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교과서는 고대로 올라갈수록 분량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지금도 고대의 유물은 쏟아져나오는데 문헌 부족이 그 이유다.

단적인 예가, 지난 6월 27일 강원도 고성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신석기 시대 밭유적이었다. 5천 년 전에 신석기인들은 원시적인 화전 농경만 있었을 것이라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 셈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 나온 유물을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오늘의 이야기He-Story로 봐야 할 것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실(=자료)

■ 고조선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나?

▲ 미송리식 토기(=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 사람들은 물막이 시설을 갖추고 벼농사를 지어 쌀을 먹었다. 경기도 일대에서 기원전 3000~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볍씨가 출토됐다.

이러한 생활상을 반영하는 유물로는 따비나 괭이 같은 농기구, 그릇으로 사용했던 미송리식 토기와 팽이형 토기 등이다. 미송리식 토기는 표주박 윗부분을 잘라낸 듯한 몸체에 손잡이가 달린 모양의 그릇으로 평안북도 미송리 동굴 유적에서 발굴됐다. 팽이형 토기는 생김새가 팽이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동강 유역의 고인돌 유적 근처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고조선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 숟가락을 사용했다. 함경도 서포항 유적지 등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청동으로 만든 숟가락과 동물의 뼈로 만든 숟가락이 있는데, 손잡이 부분에는 아름다운 조각까지 새겨져 있었다.

또한 고조선 시대에는 음식의 조리 방법도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음식은 주로 끊이거나 익혀서 먹었겠지만 시루에 쪄서 먹기도 했다. 이 시기에 출토된 청동 시루나 질시루 등은 고조선 사람들이 시루를 이용해서 곡물을 찐 후 떡을 만들어 먹었음을 말해준다.

■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상투머리’

고대 한민족을 대표하는 헤어스타일은 머리를 틀어 올린 상투머리다. 《후한서》《삼국지》《진서 晋書》등의 기록과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인형에도 상투를 튼 모습을 하고 있다. 같은 시대 북방지역 사람들이 주로 머리의 반을 올려 묶거나 변발을 했던 것과 다른 고유한 두발양식이다.

한반도와 만주 유적에서는 머리를 틀어 올리고 꽂았을 머리꽂이가 골고루 출토된다. 이 상투머리 덮개는 고조선 시대에는 변弁(고깔)이나 절풍折風과 같이 상투에 쓰는 작은 모자 형태로  삼국시대에는 속관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박선희 상명대 교수는 그의 저서 <고조선 복식문화의 발견(2011)>에서 “고조선의 복식양식은 출토된 유물로 보아 매우 화려한 청동장식이 빼곡히 달린 의복과 가죽신발을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우리가 유물로 본 청동은 암녹색이지만 처음 제조되면 황금처럼 빛이 난다. 이 청동장식이 이후 갑옷의 형태로 발전되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복식유물 가운데 가장 양적으로 풍부하고 고유양식과 문양을 잘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복식유물은 가락바퀴와 청동장식단추이다. 가락바퀴는 실을 꼬아 만드는 도구로 직물생산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발견된 가락바퀴들의 표면에 나타나는 문양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북방지역이나 중국지역에서 출토되는 가락바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청동장식단추는 문양이 나타난 경우와 문양이 없는 소면의 상태도 있는데, 그 문양은 대부분 새김문양질그릇이나 가락바퀴 등에 보이는 문양과 유사하다. 이와 함께 한반도와 만주지역 고조선시대 초기의 유적들에서 둥근 모양의 옥으로 만든 단추가 출토되는 것 또한 장식단추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고급화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 온돌을 사용한 고조선

 

고조선 사람들의 가옥구조는 지붕은 짚이나 풀 같은 것으로 덮었는데 그 위에 두껍게 진흙을 바르기도 했다. 그리고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바닥을 진흙으로 다지고 그 위에 멍석이나 풀을 깔았다.

특히 우리 민족 특유의 난방을 위한 온돌이 고조선 시대부터 나타난다. 함북 웅기 지방의 청동기 시대 움집에서 온돌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으며, 평북 강계 자성과 영변 등지의 유적지에서는 온돌의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세죽리 5개의 집터 중 2개의 집터에서 발굴된 온돌은 ‘ㄱ’ 자형 외고래 온돌이었다.

온돌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래이다. 온돌 고래는 납작하고 길쭉한 돌을 세우고 그 위에 얇은 판돌을 덮어 만든 것이다. 고래의 맨 앞부분에는 고래보다 깊은 아궁이가 있으며, 온돌 고래의 길이는 3-4미터였다. 고래의 형식은 직선형과 꺽임형 두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6편에서 계속됩니다.

■ 도움받은 책
고조선사연구회, 동북아역사재단, <고조선사 연구 100년>, 2009년
고조선사연구회, 동북아역사재단,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 2007년
박선희, <고조선 복식문화의 발견> 2011년
이덕일, 김병기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2006년

#코리안스피릿 특별연재-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찾아서
바로가기
☞ [1] 반세기가 걸린 국사교과서 개정…문제는 밖이 아니라 ‘안’!
☞ [2]  단군왕검과 고조선의 부활, '역사는 바뀐다!'
☞ [3]  찬란한 고대 천문학의 보물
☞ [4]  명도전 화폐를 보면 고조선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