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교수
신농국이 성세를 누리자 배달국의 제10세 갈고葛古 환웅은 신농국을 제후로 봉하고, 공상空桑[궁상窮桑, 하남성 진류陳留(회양)] 일대를 경계로 하여 동쪽을 배달국의 영토로, 서쪽을 신농국의 영토로 하였다.

이로써 신농국에게는 배달국의 ‘삼신오제론三神五帝論’에 입각하여 ‘염제炎帝’의 칭호가 부여되었다. ‘삼신오제론’은 한국선도의 ‘삼원오행론’의 다른 이름이다. 곧 ‘천·지·인 삼원’은 ‘삼신’, ‘기·화·수·토·천부 또는 목·화·토·금·수 5행’은 ‘흑제·적제·청제·백제·황제 오제’ 또는 ‘태수·태화·태목·태금·태토 5령靈’으로도 지칭되고 있다.

본질인 ‘천·지·인 삼원’과 현상인 ‘목·화·토·금·수(기·화·수·토·천부) 오행’의 논리를 정치현실에 적용해보면 ‘천·지·인 삼원’은 ‘삼신하느님(상제上帝)’, 현상인 ‘목·화·토·금·수 오행’은 ‘오제’가 된다. ‘삼신하느님(상제)국’은 배달국으로 ‘천·지·인 삼원(천부)’의 본질을 전수하는 천손문화의 종주요, 오제로 이름되는 제후국은 천손문화를 받아들여 펼치는 나라들이다.

이러한 삼신오제론에 따라 신농씨의 후예에게 염제(赤帝)의 칭호가 주어졌는데, 염제(적제)의 칭호가 그러하듯이 신농씨는 ‘태양의 신’으로 불리었다. 신농국은 배달국 광명문화(태양문화, 밝문화)의 계승자였던 것이다. 

여기서 배달국의 삼원오행론에 기반한 ‘삼신오제론’, 곧 ‘삼신상제-오제론’이 후대의 ‘천자-제후 봉건론’의 시원이 됨을 알 수 있다.

대체로 봉건제는 서주시대에 이르러 처음 등장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그 원류는 배달국이며 서주에 이르러 화하족이 배달국 이래 단군조선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천하질서를 주장하면서 배달국·단군조선의 봉건제를 모방하여 독자적인 봉건질서를 정립하였던 것이다.

▲ 배달국 홍산문화의 천부인 : ‘삼태극 옥벽玉璧’ 3종 : 우주의 중심 ‘천부’ 자리에서 펼쳐져 나오는 우주의 근원적 생명에너지의 형상화이다. 세 갈래는 그 생명에너지의 세 차원인 천 ․지․ 인(빛․ 파동․소리) 삼원을 의미한다.

신농국이 분봉될 당시 산동성 공상(궁상) 동쪽의 땅에는 소호씨少皞氏(후의 백제白帝)가 자리하고 있었다. 소호씨는 신농국의 선조인 소전씨와 마찬가지로 비서갑 웅족의 한 갈래이자 거발한 환웅대 우가 출신인 고시씨의 방계 후예였다고 한다.

중국측 기록에는 동방의 왕녀 황아皇娥가 서쪽으로 옮겨와 ‘궁상’이라는 거대한 뽕나무가 있는 곳에 정착하였고 이곳에서 백제를 만나 소호씨를 낳았다고 한다. ‘공상’은 높이가 무려 천길이 되고 일만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보랏빛 열매를 먹으면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까지 살 수 있었다고 하니, 이는 분명 배달국 ‘광명문화(태양문화, 밝문화)’의 일상징인 신단수였을 것이며, 이 나무가 있는 ‘공상’ 지역은 소호국의 제일 소도蘇塗였을 것이다. 

소호씨 또한 송골매의 모습이며 신하들도 한 결 같이 새로 묘사되었으니, 배달국 ‘광명문화(태양문화, 밝문화)’의 대표적인 상징물의 일종인 ‘새’ 토템이 적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소호국은 중원지역의 신농국과 달리 성향적으로 배달국 천손문화와 일체화되어 있던 나라였으니, 공상을 경계로 ‘신농국과 배달국이 나뉘었다’는『환단고기』의 인식이 성립하게 된다.

제13세 사와라斯瓦羅 환웅 초에는 공상 동쪽에 자리한 배달국의 웅족(소호족)을 ‘려黎(구려九黎)’에 봉하였다. 배달국의 삼신오제론에 입각한 분봉제도가 화하의 신농족에 이어 소호족에도 적용되었던 것이니, 소호씨가 ‘궁상제窮桑帝’, ‘제준帝俊’, ‘백제’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시점이 이때부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화하 일대의 염제국 신농국과 산동성 일대의 백제국 소호국(구려국, 공상국, 제준국)’이 배달국의 주요 제후국으로서 병존하게 되었는데, 배달국의 천손문화에 대한 양국의 성향 차이에 대해서는 상기한 바와 같다. 

복희-소전-신농으로 이어지는 화하 일대의 토착민 문화는 고고학적으로는 ‘앙소문화仰韶文化’(기원전 5000년~기원전 3000년)에 해당하며, 복희-소호로 이어지는 산동성 일대의 배달국의 문화는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기원전 4,300년~기원전 2,000년)에 해당한다.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대문구문화를 한 결 같이 동이족 계통의 문화로 인정하고 있으니, 이는 앞서 살펴본 바『환단고기』의 기록과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