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입던 두툼한 외투를 그대로 입고 부산역에 내리는 순간 민망해졌다. 날씨가 무척 따뜻했다.  길가에 줄지어 선 목련 나무에는 하얀 꽃이 가지마다 풍성하게 피었다.  따뜻한 봄 날씨가 한창인 지난 달 30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끈하다는 부산에서 국학 활동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개안(開眼) 왕성도 국학원장을 만났다.

 왕성도 원장은 서울, 대구,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국학 강사를 양성해낸 전력이 있는 지휘관이다. 그리고 2011년, 부산은 전국에서 도통군자가 가장 많이 배출된 도시가 되었다. 마침 그의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에도 지역 국학 강사들의 도통군자 수련 나눔을 일일이 보던 중이었다.

 도통군자란? 삶의 중심 가치가 홍익 정신인 사람

▲ 왕성도 국학 원장은 도통군자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삶의 중심가치, 판단 기준이 홍익정신인 사람입니다."라며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20여 년의 한 길을 신념으로 걸어온 그의 모습은 한눈에 딱 봐도 뚝심이 흐른다. 무뚝뚝할 것 같은 인상이지만 입을 열자 따뜻한 마음이 물씬 풍겨온다. 도통군자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삶의 중심가치, 판단 기준이 홍익정신인 사람입니다."라며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요즘 많은 사람이 자신만을 생각하느라 오히려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 큰 사랑을 하는 하늘의 마음, 널리 사랑하라 했던 단군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음, 심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실체입니다.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단군 할아버지의 심정을 느끼고 통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입니다."라고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 그는 또한, "도통이 된 세계는 모든 생명이 지속 가능하게 공존하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2010년 7월, 왕 원장은 30개 센터, 350여 명의 국학 강사가 있는 부산 국학원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그는 정체된 지역의 분위기를 느꼈다. 당시 매월 진행하던 국학강사 모임에 30~40명만 참석한다고 했다. 그는 국학강사 모임장소로 큰 야외 광장을 알아봤고, 바로 300여 명이 들어갈 만한 부산일보 광장을 예약했다. '텅 비면 텅 비는 대로 강사들 정신이 번쩍 깰 것'이라며 밀고 나갔는데 행사 당일 300명이 넘게 모여 광장이 꽉 찼다. 그 모습을 본 국학 강사들은 '하면 되는구나!' 하는 희망을 느꼈다. 그 후로도 꾸준히 200~300명 규모의 행사를 진행했는데 그 이상은 커지지 않았다. 더욱 발전할 방법에 대해 고심하고 있을 때, 도통군자 프로그램이 나왔다.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이거다!'

 그는 '먼저 국학강사를 도통군자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자기 생명력을 깨우는 기氣 수련으로 핵심 강사를 단련하고 소감 쓴 것을 체크했다. 생명력이 깨어나자 통찰력이 밝아져 강사의 능력도 좋아졌다. 주위 사람들이 강사를 믿고 존경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어 그는 지역 도통 원력수련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강사들이 깊은 수련으로 자신의 몸이 좋아지자 프로그램에 신뢰도가 높아졌고, 단군 할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되자 사명감이 생겼다. 

▲ 바다를 뒤로하고 선 왕성도 국학원장
열정의 도시 부산이 깨어나면 대한민국에 홍익의 불을 지필 것

  큰 지역의 대표, 종합상황실장 등 굵직한 일을 맡아 성공으로 이끈 왕 원장. 그의 이같은 직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직관은 누구한테나 있고, 처음부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안 믿죠." 기존의 가치, 관념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 무심한 상태에서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바라보면 된다는 것. "직관은 우리 본성의 작용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몸이 반응하는 것처럼 본성도 반응하게 돼 있습니다."

 "부산은 6.25 때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아 무계획적으로 발전한 도시입니다. 사람들 성격도 좀 급하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정이 아주 많습니다. 경상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요. 열정적인 부산 지역이 바뀌면 우리나라에 홍익인간의 불을 지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부산 16개 구에 각각 독자적으로 국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부산시의 30% 학교에 행복해지는 국학 프로그램을 전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아주 구체적이지 않으면 뇌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라며 추후 부산시민 10%의 애국심에 불을 지르는 것이 비전이라고 말했다.
 
 '단군' 이야기를 꺼내자 다시 한번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우리의 뿌리인 단군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무겁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 등은 친숙한 콘텐츠이자 그들 문화의 아이콘입니다. 그런데 지금 단군을 이야기하면 샤머니즘이라고 치부하거나, 비과학적이고 무서운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라며 우리 역사에 대한 문화적 인식을 강조했다. 부산 국학원에서 단군을 문화적으로 알리는 사업을 추진할 거라 강조했다. 왕 원장은 "단군 할아버지의 홍익 정신이 우리 나라의 정신, 코리안 스피릿(Korean spirit)이며 또한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얼스 스피릿(Earth spirit)"라고 덧붙였다.

 "나는 솔바람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그에게도 인생의 굴곡이 많았나 묻자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내가 올라갈 때 내려갈 때 지위나 직책에 내가 얼마나 휘둘리나, 내 그릇이 어떤가를 스스로 돌아볼 좋은 기회였죠."라며 "경험은 잘 될 때나, 못 될 때나 차이없이 다 귀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경험이 많은 만큼 사람을 품는 가슴도 컸다. 기자에게도 이런저런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하기도 했다.

 20여 년 전, 그는 현대 국학의 창시자인 이승헌 총장과 회원들과 함께 해인사로 워크숍을 하러 갔다. 그때 어디선가 푸른 빛 싱그러운 솔바람이 불어왔다. 그때 그는 '아, 나는 이런 솔바람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왕 원장은 소나무처럼 곧은 마음으로 국학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