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소쇄원, “조선의 선비가 꿈꾼 이상세계를 담은 별서정원”에 이어)소쇄원의 주인 양산보(1503~1557)는 정암 조광조의 가장 어린 제자였다. 조선 중기 연산군의 동생이던 중종은 반정으로 자신을 왕에 앉힌 후 쥐고 흔드는 훈구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의 영수인 조광조를 발탁했다. 조광조는 신진사림과 함께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는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며, 자신이 꿈꾸던 유학의 이상정치를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했다.흠잡을 데 없이 바른말과 바른 행동으로 일관한 조광조를 탄핵하기 어려웠던 훈구파는 궁궐 내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
490년 전, 소쇄옹 양산보가 담양의 깊은 골짜기에 자신의 삶을 바쳐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세계와 조선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아 조성한 소쇄원瀟灑園. 소쇄원은 우리나라 별서정원의 표본이자 정수로,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명소이다.아침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감을 주는 산들로 둘러싸인 소쇄원의 초입에서 만난 것은 10미터를 훌쩍 넘는 굵고 키 큰 왕대숲 오솔길이었다. 완만하게 구부러진 길을 걷다 보면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며 대나무 잎이 바람결이 나풀나풀 꽃잎처럼 떨어져 속세와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을 안긴다.숲길
담양 10정자 중 ‘관어정觀魚亭’은 조선 숙종 때 축조한 ‘박지朴池’라는 저수지 한 가운데 인공 흙섬을 조성해 그 위에 지어진 ‘물 위의 정자’라는 점이 남다르다.전남 담양군 수북면 나산리에 있는 관어정을 찾은 때는 태풍 ‘오마이스’가 한반도를 지나던 8월 하순이었다. 초록빛 벼들이 자란 너른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멀리 보이는 산 위로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함을 안겨 주었다.나산마을 중앙에 있는 관어정을 둘러싼 저수지에는 푸른 연잎들이 가득했고, 백련들은 거센 비바람에 쓰러져 이제 막 지고 있었다. 이곳의 연꽃은
명옥헌원림鳴玉軒園林은 담양 10정자 중 배롱나무에서 핀 붉은 백일홍이 장관을 이루는 아름다운 정자로,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있다.조그마한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바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구슬이 부딪히는 듯하다고 하여 울 명(鳴), 옥구슬 옥(玉)의 이름을 가진 명옥헌원림은 고즈넉한 마을 길을 따라 굽이굽이 걸어 들어가야 나온다.정자 초입에 넓고 푸른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네모난 연못 한가운데는 거목의 배롱나무를 품은 둥근 작은 섬이 눈길을 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당시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
우리의 삶에서 완전한 쉼을 경험한 적이 있을까? 담양 10정자 중 ‘식영정息影亭’을 찾아가면 조선의 선비들이 왜 정자를 짓고 주변에 숲을 가꾸게 되었는지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된다.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식영정 원림은 10정자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소쇄원’에서 창계천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다. 우리말로 ‘별뫼(星山성산)’라 불리는 산의 둔덕에 자리 잡은 식영정은 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싸여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그 아래 연꽃 연못을 품은 아름다운 부용당과 고고한 선비의 공간인 서하당, 그리고 석천 임억령
서양의 집은 외부로부터 사적인 공간을 차단하기 위해 벽으로 둘러막는 형식인 반면, 우리 한옥은 창과 방문, 대청마루를 통해 밖을 내다보며 주변 산수를 끌어안는 형식이라고 흔히 말한다.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지형과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해 판단하는 ‘풍수지리’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집이나 정자 등 사람이 머무는 곳은 햇볕을 받아들이기 좋은 남향 또는 동남향이 대부분이고, 북향인 경우는 거의 없다.그러나 담양 10정자 중 ‘독수정獨守亭’은 유일한 북향 정자이다. 독수정을 찾는 길은 정자의 주인이 품은 망국亡國의 한과
“온 산천이 피로 물들고 계곡마다 하얀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시체 썩은 물과 핏물이 계곡을 흐르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참혹한 전란.”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에 기록한 임진왜란의 참상이다.당시 조선인 100만 명 이상이 죽었으며, 이와 동시에 수많은 문화재와 함께 역사기록까지 불타 없어졌다. 1592(선조25)년 이전의 '승정원일기'가 모두 불타 없어졌음에도 선조 즉위 초 10년간의 기록을 되살릴 수 있던 것은 미암 유희춘(1513~1577)의 ‘미암일기’ 덕분이었다.담양 10정자 중 ‘호남삼현湖南三賢’으로 불리
슬로시티 담양군 창평 들판에 서 있는 남극루를 떠나 또 다른 담양 10정자 상월정으로 가는 길은 담양 도보길인 싸목싸목길을 따라 약 1시간 30분 정도 거리이다.구불구불 농로를 따라 걷다가 도착한 월봉산 입구에서 울창한 숲길로 1킬로미터를 들어가야 했다. 가을 숲속에는 무심히 지나치면 발견하지 못할 만큼 작지만, 관심을 두면 각기 놀랄 만큼 신비한 모양새를 가진 들꽃이 한창이었다.깨끗한 흰색이 선명한 취꽃, 줄줄이 붉은 꽃이 달린 이삭여뀌, 작은 꽃자루와 꽃대가 달팽이처럼 구부러져 꿀벌을 유혹하는 진한 분홍빛 물봉선까지. 오동통한
담양 10정자 중 유일한 누각인 ‘남극루南極樓’로 가는 여정을 창평 전통시장에서 시작했다. 때마침 열린 오일장의 소박한 부산스러움을 뒤로하고 10여 분 정도 걸었다.그 길에 한옥이 어루러진 정겨운 돌담이 나타났다. ‘자연과 함께 하는 느림의 미학’을 주제로 조성된 담양군 창평 슬로시티였다. 백제 시대부터 형성된 이 마을은 예부터 곡식이 많이 나서 ‘만석궁’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그만큼 삶에 여유가 깃들어 있다.어느 집 대문 위 ‘겁나 많은 석류나무집’이라고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로 적힌 명패가 ‘풋’하고 절로 웃음 짓게 한다. 소유주
짙푸른 녹음 속을 잠시 지나는 소나기로 인해 떠도는 공기에서조차 푸른 향이 배어 나오던 늦여름.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산실 전라남도 담양군의 송강정을 올랐다.‘담양 10 정자’ 중 이웃 면앙정은 중턱에 대나무가 숲을 이루었는데, 송강정은 오르는 계단을 따라서 소나무들이 열을 지어 서서 완만한 아치를 이루었다. 문득 발밑을 살피니 물기 어린 돌계단 틈에 쌀알만큼 작은 쥐꼬리망초꽃이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매력을 뽐냈다.돌계단 끝에서 마주한 정자는 동남향으로 무등산을 바라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에 방이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