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최초의 한글편지 '나신걸 한글편지' 앞면.  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최초의 한글편지 '나신걸 한글편지' 앞면. 사진 문화재청.

“내달 열흘께 (00를 통해) 내 삼베 철릭(전투복)이랑 모시 철릭 중 성한 것으로 가리어 다 보내소. 그리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게.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1490년 경 영안도(永安道, 함경도의 옛 이름) 군관 나신걸(1461~1524)이 고향인 대전에 있는 아내 신창맹씨에게 보낸 한글편지의 일부이다.

이 편지는 기존에 최초의 한글편지로 알려진 순천 김씨 묘 출토 편지보다 50년이 앞선 편지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1446년) 불과 50여 년 만에 한글이 남녀 백성 누구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글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나신걸 한글편지 두번째 장. 사진 문화재청.
나신걸 한글편지 두번째 장.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훈민정음 반포 후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인 ‘나신걸 한글편지’ 2장을 지난 9일 보물로 지정했다.

해당 편지는 2011년 대전 유성구 금고동 제2쓰레기 매립장 조성부지에 있던 조선시대 안정나씨 묘역을 이장하던 중 발견되었다. 무관 출신 나신걸의 부인인 신창맹씨 묘에서 피장자의 머리맡에 놓여있었고, 2장의 편지는 여러번 접힌 상태로 출토되었다. 아내는 남편의 편지를 죽는 순간까지 고이 간직했던 듯 하다.

(왼쪽)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안정나씨 묘역에 있는 나신걸 부인 신창맹씨 부인묘 발굴. (오른쪽) 피장자의 머리맡에 놓여있던 남편 나신걸의 한글편지가 여러겹으로 접혀있었다. 사진 문화재청.
(왼쪽)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안정나씨 묘역에 있는 나신걸 부인 신창맹씨 부인묘 발굴. (오른쪽) 피장자의 머리맡에 놓여있던 남편 나신걸의 한글편지가 여러겹으로 접혀있었다. 사진 문화재청.

대전시립박물관으로부터 조선시대 복식이 출토된다는 소식에 참여한 부산대학교 한국전통복식연구소가 발굴한 것으로, 의복으로 포 7점, 저고리 10점, 바지 7점, 치마 4점 등 12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특히, 묘는 주자가례에 따라 관이 들어갈 자리에 단단한 회벽을 두텁게 둘러 그 안에 목관을 안치했는데 오랜 기간 매장되었음에도 산소가 차단된 채 한지에 쓰여 있어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훼손을 우려해 국가기록원에서 보존처리를 진행하고 취약한 재질을 비슷한 재질의 한지로 배접해 초음파 봉합처리를 실시했다.

나신걸 한글편지 보존처리 과정에서 내부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모습. 사진 문화재청.
나신걸 한글편지 보존처리 과정에서 내부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모습. 사진 문화재청.

편지 작성시기가 1490년으로 확인한 것은 편지 내에 표기된 ‘영안도’란 행정구역 명칭이 실록에 의하면 1470~1498년 사용되었다는 점, 안정나씨 세보를 통해 확인한 바 1461년생인 나신걸이 군관으로 활동하기 위해 성년이 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추정한 것이다.

‘나신걸 편지’는 15세기 현전하는 최초의 한글편지란 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문화재로서 높은 가치를 가진다.

먼저, 국어사 측면에서 중요하다. 훈민정음 창제 후 한글을 대중에게 얼마나 보급되었는지 여부를 관官에서 간행된 한글 문헌으로 확인할 수 없었는데 나신걸 편지를 통해 반포 50여 년만에 대중에게 깊숙하게 보급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15세기 당시 한국어 구어(말)와 문어(글)의 차이를 구명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해당 편지는 문법 기제의 발달이 구어에서 시작해서 문어로 전이되는 현상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나신걸의 편지는 일부지만 중철표기(연철과 분철이 함께 나타나는 표기법)을 보여준다. 연철은 ‘이어적기’라고 하여 15세기~16세기 한글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표음적 표기를 말하며, 분철은 ‘끊어적기’라고 하여 어법에 맞게 각각 음절이나 성분 단위로 밝혀 적는 것인데 지금 우리가 쓰는 글이 끊어적기이다.

문법을 보면 ‘하소체’ 종결어미를 사용하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편지를 보낼 때 쓰는 전형적인 표현으로 하소체 사용시기를 15세기 말로 끌어올렸다.

한편, 남성이 일상에서 능숙하게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대체로 한글 창제 및 반포 후 한글이 여성 전유물이었던 것으로 판단해 왔는데 유일한 15세기 한글편지의 작성자가 남성이란 점은 한글 연구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아울러 문화재청은 한글서예사 측면에서 이 편지가 훈민정음 반포 이후 한글로 필사한 편지 연구의 시발점이 되는 자료이자, 한글 서예의 서체 변천에 대한 연구와 서체의 발전 과정 연구에 이정표가 된다고 평했다.

나신걸 한글편지의 서체는 꾸밈없이 수수하고 예스럽고 소박하다. 아내에게 진솔한 심정을 표현한 편지에서 당시 백성의 삶과 가정 경영의 실태, 농경문화, 여성들의 생활, 복식 문화, 장묘문화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