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혹독한 겨울이었다. 수도권을 비롯한 내륙은 중국에서 불어닥친 미세먼지가 사람들을 움츠리게 했고 강원도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는 눈 때문에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나 밤이 오면 아침이 오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오고 있다. 굳게 얼어붙었던 하늘과 땅과 사람에 해동이 시작되는 '경칩(驚蟄, 3월 6일)'이다. 우주 속 존재하는 온갖 사물과 현상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을 시작하는 그 시점이 도래했다.

▲ 이억영 作 '경칩' [제공=한국세시풍속사전]

 '경칩이 되자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겨울잠을 깬다'는 속담이 있을만큼, 경칩은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덕분에 이즈음이 되면 겨울철의 대륙성 고기압은 약화되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한다. 봄을 시샘한 매서운 겨울날씨를 뜻하는 꽃샘추위가 불어오는 시기도 이 때이다. 추웠다가 따뜻했다가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기온이 상승하여 봄으로 접어들게 된다.

 옛사람들은 경칩 무렵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논일원십이회삼십운(論一元十二會三十運)에는 “동면하던 동물은 음력 정월[寅月]에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경칩에 해당하며, 음력 9월에는 동면을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입동(立冬)에 해당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경칩이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시기임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왕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정하였다.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기도 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우수(2월 19일)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3월 6일)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고 하였다. 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