다. 2단은 가로 6m, 세로 1.2m, 높이 1.2m이다.

유학자 원용선 씨는 왜 어래산 등산로에 단군전과 천제단을 세웠을까? 이에 대해 초등학교부터 직접 얼굴을 보고 자란 한 이장은 뿌리를 알리는 데 있었다고 말했다.

▲ 주덕읍에서 공사하기 이전에 촬영한 천제단이다. 1단은 가로 8m, 세로 1.5m, 높이 1.2m이다. 2단은 가로 6m, 세로 1.2m, 높이 1.2m이다. 오동식 읍장이 천제단을 바라보고 있다.(사진=주덕읍)

“항일투쟁을 했던 분입니다. 모두 상투를 잘랐는데, 나는 죽어도 (상투를) 못 자른다고 투쟁을 해서 안 잘랐어요. 돌아가실 때도 상투를 가지고 돌아가셨어요. 대단하셨죠. 주위 어른에게서 들었어요. 유학자이고 글을 가르치니깐 뭔가 뿌리가 중요하다. 처음에는 단군영정을 어디서 모시고 왔다는 거에요. 천제단 밑에 모셔놓고 매일 단군할아버지에게 참배했습니다. 어래산이 주덕 사람들에게 관광지였어요. 소풍도 어래산으로 갔다. 인파가 많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단군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을 심어준 거죠.”

이강오 전북대 교수가 펴낸 <한국신흥종교총람>에 따르면,  일제 말기에 한국인 가정에까지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신사를 두도록 강요하자 원 씨는 “단군의 얼을 받은 한민족이 일본의 국조를 모신다는 것은 민족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제의 감시가 심한 가운데 집안에 비밀히 국조 단군의 위패를 모셨다. 그는 민족의 얼을 보존하기 위해 단군을 신봉하는 종교로 국교를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온 국민이 받들 수 있는 단군전을 세울 것을 결심했다.

1947년 3월 어래산에 천제단과 조국통일기원비를 세운다. 그해 10월 3일 지역 인사를 모아 천제의식을 거행했다. 이듬해 8월 단군의 현몽現夢을 얻는다. 사재를 털어 어래산에 단군전각을 세우고 그 안에 단군상을 함께 봉안했다.(문의: 043-852-3825)

<충주 단군전 14편, 15편 완>

14편 바로가기(클릭)

기자주 : 취재에 도움을 주신 성균관유덕지회 주덕읍지회와 주덕읍 관계자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 충주 주덕읍 삼청리 단군전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왼쪽부터 이종상 성균관유도회 주덕읍지회장, 곽호종 전 회장(충주시의회 운영위원장을 역임), 정연욱 주덕지회 총무, 한수덕 이장이다.(사진=윤한주 기자)

■ 충주 단군전과 천제단

1. 문의 : 성균관유덕지회(043-852-3825)
2. 단군전 : 충북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 산24-1번지
3. 천제단 : 충북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 산37-2번지 성지사(043-846-0780)에서 어래산 등산로를 따라서 20분 걸으면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