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홍익교사연합회(회장 곽해일, 양산여중)소속 선생님들은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지난 27일부터 28일까지 1박 2일간 진주지역 역사탐방 워크숍을 가졌다.

의암대: 촉석루 바로 아래 논개가 적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안고 빠져 죽은 바위

먼저 도착한 곳은 임진왜란 3대첩 중 한 곳으로 알려진 진주 촉석루다. 1592년 10월 임진왜란 당시,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 목사 충무공 김시민을 중심으로 4,000여 명의 군, 관, 민이 하나 되어 3만여 명의 왜군을 7일간의 격전 끝에 격퇴시킨 전투로 역사에 길이 기억되는 현장이다. 이 전투로 큰 충격을 받은 일본이 다음해 복수의 칼을 갈며 돌격해왔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진주성의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죽이라 명령했을 만큼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선생님들은 왜장을 끌어안고 물 속으로 빠진 논개를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충무공 김시민 동상. 1592년10월 소수의 군관민이 합심하여 6일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왜군2만명을 물리쳤다.

이어서 진주성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진주 지역 역사문화재와 임진왜란 당시의 흔적들을 견학했다. 열심히 관람하던 중 '귀영수증'문서에 선생님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악할 수 있는지 절로 눈쌀이 찌푸려졌다.

더불어 이 나라를 위해 백의종군으로 인간사랑, 나라사랑의 효충도 정신을 발휘했던 충무공 이순신을 떠올리며,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나는 도(道)를 다하기 위해 죽는다!" 했던 장군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나의 엄지는 이미 떨어지고 식지와 장지로 활을 당기다 남은 세 손가락마저 떨어질 때까지 싸우리라!" 김시민 장군의 맹세.

겨울이라 해가 짧아 걸음을 재촉했다. 완사역을 지나 대흥사에 도착하니 솔개비 타는 냄새가 정겹게 우리를 반겨주었다. 반갑게 맞아주시던 스님께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오신다고 보살님들께 미리 준비를 다 시켜두셨다"하시니 가슴이 뭉클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도량의 광개토대왕비'와 '독립군의 아버지, 홍암나철 대종사님의 비', 그리고 '한민족 고유의 경전인 천부경을 새긴 비'였다. 일행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법당 뒤에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이 있었던 것이다.

 통일기원국조 단군상와 한민족 고유의 경전인 천부경비 앞에서 홍익 스-마-일.

법당에 들어가자 언제부터 군불을 지폈는지 바닥이 누렇게 타 있었다. 이를 본 여자 선생님들은 오랫만에 황토찜질을 하자면서 아랫목에 발을 넣었다.

저녁은 절에서 손수 지은 쌀밥과 김치, 동치미, 우리 밀만두 등을 먹었는데, 얼마나 맛이 좋았던지 모두 두 그릇씩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는 어린시절 고향의 향수를 반추하는 대화를 나누고, 우리나라에 불교, 기독교 등 외래 종교가 들어오기 전에 단군할아버지께서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기 위해 이 나라를 열었다는 역사이야기와 대흥사의 유래 스님의 행자시절 이야기 등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누다 새벽 3시가 넘어 눈을 붙였다.

이곳의 화장실은 어릴 때 농촌의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볼일을 보고 나면 옆에 있는 바가지로 왕겨를 한 바가지 떠서 통에 넣어 주는 아주 친환경적인 해우소였다. 여희숙 선생님은 "우리들은 비데를 사용하면서 물을 엄청 소비하는데, 대흥사는 물을 쓸데없이 버리지않고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절"이라며 초파일에 아이들과 함께 오겠다고 미리 선약을 했다. 28일 아침식사 후에는 법당에서 천수경,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외우면서 몸과 마음을 정화한 후, 스님께서 귀한 법문을 해주셨다.  이어 명상시간을 가지면서 올해의 비전과 홍익교사로서의 새해비전을 공유하고 뜻을 모아 즐겁고 밝은 학교를 만드는 공적인 일에도 합심대도하기로 했다.

한많은 삶을 살다가신 단종의 태실(胎室)의 표석-세종의 태실지와는 1km, 뒤에는 개인 무덤

우리는 스님께 "집에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인근에 있는 세종대왕 태실(胎室)과 단종의 태실을 다녀왔다. 일제의 국혼 말살정책으로 훼손되어 지금은 일반인의 집안 묘소들이 있었다. 너무 허술한 역사문화재 관리에 가슴이 아팠다. 하만두 선생님은 "지금 '국사교과'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다시 변경한다고 하지만 그 교육은 우리 입장에서 정체성을 살리는 교육이 되어야지 친일식민사관에 의한 교육이 된다면, 차라리 현재보다 못할 것"이라 한탄하였다.

곤양 IC들머리 맥사 동네 청년들이 홍익인간 지구인이 되자면 세운 천부경비

마지막 탐방지는 곤양 IC부근의 '맥사'라는 동네 앞의 천부경비였다. 동네 청년회에서 무운발전과 동민들이 모두 홍익인간 지구인이 되길 바라면서 세웠다는 말을 들으니 '진주'는 말 그래도 '진주'라는 대화를 나누며 선생님들은 아쉬운 작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