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은 청소년에게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모험이자 길 위에서 뜻밖의 자신을 마주하고 성장할 기회가 된다.

갭이어형 대안고등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생들은 지난 7월 2일부터 12일까지 동해안을 따라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갭이어형 대안고등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생들은 지난 7월 2일부터 12일까지 동해안을 따라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세상을 무대로 자신의 꿈을 찾아 갭이어 과정을 밟는 대안고등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9기 재학생 33명과 졸업생 4명은 지난 7월 2일부터 12일까지 동해안을 따라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180km의 국토대장정을 마쳤다.

코로나 대유행이후 3년 만에 다시 시작한 제4회 ‘사이다(사이좋게 이루자 다함께)’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김채영 학생(17세)에게 11~13kg의 짐을 등에 메고 비를 맞으며 걷고 설악산을 등반한 경험은 자신을 격려할 수 있는 용기와 리더십을 키워주었다. 다음은 김채영 학생의 국토대장정 체험기이다.

갭이어형 대안고등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9기 김채영 학생(17세)은 지난 7월 2일부터 12일까지 동해안을 따라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사진 본인제공]
갭이어형 대안고등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9기 김채영 학생(17세)은 지난 7월 2일부터 12일까지 동해안을 따라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사진 본인제공]

국토대장정은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벤자민학교 6기인 친오빠가 사이다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고 변화한 모습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참가신청서를 제출하고 출발 전 21일간 매일 5km를 걷는 과제를 해내면서 내게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하루도 빠짐없이 걸으며 지금보다 4배 정도 되는 거리를 10kg 이상의 가방을 메고 걸어야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내가 얼마나 변화할지 설렘도 컸다. 내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이겨내 보고 싶었고, 조장을 맡아 조원들과의 소통을 하면서 내게 어떤 모습이 있을지 궁금했다.

출발에 앞서 국토대장정팀을 인솔할 최경미 관장님(벤자민학교 대전학습관)이 선배들의 에피소드를 전해주셨다. 처음에는 편의점 등에서 쉴 때 누가 의자에 앉을지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하는데 갈수록 그냥 바닥에 턱턱 앉게 된다든지, 집에서 샤워하는데 30~40분씩 걸리던 것도 5분 안에 끝내고 나올 수 있게 된다고 하셨다. 일상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김채영 학생은 국토대장정 출발을 앞두고 오랫동안 길렀던 머리를 자르면서 마음을 다졌다. [사진 본인제공]
김채영 학생은 국토대장정 출발을 앞두고 오랫동안 길렀던 머리를 자르면서 마음을 다졌다. [사진 본인제공]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 오랫동안 길러온 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다. 마음의 다짐이기도 했고, 더운 날씨에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고민했던 것과 달리 잘 어울리고 시원하고 가벼워 내가 대원으로서 준비되었다고 느꼈다. 사실 준비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두려움도 컸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 미리 걱정만 잔뜩 하면 뭐하냐고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걱정이 많고, 시작해서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채찍질만 했다. 준비 기간 매일 30초씩 거울 앞에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용기있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에게 말해주며 영상을 찍었지만 마음 한 켠에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대장정 기간 중 12kg이나 되는 가방의 무게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힘든 순간이 찾아오니까 저 깊은 곳에서 놓지 못하고 있던 생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나를 발견했다. 가장 힘들 때 누구에게 위로받기보다 스스로 진심으로 칭찬하고 위로하고 응원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동해안을 따라 해안가를 걸으며 푸른 바다에 풍던 뛰어들었다.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동해안을 따라 해안가를 걸으며 푸른 바다에 풍던 뛰어들었다.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또 다른 변화는 조장을 맡아 조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겼다. 평상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대장정 초반에 모든 책임을 내가 지려고 했다. 야영지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모두 씻으러 가든지 빨래를 하러 가서 식사 준비가 늦어져 혼자 코펠에 밥을 하며 태우거나 설익어 쩔쩔맸다.

그런데 각각 밥 담당과 설거지 담당으로 역할을 분담하니 모두가 조 활동에 집중하면서도 개인 일도 할 수 있게 되어 훨씬 수월해졌다. 내가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지니 조원들에게 요구하던 기준도 내려놓고 서로에게 맞추게 되었다. 내가 만든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여 기준에 못 미치고 실수했다고 조원들을 탓하는 게 없어지니 같이 무거운 짐을 나누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해졌다.

조원들과 함께 하며 감사함을 알게 되고 남들 앞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관념이 사라지니까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편하게 느껴져서 그 누구 앞에서도 호탕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최경미 관장님도 국토대장정에서 내가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이 ‘웃음’이라고 하셨다. 전에는 편한 사람들 앞에서만 나오던 호탕한 웃음이 이제는 누구와 있어도 나온다.

국토대장정 180km 힘든 길을 조원들과 함께 하면서 김채영 학생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을 내려놓고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며 누구 앞에서도 호탕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 본인제공]
국토대장정 180km 힘든 길을 조원들과 함께 하면서 김채영 학생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을 내려놓고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며 누구 앞에서도 호탕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 본인제공]

그리고 혹시 상대의 기분이 상할까, 나를 미워할까 속으로만 삭히던 것에서 벗어나 용기를 낼 수 있었다. 37명이 길을 걷다 보니 학습관에서나 평소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르게 부딪힘의 연속이었는데 그중 유독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고 주변에 표출하는 대원이었다. 

초반에는 들어주고 열심히 챙기며 다독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는 습관처럼 본인이 힘들다는 것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주변에 동조를 구하며 울었다. 나까지 힘이 빠지고 주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용기를 내어 그만둬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부정적인 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대원들에게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더니 모두가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힘차게 전진할 수 있었다. 모두 함께 긍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미움받을 용기’를 내면서 국토대장정의 모토인 ‘사이좋게 이루자 다 함께’에 맞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사람을 보는 기준점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면서 다른 사람을 수용할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또 한가지, 백패킹으로 걷다보니 걸음을 멈춘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텐트를 치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면서 퇴근하고 살림을 하는 엄마의 분주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또, 배낭의 무게가 아빠의 가장으로서 무게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부모님께 감사했다. 국토대장정이 아니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일상생활로 돌아가도 이번에 힘들 때 스스로 응원했던 순간들, 그때의 힘들었던 경험, 그런데도 이겨낸 나 자신을 기억하며 어떤 시련이 와도 헤쳐나가자는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