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2일 ‘문화재지킴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
6월22일 ‘문화재지킴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19.12.12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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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12일 국회의원회관서 워크숍 개최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회장 조상열)는 “6월22일 ‘문화재지킴이날’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워크숍”을 12월 12일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개최했다.

(가칭)‘문화재지킴이날’국가기념일 제정추진위원회, 유성엽국회의원실, 전북 정읍시가 주관한 이날 워크숍에는 김현모 문화재청차장, 유성엽 대안신당 대표, 유진섭 정읍시장 등이 참석했다.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조상열 회장은 “‘문화재지킴이의 날’국가기념일 지정이 왜 필요한가”라는 기조발표에서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는 6월 22일을 ‘문화재지킴이 날’로 제정하고 이를 선포하는 행사를 문화재청과 지난 2018년 6월 21일 경복궁 수정전 일대에서 개최했다”며 “6월 22일을 ‘문화재지킴이날’로 제정하게 된 것은 임진왜란의 전화 속에서 민간인들이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는 “6월22일 ‘문화재지킴이날’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워크숍”을  12일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개최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는 “6월22일 ‘문화재지킴이날’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워크숍”을 12일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개최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조 회장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총 네 곳의 사고(史庫) 가운데 임진왜란 때 3곳이 불타버리고 오직 전주사고만 남았고 이 또한 전화의 위기에 있었는데,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 등이 정읍의 내장산 용굴암 등으로 옮겼는데 이날이 바로 1592년 6월 22일이다”며 “이들은 수직일기까지 써가며 380여일동안 왕조실록을 지켜 이로 인해 조선왕조실록은 온전히 후세에 전해져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인류의 문화재가 되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또한 역사 속에 문화재를 지켜 온 사람들로 한국 전쟁 당시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위기에서 지켜낸 김영환 공군대령, 오대산 상원사를 소실 위기에서 구한 한암 스님, 화엄사를 지켜낸 차일혁 전투경찰 대장 등을 소개하고 “국난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일어난 민간인을 ‘의병’이라 한다면 위기에서 문화재를 지켜낸 사람은 ‘문화재 의병’인 셈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조 회장은 “‘문화재지킴이의날’을 국가 기념일로 제정하면 향후 국민은 문화재지킴이날 제정의 의미를 깊이 새기며 문화재의 가치와 중요성을 공감하고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자발적 참여로 지키고 가꾸는 운동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이것이 ‘문화재지킴이날’을 국가 기념일로 제정해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지킴이’날 제정 역사적 고찰(물재 안의의 가계와 《임계기사》연구)을 발표한 이용찬 향토사학자는 “물재 안의는 중종 24년인 기축년(1529) 12월 6일 당시 태인현 고현내에서 태어나 백천(현재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로 이거하였다. 그는 일재 이항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스승의 유지를 따랐으며, 임진왜란으로 왜구가 쳐들어오자 손홍록과 함께 의병과 식량, 의복을 모집하고 스스로 도계운장(都繼運長)이 되어 쌀 삼백석과 비단, 포 등 여러 물품을 모아 행재소에 보내고 반은 세 곳의 의병진영에 보냈다”며 “이후 안의는 손홍옥과 함께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과 선대 《조선왕조실록》을 우마 30여마리에 싣고 정읍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겨 이듬해 7월 왕명으로 아산으로의 이안까지 험난한 피난 여정을 자비로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용찬 향토사학자는 “안의가 남긴 수직일기 《임계기사》에는 안의와 손홍록 두 선비의 수직 상황이 남아 있고, 이를 통해 임진년 6월 22일 실록을 처음 내장산으로 옮겼다는 사실과 이듬해 계사년 7월 19일 아산에서 충청감사 이산보에게 전달되어 24일 강화도로 보내졌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계기사》는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이 1592년 임진년 6월 22일부터 이듬해 7월24일까지 《조선왕조실록》을 전주사고에서 내장산으로 이안하고 다시 아산으로 이안하여 충청감사에게 인계하고 수직했던 상황을 일기 형식으로 안의가 기록한 수직일기(守直日記)이다. 《임계기사》는 탐진안씨의 문중에서 대대로 종손에게 전해내려온 가보이다.  탐진안씨 15대 종손 고 안성하 씨가 2011년 《임계기사》를 정읍시립박물관에 영구 기탁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임계기사》는 2017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45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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