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가을비가 내리는 세종대학교 캠퍼스.

고인돌이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이라며 여러 연구를 통해 밝힌 바 있는 하문식 세종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를 만났다.

1시간 동안 진행한 인터뷰에서 하 교수는 국사 교과서에서 고인돌을 지배자의 무덤으로만 보는 것에 반론을 펼쳤다. 그의 말은 지금까지 사라진 고인돌을 포함해 한반도에 6만기가 있었다고 보는데 그 모두를 지배자로 본다면 백성이 얼마나 많이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는 지금도 고인돌 앞에서 돼지를 잡고 제사를 지내는 등 고인돌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냈다.

'고인돌'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고 오로지 한길을 걷고 있는 하문식 교수. 그의 이메일 아이디도 고인돌맨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dolmen'이라고 하여 더욱 관심을 끈다.

▲ 고인돌 전문가 하문식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

- 고인돌에 대한 해석이 다양한 것 같다.

▲ 고인돌은 99%가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람 뼈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제단의 기능을 가진 것도 있다. 탁자식 고인돌을 발굴 하다보면 조선백자가 완전하게 나왔다. 태(胎) 항아리가 아닐까. 후대까지 고인돌에서 제사를 지냈던 것 같다. 중국은 지금도 고인돌을 제단으로 활용한다. 지난 2월에 중국에 갔는데 고인돌 앞에서 돼지를 잡았다. 그 생고기를 고인돌 덮개돌 위에 올려놓고 2주 동안 제사를 지냈다.

-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신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 중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런 제사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 (돌) 자체가 웅장하고 성스럽기 때문이다.

- 교과서에는 고인돌을 축조한 사람은 지배자라고 나온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인돌을 축조할 때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 그 돌을 가져오기 힘들다. 따라서 지배자의 무덤이라고 교과서에 실렸는데 잘못된 것이다. 한반도에 남아 있는 고인돌이 4만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새마을운동 시절에 많이 없어졌다. 그 돌을 깨뜨려서 제방을 쌓았으니까. 그래서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동쪽보다 서쪽의 고인돌이 더 많이 남아있다. 그것은 동쪽보다 서쪽이 새마을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없어진 고인돌을 포함해) 6만 개 가까이라고 본다. 6만 개 고인돌 모두를 지배자의 무덤이라고 본다면 (그것을) 축조하는 데 백성이 얼마나 많아야 하는가?

- 상식으로 안 된다는 말인가?

▲ 그렇다. 두 번째, (고인돌을) 발굴해보면 지배자의 무덤에는 비파형동검, 옥 등이 나온다. 그런 것은 몇 %이다. 대부분 고인돌에서는 민무늬 토기, 화살촉 한두 점 나오는데 그것을 지배자의 무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어린아이나 30~40대 여자로 추정되는 뼈들이 나온다. 고인돌의 무덤을 지배자 무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도 지배자와 관련 있는 부인이나 어린아이로 말하는데 나는 억측이라고 본다.

- 거꾸로 생각한다면, 당시 고인돌은 지배와 피지배 상관없이 고조선 사회 전체의 무덤 문화일 수도 있겠다.

▲ 그렇다. 그 자체를 권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 일부에서는 고인돌을 별자리 판으로 볼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 국내 학자는 물론 북한학자도 많이 내세우는데, 나는 별자리로 보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천문우주학자에게 물어보면 그런 별자리를 맨눈으로 관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은 광학망원경을 통해 찾아내는데 당시에 맨눈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서 그런 별자리가 과연 있었을까?

- 고인돌의 구멍에 대해 성혈의 성을 별자리 성(星)으로 해석한다.

▲ 성혈도 해석이 다르다. 구멍은 요즘도 어린애들이 장난하면서 만들 수가 있다. 나도 어릴 때 동네 고인돌에서 구멍을 팠던 기억이 있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상이 한반도에 있다.

▲ 고인돌은 (아프리카) 이디오피아에도 있다. 문화와 성격 그리고 시기적으로 다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고인돌을 만들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드니깐 콘크리트로 만들고 있다.

- 고조선 관련된 질문인데, 2007년 국사 교과서 개정되면서 고조선 연대도 올라가고 이후에 인식이 좀 바뀌지 않았나?

▲ 진작 바뀌어야 하는데 늦은 감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인식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역사과 부도를 보면 너무 잘못된 것이 많다. 역사 교과서는 어디서 써야 되는지 학계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물어보면 다 논의되었다고 한다.

- 동북공정과 관련해서 고조선 연구는 어떻게 보는가?

▲ 고조선은 중국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연구를 놓칠 수 없는 ‘급박함’이 있다. 동북공정도 서로 예민하게 접근하니깐 분란이 생긴다. 중국 개주 석붕산에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고인돌이 있다. 안내도 하면서 지금까지 11번을 다녀왔다. 밖에서 공부하는 분들이 요란스럽다. 그곳에 플래카드 걸었다. 나중에 중국 사람들이 울타리를 쳤다. 서로 객관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의 급한 심정으로…. 우리는 조용히 접근하면서 고조선 연구결과를 쌓아야한다.

-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독도와 같다.

▲ 너무 빨리 접근하려고 한다. 고조선 연구는 폭넓게 잡아야 한다. 우리가 동북공정에 대해 고구려의 문제로 보고 지원도 이뤄지고 연구도 진행됐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중국은 (이미) 고구려 문제는 끝났고 고구려의 시원인 고조선의 문화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6~7년이 지나서 작년부터 중국에서 발굴한 것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큰 것을 보고 가야 하는데 선제를 못할망정 방어하기 바쁜 상황이다.

- 이 문제는 끝날 수 있다고 보는가?

▲ 안 끝난다. 계속 간다. 끝나지 않을 전쟁이다.

- 그러면 해결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

- 마지막으로 고조선 연구 관련해서 남북 협력에 대한 생각은?

▲ (북한 김일성종합대학교 교과서를 보여주며) 100권을 인쇄했는데 번호가 있다. 회수하는 번호. 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 이러한 종이(색이 노랗다)에서 시험을 봤다. 고고학 연구는 돈과 밀접하다. (종이 위에 고인돌 발굴에 대해 그림을 그리며) 일반적으로 발굴하는데 큰 돌을 들어내고 평면에 구역을 정해서 한다. 북한은 이 돌을 드러낼 수가 없다. 경제적 기반이 없다. 마치 도굴하는 사람처럼 밑으로 판다. 그 정도의 사회에서 발굴하고 있다. 순수학술적인 차원에서 남북공동협력하면 경제적 뒷받침도 할 수 있고 더 많은 연구성과를 낼 수 있다.

7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