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교수
선도사서『환단고기』의 편년에 따르면 배달국의 개창 시기는 기원전 3,898년으로 후기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윤내현은 후기신석기 단계의 한국사회는 ‘고을나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여러 마을이 연맹을 맺어 고을을 이루고 정치적 지배자가 출현한 단계라는 것이다. 특히나 배달국의 영역에 속하였던 요서지역 홍산문화 후기의 유적(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인 우하량牛河梁 유적의 문화 수준은 동석병용시대로 접어든 상태이자 ‘초기국가단계’ 정도로 평가되므로 선도사서에 등장하는 ‘배달국’이라는 호칭에도 무리가 없다.  

배달국(기원전 3,898년~기원전 2,333년) 개창 이래 천손문화의 보급으로 문화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던 한편으로 높아진 문화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물질적 요구 또한 더욱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물산이 풍부한 중원지역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니, 중원지역은 배달국의 문화가 뻗어나가는 일차적 대상 지역이었다.

배달국 계열 중에서 가장 먼저 중원지역으로 들어갔던 일파로 반고盤固계가 있다. 환웅이 환인의 명으로 태백산太白山 방면으로 옮겨가 배달국을 개창할 즈음 반고는 환웅과 함께 길을 나누어 가기를 청하여 환인의 허락을 얻었다. 

같은 천손족이면서도 반고는 기이한 술수를 좋아하는 성향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환인이 제시했던 금악金岳, 삼위산三危山, 태백산 중에서 삼위산(현 섬서성 삼위산)으로 방향을 잡은 후 ‘재화와 십간·십이지 신장神將을 거느리고 삼위산 납림동굴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고 한다. 호종세력으로는 공공共工, 유수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 등이 있었다. 

반고는 후에 ‘제견諸畎’ 또는 ‘반고가한盤固可汗’으로 불리었으며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창조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반고 일파는 중원의 토착민들에게 천산 환국桓國의 천손문화를 전수하였다. 

▲ 후한대 무씨사武氏祠 화상석畵像石 중 ‘북두칠성 수레를 탄 뇌신 환웅 강림도’(상)와 『금석색金石索』소재 이본(하): 북두칠성 제거帝車, 곧 천제의 수레 뒤쪽으로는 ‘풍백·우사·운사’로 보이는 3신이 제거를 호위하고 있으며, 구름 사이에 용과 봉황을 배치하여 신령스러운 느낌을 나타내었다. 지상의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환웅 일행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들 뒤로 환웅이 타고 갈 수레가 준비되어 있다.

천산 환국의 한 갈래인 반고 계열과 토착민 문화가 융합된 중원지역, 이른바 ‘화화족華夏族’의 문화는 배달국의 전형적인 천손문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반고가 ‘재보와 술수를 좋아하여 환웅과 길을 달리하였던’ 점에서 일단의 차이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배달국이 동북방에 자리한 이후 복희씨伏羲氏, 여와씨女媧氏, 소전씨少典氏, 소호씨少皞氏 등 배달국의 많은 제가諸家와 장수들이 중원으로 이주, 배달국의 천손문화를 전수하여 결국 반고 계열을 제치고 중원문화의 비조가 되었던 점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화하지역에 배달국의 문화를 전수한 첫 번째 인물로 흔히 태호太皥(太昊) 복희가 들어진다. 복희는 배달국 제5대 태우의太虞儀 환웅의 12번째 아들이자 배달국의 우사雨師로서 깊은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으며 태백산에서 수행한 후 얻은 괘도掛圖(팔괘八卦·하도河圖)로써 교화를 펼친 것으로 이름 높다.

복희씨는 배달국의 우사직에서 물러난 후 황하 일대의 진陳(현 하남성 회양淮陽) 땅으로 옮겨갔다. 그곳은 원래 반고의 신하로 알려진 유수(수인씨)의 나라였는데, 복희가 옮겨와 배달국 환웅천왕의 봉함을 받으니 무기를 쓰지 않고도 수인씨를 대신하였고 수인, 유소와 더불어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복희의 진은 복희의 여동생으로 알려진 여와에 의해 계승되었다.

진은 배달국 문화가 화하지역에 전해지는 전진기지의 역할을 하여 진에 대한 배달국의 관심은 각별하였던 것 같다. 제8세 안부련安夫連 환웅은 소전씨少典氏를 강수姜水(기수岐水, 현 섬서성 보계寶溪 근방) 방면에 파견하여 군사를 감시하게 했다.

소전씨는 비서갑斐西岬 웅족熊族의 한 갈래이자 제1대 거발한 환웅의 우가牛加를 역임하였던 고시씨高矢氏의 방계 후예였다. 배달국에서 소전씨로 하여금 군사를 감시하게 한 이유는 진을 주변의 토착민들로부터 보호하는 조처로 보인다.

강수에 안착한 소전씨에게서 난 아들이 신농씨神農氏(후의 염제炎帝)이다. 후대의 중국기록에서 신농씨가 ‘우두인신牛頭人身’의 모습으로 묘사된 것은 그가 환웅의 우가 고시 씨의 후예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농씨는 천성이 지혜롭고 어질어 온갖 풀의 맛을 보아 약을 만들고 농기구를 만들어 농업혁명을 일으켰으며 시장 교역 제도를 만들어 사람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 신농씨의 왕계는 ‘2세 임괴 → 3세 승 → 4세 명 → 5세 직 → 6세 리 → 7세 애 → 8세 유망’의 8대 530년간 이어지게 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