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0대, 20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때 우리나라에는 왜색(倭色)이 짙은 것은 무조건 금지되었던 때가 있다. 일본 드라마와 영화, 음악은 물론 애니메이션까지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접할 수 없던 시절 말이다. 인터넷 대신 전화선을 당겨쓰는 천리안과 하이텔을 하던 나는 우연히 PC통신 동호회에서 알게 된 일본 대중음악에 호기심이 생겨 시내 지하상가를 쏘다녔던 적이 있다. 당시 X-JAPAN을 시작으로 당대 최고의 일본 아이돌인 스마프(SMAP)를 섭렵하던 시기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복장과 화장,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는 비쥬얼락이 유행이었다. 덕분에 내가 단골로 다니던 지하상가 역시 온갖 치장으로 산만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밴드들(그래 봤자 대부분이 X-JAPAN이었다)의 브로마이드로 가득 차 있었다.

▲ 지브리스튜디오 입체조형전 최고의 포토라인. 주말에 가면 이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속 장면이 밤이라서 조명이 어둡다. 고로 사진이 잘 안 나온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러던 어느 날, 기괴한 브로마이드 사이로 귀여운 녀석이 하나 눈에 띄었다. 곰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구리도 아닌 묘한 인상의 둥글둥글한 동물 그림이었다. 그 녀석 옆으로는 어린이 둘이 자리하고 있다. 정체가 뭐지? 바로 일본 국민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와의 만남이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웃돈을 주고 구한 '이웃집 토토로'는 충격이었다. 비쥬얼이 강렬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2D로 만들어진 만화영화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사로잡혀 버렸다. 상상의 동물 '토토로'는 물론이오, 고양이버스(네코버스)와 주인공 자매 사츠키와 메이까지. 그 별것 없는 이야기를 보고 울고 또 보고 웃고 또 보고 보고 했었다. 덕분에 우리집 현관으로 가는 길에는 지금도 토토로가 놓여있다. 그렇다고 해서 집을 드나들 때 토토로와 대화까지 나누는 그런 사이는 아니다(?)

다행히 1998년 10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면서 이웃집 토토로만이 아니라 토토로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무척 쉽게(어둡지 않은 경로로 웃돈 없이) 만날 수 있었다. 너구리들의 성지가 개발구역이 되어버리자 인간으로 변신해 성지를 지켜나가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탐욕을 그치지 못해 돼지가 되어버린 엄마 아빠를 대신해 목욕탕에서 일하며 마법을 풀어보려 애쓰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대자연의 위대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신들이 즐겨찾는 목욕탕을 운영하는 사장님 '유바바'. 책상 위에는 각종 외상 문건이 즐비하다.

그저 열거하기에도 숨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이 한국을 찾았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바로 눈앞에서 토토로를 볼 수 있고 원령공주 속 검을 속속 들여다볼 수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하울이 얼마나 꽃미남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바로 이 모든 작품을 제작해낸 스튜디오 지브리의 입체조형전이 2015년 3월 1일까지 약 6개월간 서울 용산역 현대 아이파크몰 특별전시관에서 열린다.

전시장에는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붉은 돼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과 같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애니메이션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의 압권은 잠자는 토토로 엿보기다. 그 숨소리와 들고 나는 숨이 고스란히 보이는 배를 보고 있노라면 메이처럼 그 위에 올라타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 토토로는 숲 속 가장 큰 나무 속에서 산다. 지금 취침 중인 토토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호시노 코지 대표이사는 “이번 전시회는 애니메이션 세계를 재현한 것으로 비록 비현실이지만 ‘토토로는 정말로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바로 이것이 미야자키 감독 작품의 테마이고, 입체 조형전에 담긴 마음이다.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지브리의 세계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이번 전시회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공식 홈페이지(www.2014ghibriexhibition.com) 또는 전화 1688-6875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영상촬영은 안 되지만 사진촬영은 누구에게나 허용되어있는 관계로 주말에 가면 토토로나 가오나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얼굴 없는 귀신)와 사진찍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하자.

글/사진. 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