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 당파싸움이 극에 달해 신하들이 왕좌까지도 좌우했다.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을 제거한 노론은 보복이 두려워 경종이 즉위하려는 것을 막아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종 즉위 후 노론은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후사가 없는 점을 들어 연인군을 왕세자로 봉할 것을 압박하였다. 연인군은 경종의 이복 형제로 노론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경종 1년 (1721) 8월 경종은 연인군을 왕세제로 책봉하였다.

이렇게 기세를 잡은 노론은 왕세제의 대리청정으로 정권 획득을 공고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경종과 소론의 반격으로 1721년 신축옥사, 1722년 임인옥사가 잇따라 일어나고 왕세제의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종은 즉위 4년만에 후사 없이 승하함으로써 왕세제가 즉위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영조이다. 

경종이 1724년 8월 25일 창경궁(昌慶宮) 환취정(環翠亭)에서 승하(昇遐)하였다. 그 후 6일째 되는 날인 8월30일 오시(午時)에 왕세제(王世弟)가 창덕궁(昌德宮)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하고 교서를 반포했다.

교서는 경종의 승하로 인한 지극한 슬픔, 경종에게 바치는 무한한 찬사로 전반부를 채웠다. 숙종에 이어 4년만에 경종이 승하하니 국상이 또 났다. 슬픔이 가시기 전에 또 슬픈 일을 만났으니 지극한 슬픔을 억제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왕은 말하노라. 하늘이 어찌 차마 이런 재앙을 내리는가? 거듭 큰 상(喪)을 만났는데, 나라에는 임금이 없을 수 없으므로 억지로 군하(群下)의 청을 따랐노라. 지극한 슬픔을 억제하기 어려운데 보위가 어찌 편하겠는가? 삼가 생각하건대, 대행 대왕(大行大王: 경종)께서는 타고난 천성이 관대하고 어질었으며 그 마음은 효우(孝友)하였다. 저위(儲位)에 있은 지 30년에 온 국민이 목숨을 바칠 정성이 간절하였고, 조정의 정사를 대리한 지 4년에 성고(聖考)께서는 수고로움을 나누는 기쁨이 있었다. 남몰래 부각된 실덕(實德)은 지극히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마침내 정고(貞固)하게 대처했고, 말없이 운용한 신기(神機)는 지극히 비색함을 돌려서 태평하게 하였다. 하늘이 널리 덮어서 만물을 길러주어 모두 형통하게 하고, 태양이 높이 매달려 퍼지는 불길한 기운을 신속하게 쓸어버렸네. 놀이와 사냥과 음악과 여색은 하나도 좋아함이 없었으므로, 정령(政令)을 시행함에 있어 모두 그 적절함을 얻었다. 위대하신 선왕(先王)의 덕을 크게 이어받았으니, 거의 삼대(三代)의 다스림을 회복할 수 있었으나, 기거(起居)도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하다가 문득 구령(九齡)의 징조(90세까지 사는 징조)를 잃었도다. 반야(半夜) 사이에 갑자기 빙궤(憑几)의 유명(遺命)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불행하게도 5년 안에 두번이나 승하(昇遐)의 슬픔을 품게 되었으니, 애처로운 나는 고아로서 이렇게 혹독한 벌을 받게 되었다. 여차(廬次)에서 곡읍(哭泣)을 하며 명령을 내릴 경황이 없었는데, 왕위에 오를 면복(冕服) 차림으로 어찌 차마 대통(大統)을 계승할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비록 백료들의 요청이 더욱 간절하다 하나, 다만 슬픈 감회만 더할 뿐이다. 돌이켜 보건대, 양전(兩殿)께서 특별히 간곡하게 권유(勸諭)하시니, 감히 초지(初志)를 고집할 수 있겠는가?

윤리로는 형제이고 의리로는 부자이니, 진실로 지극히 애통함이 끝이 없다. 조종(祖宗)을 계승하여 신민(臣民)의 주인이 되었으나 보잘것없는 몸이 감당하기 어려움을 어찌하겠는가? 환규(桓圭)를 잡고서 오동잎[桐葉]의 희롱을 생각하였고, 법전(法殿)에 임해서 동기간(同氣間)에 쓸쓸함을 슬퍼하노라.

갱장(羹墻)의 사모함이 간절하니 차례를 계승하는 생각 잊을 수가 없고, 근심이 더욱 깊었으니 임금이 되는 것이 어찌 기쁘겠는가? 높은 지위에 오르니 두려움이 마음을 놀라게 하고, 성대한 의식을 보니 끊임없이 눈물만 흐른다. 선왕의 성덕(盛德)과 선행(善行)에 뒤따라 이어가기를 어찌 바라겠는가? 열성(列聖)의 대업(大業)과 큰 규모를 무너뜨릴까 매우 걱정이로다. 조종(祖宗)께서 잇따라 멀리 떠남을 슬퍼했으니, 나라를 장차 어떻게 다스릴 것이며, 인종(仁宗)·명종(明宗)처럼 서로 계승하기를 내가 어찌 감히 본받을 수 있겠는가? 이에 중외(中外)에 널리 알려서 사민(士民)과 기쁨을 함께하리라. 비록 옛 나라이나 새로운 명을 받았으니, 정치는 시작을 잘해야 할 기회를 당했고, 허물과 수치를 깨끗이 씻어내기 위하여, 이에 함께 살기 위한 인덕(仁德)을 베푸노라.

  이달 30일 새벽 이전부터 잡범(雜犯)으로서 사죄(死罪) 이하는 모두 사면(赦免)하고, 관직(官職)이 있는 자는 각각 한 자급(資級)을 올려 주되 자궁자(資窮者)는 대가(代加)하게 한다. 아! 편안하고 위태로움과 다스려지고 혼란스러운 계기가 처음 시작에 있지 않음이 없으니, 협력하여 도와주어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여러 신하에게 기대하노라. 그래서 이렇게 교시(敎示)하니,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