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여 저녁 무렵까지 직장에서 일하는 방식은 산업혁명 시대의 산물이다. 산업이 제조업을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공장이나 회사에 직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일을 시켜야 했다. 이제 정보 시대에 진입하여 이와 관련된 산업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근무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점점 산업 시대의 근무 방식은 비효율적, 시대에 뒤떨어진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떠한 근무 방식이 좋은지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앤 헬렌 피터슨 ㆍ찰리 워절 지음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표지. 이미지 반비
앤 헬렌 피터슨 ㆍ찰리 워절 지음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표지. 이미지 반비

앤 헬렌 피터슨과 찰리 워절이 펴낸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번아웃과 이직 없는 일터의 비밀》(이승연 옮김, 반비, 2023, 348쪽)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 관한 책이다.

앤 헬렌 피터슨은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정한 노동과 번아웃을 다뤄 화제를 모은 《요즘 애들》의 저자이자 《버즈피드 뉴스》의 선임 작가로 활동했다. 찰리 워절은 《뉴욕 타임스》 전속 작가로 활동하며 2019년 미러어워드를 수상했다.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에서 저자들은 ‘유연성’을 골자로 한 새로운 근무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과 회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게 실현할 방법을 탐구한다. 이것은 번아웃과 잦은 이직 없는 일터를 만드는 방법이자, 오늘날의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과도 통한다.

두 저자는 다양한 회사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수많은 사무실 노동자·관리자·경영자·연구자·컨설턴트 등을 인터뷰하며,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살펴본다. 이를 바탕으로 재택근무, 원격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등을 포함하는 유연근무제의 실제와 잠재력, 강점을 자세하게 파헤친다. 실패 사례와 성공 사례 모두를 철저하게 분석해 유연근무제의 성공적인 적용을 위한,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노동을 위한 지침과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는 현재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책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한계까지 치달은 노동 환경의 문제를 검토할 중요한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지속 불가능할 뿐 아니라 노동력의 재생산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현재의 노동과 일터 환경을 숙고하고, 어떤 근무 형식을 뉴노멀로 자리 잡게 할 것인가를 바로 지금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는 출근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는 방식을 다양하게 경험했다. 많은 사무직 노동자는 재택근무 및 유연근무제라는 새로운 근무 형태를 경험하면서, 매일같이 출퇴근에 시달리고 사무실에 일과를 얽매이는 삶이 변화할 단초를 보았다.

그런데 엔데믹 체제 논의가 나오면서 이런 근무 전환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그 논의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늘리는 데 집중되었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9시간으로 늘리려는 정부 개편안이 뜨거운 논쟁을 낳았다. 주 69시간을 풍자하는 일명 ‘기절 근무표’가 나왔고, 노동시간 늘리기에 초점을 두는 정책에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마저 커져가는 가운데 엔데믹을 맞이한 지금,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답일까?

앤 헬렌 피터슨ㆍ찰리 워절 지음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입체 표지. 이미지 반비
앤 헬렌 피터슨ㆍ찰리 워절 지음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입체 표지. 이미지 반비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무실의 한계를 벗어난 업무 방식이 삶 자체를 바꾸는 혁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엔데믹 시대에 걸맞은 일에 관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이고 실리적으로 풀어낸다. 책의 기조가 “희망을 담은 경계심”이듯, 저자들은 패러다임 전환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현실주의자로서 살펴본다. 유연근무의 명암을 균형 있게 조명하고, 여러 제안과 사례 뒤에는 세심한 주의사항이 뒤따른다. 즉 이 책은 일의 미래에 관한 거대담론도, 섣부른 낙관주의도 아니다. 오히려 다가올 전환이 매일의 삶에 미칠 영향, 경영 관리 기법에 요구되는 변화, 회사와 회사원의 이익에 관한, 아주 실질적인 이야기다.

두 저자는 지속 가능한 재택근무, 노동자와 회사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유연근무를 실현하려면, 업무 유연성·생산성·효율성에 대한 태도와 사고방식을 바꿔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변화가 핵심적이다. 경영계가 여태 추구해온 유연성은 고용 불안정을 심화하고 노동유연화의 혜택을 전부 회사 몫으로 만드는 노동 유연성이었다. 반면 2020년대에 요구되는 진정한 유연성은 고정되어야 할 업무와 유연해질 수 있는 업무를 면밀히 따져 일, 근무 형태, 업무 일정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업무 유연성’이 실현될 때 “일상적인 업무 경험, 업무 수행 역량,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 책은 유연성을 도입하는 가장 핵심적인 효과가 일 중심으로 구조화된 삶과 사회의 혁신이라는 걸 보여준다. 기존의 업무 문화와 24시간 우리를 연결하는 테크놀로지는 많은 이들이 좋든 싫든 일을 자기 삶의 중심에 놓게끔 했다. 그러면서 발생한 문제점들, 즉 개인의 스트레스 증가, 가정 내 노동의 불평등한 분배, 돌봄의 가치 하락, 사회적 결속력 약화 등은 온전히 개인이 감당할 몫으로 남거나 공동체에 그 비용이 전가되었다. 저자들은 우리가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유연근무가 단순히 업무의 시간과 장소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며 그것을 도입함으로써 수많은 변화가 가능해짐을 보여준다.

이 책의 폭넓고 장기적인 안목은 단순히 내 삶의 질을 높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업무가 삶의 중심이 아니게 되면, 육아와 가족 돌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고, 나아가 내 주변과 지역 공동체, 도시를 가꾸고 돌보는 데에도 관심을 쏟을 수 있다.

번아웃에서 벗어나고픈 직장인, 앞서 나가는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경영자는 물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그러한 장기 투자의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과 ‘지속 가능성’을 원하는 직장인이라면, 더 효율적인 회사를 원하는 관리자라면, 또 노동 현장과 그 바깥의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시민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