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사이드 아웃' 스틸컷

라일리는 미네소타에서 태어나고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지금껏 살면서, 엄마, 아빠,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즐겁고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어가는 해맑은 소녀이다. 그런 그녀가 아빠의 직장 일 때문에 갑작스럽게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곳은 낯설고 삭막하고, 다정했던 엄마, 아빠도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라일리는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애써보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져만 간다…….

이러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줄거리는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하고, 이전에도 영화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어, 그리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영화가 특이한 점은 이사(移徙)라는 외부적 사건과 함께 그것을 겪고 있는 사춘기 소녀의 정신 내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사는 상사와의 충돌보다 큰 스트레스
 
특히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다섯 감정이 제각기 사람의 모습을 띠고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하는 것으로 설정하여, 우리 정신과 행동을 좌우하는 감정의 역할을 실감나게 잘 보여준다. 여기서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은 정서 연구의 대가이며 실제로 이 영화의 과학 자문을 맡았던 폴 에크만이 주장한 기본정서 즉, 기쁨, 슬픔, 분노, 혐오, 두려움을 각각 형상화한 것이다.  
 
라일리와 그의 가족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이사는 큰 스트레스에 속한다. 홈즈의 생활사건 척도에 의하면, 결혼을 50점, 배우자의 죽음을 100점으로 간주할 때, 거주지와 학교를 옮기는 것은 20점, 생활 조건이 바뀌는 것은 25점으로, 1,000만 원 이하의 저당을 잡히거나 직장에서 상사와 충돌했을 때보다도 더 큰 스트레스에 해당한다. 당연히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날 테고, 예민해져서 사람들을 까칠하게 대하게 되고, 마음과 달리 일이 풀리지 않는 것에 좌절하고, 상처 받기 십상이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동안 생길 수밖에 없는 부정적 감정들을 라일리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엄마, 아빠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강한 라일리 내면의 감정적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때부터 주인공 라일리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어린시절 고향 미네소타에서 보낸 일상은 대부분 즐겁고 신났었다. 그래서 이제껏 라일리의 내면은 주로 기쁨이 주도했었다. 이사 후에 이전과 다른 낯선 환경 속에서도 기쁨은 여전히 컨트롤 본부를 주도하려고 하였다. 즐거운 과거를 기억하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믿으면서 나름 기쁜 감정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행동은 엉뚱하게 버럭 화를 내거나, 까칠한 표현을 하게 되고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무엇보다도 슬픔이 통제되지 않고 회복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라일리는 이제 막 유년기를 벗어나 사춘기,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으니 당연히 잘 모르겠지만 모든 감정은 나름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감정을 억제할 것인가? 지켜볼 것인가?
 
뇌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감정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다. 두려운 감정은 개인으로 하여금 위험을 피하게 하고, 불안한 감정은 안전한 환경을 찾게 하고, 분노의 감정은 맞서 싸울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사랑의 감정은 다른 사람을 보살피게 만드는 등의 생존적 가치를 갖는다. 
 
감정은 개인의 삶에서 무시하거나 억제해야 하는 비합리적인 본능 현상이 아니라 생존과 적응을 위해서 필수적인 사항이다. 따라서 감정 조절을 통하여 매 순간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지각하고 그것의 의미를 잘 파악하여 상황에 적절하게 반응하고 대처할 때 감정은 우리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어린 라일리는 이러한 감정의 작동 기제를 당연히 모를 테고, 자기 딴에는 좋았던 과거로 돌아갈 요량으로 고향 가는 버스에 오른다. 다행히 어리지만 현명한 우리의 주인공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곰곰이 기억을 돌이켜 보면서 슬픔을 인정하게 된다. 
 
이는 뇌교육에서 말하는 건전한 감정 조절방식으로, 감정을 억제하거나 반대로 압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지켜봄으로써 감정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통제력을 갖고, 감정이 내가 아니라 내 것임을 아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후에 라일리는 슬픔을 받아들이고, 과거의 즐거운 기억들과 작별을 하는 대신, 가족과 더 깊은 유대를 맺고 새롭게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슬픔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 라일리는 감정적으로 한층 성숙해졌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 일어날 크고 작은 심리적 스트레스들에도 현명하게 잘 대처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어린 소녀가 주인공인 만화임에도, 연령과 상황을 초월하여 우리 자신의 감정 상태와 내면의 관리방식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도록 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만들어준 영화이다. 
 
 
 
 
▲ 윤선아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윤선아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행동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교수로 있다. 건강심리전문가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뇌교육에 있어서 정서조절 연구 현황과 과제(뇌교육연구, 2008), 한국판 분열형 성격장애 척도-단축형의 타당화 연구(한국심리학회지: 임상, 201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