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현충문

어릴 적 한 번쯤은 애국정신 함양을 위한 수학여행지나 학습방문지로 다녀왔을 법한 곳, 국립서울현충원(이하 현충원). 6일 현충일을 앞두고 지난달 21일 현충원을 찾았다.

관악산 공작봉 기슭 아래 자리 잡은 현충원은 국가나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을 안장한 국립묘지이다. 규모는 143만㎡. 선열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추앙하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기자는 '현충탑'과 '충열대', 5개 묘역 중 한 곳인 '독립유공자묘역'을 차례로 찾았다. 독립유공자묘역에는 임시정부요인과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후손이 없는 선열)제단을 조성해 놓았다.

# Course 1. 현충탑

기자의 처음 방문지는 현충원의 얼굴격인 현충탑. 현충탑은 높이 31m에 달하는 十(십자)형 탑으로 호국영령의 충심을 기리는 곳이다. 십자 모형은 동・서・남・북 4방향을 수호한다는 의미다. 탑 앞쪽에는 오석평판 제단을 설치하였고 제단 뒤쪽에는 헌시를 오석에 새겨 놓았다.

▲ 현충탑은 높이 31m에 달하는 十(십자)형 탑으로 호국영령의 충심을 기리는 곳이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헌시 이은상 저, 박정희 전 대통령 휘호)

단 두 줄의 헌시를 가슴으로 곱씹으며 잠시 제단 앞에서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묵념을 올렸다. 온몸으로 조국을 지켜낸 선열들의 충절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목숨 걸고 하늘 일을 해냈기에 죽어서도 하늘이 굽어 살피시는 것이리라. 죽어서도 만인에게 칭송받을 수 있는 것은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바쳤기 때문이리라.”

호국영령을 보호하려는 듯 탑의 양쪽으로 화강암 석벽이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석벽 끝 좌우에는 5인의 애국투사상과 호국영웅상이 금방이라도 깨어나 말을 걸어올 듯 생동감 있게 서 있다.

# Course 2. 충열대와 무후선열제단

현충탑에서 나와 두 번째로 찾은 장소는 충열대였다. 임시정부묘역,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재단에 모신 선열의 얼을 함께 추모하는 제단이다.

▲ 충열대는 임시정부묘역,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재단에 모신 선열의 얼을 함께 추모하는 제단이다

충열대는 높이 5.13m, 가로 4.84m, 폭 1.5m의 화강석에 용을 조각해 올렸다. 영령들을 수호한다는 뜻이다. 양쪽에는 높이 2.12m나 되는 마신상이 제단을 지키려는 듯 위용을 뽐내며 서 있다.

제단 옆쪽 계단을 타고 뒤로 돌아가니 무후선열제단이 나온다. 충열대 앞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 꼭 비밀의 화원처럼 느껴진다. 이 제단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였지만, 후손이 없거나 유해마저 찾을 길 없는 133위 순국선열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 무후선열제단에는 후손이 없거나 유해마저 찾을 길 없는 133위 순국선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3.1 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이상설, 이준, 이위종 열사, 만주지역에서 무장항쟁을 전개했던 홍범도 장군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위인들을 모신 곳이다.

# Course 3. 임시정부요인묘역과 애국지사묘역

충열대 위쪽에는 임시정부요인묘역이, 아래쪽에는 애국지사묘역이 있다. 임시정부요인묘역에는 박은식 선생을 비롯해 임시정부 주요 직위를 역임한 순국선열 18위, 애국지사묘역에는 신돌석, 서재필 등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 212분을 모셨다.

▲ 임시정부요인묘역에는 박은식 선생을 비롯해 임시정부 주요 직위를 역임한 순국선열 18위가 모셔져 있다

"국혼(國魂)은 살아있다. 국교(國敎) 국학(國學) 국어(國語) 국문(國文) 국사(國事)는 국혼(國魂)에 속하는 것으로 국혼의 됨됨은 국백에 따라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은 살아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 박은식 선생이 저술한 <한국통사> (1915년)

▲ 임시정부묘인묘역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 묘가 모셔져 있다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 <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해 민족혼을 일깨웠던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분이다. 그의 비석 밑에 새겨진 <한국통사> 글귀를 보며 선생의 투철한 역사의식과 나라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무명・유명 애국지사의 묘를 바라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충(忠)의 정신'을 '가장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 현충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 애국지사묘역에는 애국지사묘역에는 신돌석, 서재필 등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 212분을 모셨다

제 아무리 장군이라 한들 죽음에 임하여 두려움이 없었을까. 민족과 나라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내던진 그들의 인생 역정이 바로 충의 발자취가 아니겠는가. 주검으로 이 땅에 묻혔어도 그 충의 향기는 영원히 가시지 않을 것이다.

▲ 어느 애국지사의 묘에 앉은 까치가 무언가에 응답하듯 뒤를 돌아보고 있다. 충인은 땅에 묻혀 말이 없어도 자연은 그의 침묵에 응답하고 있는 것 같다. 따뜻한 햇살이, 산들바람이, 새들이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것만 같다.

탐방 전 마음 한편에서 “묘지에 뭐 볼 게 있겠는가”라고 생각한 것은 기자의 큰 오산이었다. 진정한 충인은 죽어서도 자신의 죽음으로 산 자를 가르친다. 현충일을 맞아 충의 정신을 깊이 느껴보고 싶다면 현충원에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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