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말에 구다라 나이(百濟無い)라는 말이 있는데 뜻은 '백제(구다라) 물건이 아니다', 즉 일본의 생필 중에서 백제에서 건너온 뛰어난 생산품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우리의 문화, 문화재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대변해 주는 말이다.

춘기방학을 맞아 경남 국학원 소속 홍익교사들과 자녀, 학생들 35명이 4박 5일 동안 일본 속의 우리 문화를 찾는 역사기행을 했다. 이번 기행은 밀양인의 긍지이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되찾게 해준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 열사의 중국 한단 섭현 독립운동현장을 밀양여고, 밀양동명고학생들에게 사비(私費)로 역사기행을 시켜주신 풍객(風客) 김영민님께서 귀하게 마련해주셨다.

역사기행 코스는 관광지는 배제하고 일본 속에 우리의 홍익 선도문화, 정신, 혼이 살아 있는 장소로 선정했는데 특히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최필숙 사무국장(밀양여고 국사 교사)께서 함께 하시면서 가는 곳마다 역사적인 교훈과 한·일 관계를 아주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어 더욱 가슴에 남는 기행이 되었다.

학생·교사들과 정체성 찾기

첫날은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의 조선 출정 전진기지 나고야성터와 조선의 앞선 문화, 문화재 중 도자기에 매료되어 많은 도공을 강제로 끌고 가 세계적인 자기(磁器) 강국이 되었는데 그 중 자기로 도리를 만들어 놓은 이삼평신사(神社)를 찾아 참배하고 나서, 히로시마에 이어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에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 평화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동상이 있었는데 오른손은 위로 올려 원폭의 위험성을, 옆으로 뻗은 왼손은 지상의 평화를, 닫힌 눈꺼풀은 원폭 희생자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공원의 여러 곳에는 피해자들의 명복을 비는 종이학들을 여기저기 엮어 걸어 놓아 걸음을 멈추게 했다. 공원의 분수대 앞 대리석에는 "목이 말라 참을 수가 없습니다! 물에는 기름 같은 것이 떠 있습니다. 너무나도 물이 마시고 싶어서 결국에 기름이 떠 있는 그대로 마셨습니다"라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었는데 원폭투하 바로 직후 처참했던 현장을 짐작하게 했다.

공원을 내려와 조금 올라가자 나가사키시의 피폭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96년 4월에 개관한 원폭자료관이 있었는데, 자료관에 들어가자 말로 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다가왔다. 입구에 11시2분에 멈춘 찌그러진 시계, 뜨거운 열기에 병이 녹아 있는 사진, 피폭의 참상을 보여주는 여러 사진의 전시를 비롯하여 원폭이 투하되게 된 경위와 핵무기 개발의 역사, 평화를 갈구하는 다양한 상징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핵을 보유한 나라 중 일본이 빠져 있어 일본의 흑심을 느끼게 했다.

첫날 기행을 마치고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서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 두 번째 투하되어 도시 중심부가 대부분 파괴되었다. 하지만 원래는 이곳이 목표가 아니라 조선소와 항구, 군수공장에 투하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기상조건이 맞지 않아 이곳에 폭탄을 투하하였다고 하자 학생들은 일본과 우리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엄청나 피해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역사는 냉정히 판단해 반성을

대학에 입학하는 김종호 군은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나가사키를 선정하여 투하한 미군은 그때 어떤 마음이었으며, 버섯 같은 구름이 솟아오를 때 어떤 느낌을 받았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수많은 원폭피해자가 자기 평생은 물론 2세까지 대를 이어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현실을 볼 때 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경남대학 김다은 학생은 결국은 일본의 잘못으로 이런 피해를 받게 되었는데 어디에도 반성한다는 문구는 찾을 수가 없었고, 오직 원폭을 투하한 미국을 원흉으로 모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평화의 공원과 자료관을 보는 일본인은 어떤 교훈을 느낄지 궁금했는데 뜻밖에 일본인들은 역사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니, 가슴이 아팠다.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 일왕은 2001년 12월 23일 내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번 역사기행을 통하여 역사는 누구의 편리에 의하여 해석되어서는 안 되고 3자의 입장에서 정확, 냉정한 판단 아래 반성하여 더불어 상생하는 지구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수곤 밀양 동명고 교사

* 본 칼럼은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