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성군이자 우리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소헌왕후와의 사이에서 8남 2녀를 비롯해 5명의 비빈 사이에서 낳은 자녀까지 모두 18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은 두었다.

세종대왕의 자녀 중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고 관련 유물도 전해진 이들은 조선 5대 왕 문종(1414~1452)과 7대 왕 세조(1417~1468), 안평대군(1418~1453), 금성대군(1426~1457) 이다.

세종대왕의 18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까지 19기의 태실이 경북 성주 선석산에 있는데 이때 사용한 도자기인 안태용분청사기.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지난 9월 29일부터 11월 29일까지 2020년 하반기 기획전시로 ‘세종대왕의 왕자들’을 온라인으로 개최한다.

궁능유적본부 누리집(http://rayal.cha.go.kr)과 세종대왕유적관리소 누리집(http//:sejong.cha.go.kr)을 통해 그들의 삶을 관련유물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세종의 18왕자와 원손 단종(1441~1457)의 태실까지 19기의 태실을 경상북도 성주 선석산에 모아놓았는데, 이때 사용한 도자기인 ‘안태安胎용기’는 매우 특이한 양식이다. 안태는 조선시대 아기의 태를 항아리에 담아 길지(吉地, 좋은 터)를 찾아 태실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곳에서 발굴된 안태용분청사기는 조선시대 안태용기의 변천사를 알수 있다.

세종의 맏아들 문종은 세자시절 강수량 측정 연구에 참여했다. 사진은 측우기. [사진=문화재청]
세종의 맏아들 문종은 세자시절 강수량 측정 연구에 참여했다. 사진은 측우기. [사진=문화재청]

세종의 맏아들 문종과 관련된 유물은 ‘축우기’이다. 《세종실록》에는 문종이 세자시절 강수량을 측정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참여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세종의 둘째 아들 세조와 관련된 유물은 ‘세조어진초본’이 있다. 조선시대 어진 대다수가 6.25한국전쟁 중이던 1954년 12월 용두산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그중 세조의 모습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로 남았다.

세조어진 초본. [사진=문화재청]
세조어진 초본. [사진=문화재청]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의 유물로는 친필을 담은 병풍이 전시된다. 15세기 전반 명필로 유명한 안평대군은 중국 원나라 조맹부(1254~1322)의 글씨 ‘송설체’를 체득해 조선 전기 송설체의 유행을 선도했다. 병풍은 목판에 새긴 병풍용 행초(행서와 초서)로, 글자 형태는 조금 길고 운필運筆, 즉 글씨를 쓸 때 붓을 대고 옮기고 떼는 방법이 부드럽고, 원만하고 둥근 필체인 원필圓筆을 많이 사용해 이백李白(701~762)의 오언율시를 썼다.

안평대군 이용의 친필목각본 병풍. [사진=문화재청]
안평대군 이용의 친필목각본 병풍. [사진=문화재청]

세종의 여섯 째 아들인 금성대군 관련 유물은 금성대군의 사적(事跡 실적이나 공적)을 기록한 ‘금성대군실기’로 1858년 제작된 목활자본이다.

금성대군실기. [사진=문화재청]
금성대군실기. [사진=문화재청]

이번 기획전시는 코로나19로 인한 실내 시설 폐쇄 및 비대면 문화 수요 증가에 맞춰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전시관 재개관이 허용되면 안전수칙을 준수해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관람토록 할 예정이다. 전시관 재개여부는 궁능유적본부 누리집으로 공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