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는 중국 사신들이 그 필적을 얻고자 애를 썼을 정도로 왕 중에서 최고의 명필이었다. 정자로 쓴 선조의 한글편지는 한자를 섞어 써서 한문 글씨와 한글 글씨를 함께 볼 수  있는 자료로 이 자전에 실렸다. 선조 임금의 한글편지는 모두 딸(옹주)들에게 보낸 것인데, 내용을 보면 자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배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왕, 왕비, 공주, 궁녀, 사대부, 일반 백성이 쓴 한글편지(언간·諺簡)를 모은 '조선시대 한글편지 서체 자전'이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소장 황문환)는 27일 그동안 단편적으로 소개되거나 개별 편지첩에 실려 있던 한글 편지를 담은 '조선시대 한글편지 서체 자전'을 펴냈다고 밝혔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는 조선시대 한글편지(언간·諺簡)를 모은 '조선시대 한글편지 서체 자전'을 펴냈다. 사진은 선조의 편지(자료=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연구재단의 기초학문육성사업의 하나로 <조선시대 한글편지의 수집․정리와 어휘ㆍ서체사전의 편찬(연구)>으로 진행한 이번 사업은 5년 여 간 서체학, 문자학, 국어국문학, 서예계 등 전문가 31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글편지 1천500여 건을 분석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87명이 쓴 한글편지 400여 건을 담아냈다.

편지는 어절, 음절, 자보를 비교해 서체 간의 관련성과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이는 한글 서예의 전통 계승과 발전적 재창조, 한글 서체의 개발에 필수 자료라는 것이 연구소 관계자의 말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왕의 친필 편지는 선조, 효종, 현종, 숙종, 정조의 편지가 있다. 효종의 글씨에서는 거침없고 시원한 필체를 통해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숙종의 편지는 획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써서 단정하고 올곧음을, 정조의 글씨에서는 힘차고 굳은 세로획의 필체에서 문체 반정을 추진했던 굳건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왕비 또한 달필이었다.

장렬왕후(인조의 계비), 인선왕후(효종 비), 명성왕후(현종 비)는 사대부가 남성의 필체와 닮아 한문 서체가 한글 서체로 구현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인현왕후(숙종 비)의 글씨가 주목된다.

이종덕 전임연구원은 "한문 서체가 한글 서체로 구현된 한글글씨에서는 글자의 중심축이 행의 중앙에 있는데 비해, 인현왕후의 글씨는 중심축이 ‘ㅣ, ㅏ, ㅓ’ 등의 세로획을 기준으로 글자의 오른쪽에 맞춰져 있다. 이것은 오늘날 ‘궁체’로 일컬어지는 서체의 주요한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생활사연구소는 조선시대 한글편지(언간·諺簡)를 모은 '조선시대 한글편지 서체 자전'을 펴냈다. 사진은 명성왕후의 편지(자료=한국학중앙연구원)

고종의 비 명성황후의 한글편지는 친필 편지만 140여 편이 전해진다. 명성황후의 글씨는 한문 서체, 한글 서체인 궁체(宮體) 등 기존의 서체와 달리 개성이 강했다. 줄이 인쇄된 시전지에 쓴 편지조차 세로줄이 똑바르지 않은 것이 많다.

이 연구원은 "줄을 맞추는 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흘림체로 거침없이 이어 쓴 필체에는 자기만의 굳은 신념과 정신으로 일국을 좌지우지하던 명성황후의 강인한 기질이 유감없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공주의 한글편지 중 온전하게 전하는 것은 효종의 둘째 딸인 숙명공주의 편지 한 편뿐이다.

이 밖에 왕실의 편지를 대필한 궁녀들의 한글편지를 비롯해 송시열, 이동표, 정경세 등의 한글편지, 추사 김정희와 그의 부친 김노경의 한글편지, 추사에게서 글과 그림을 배운 흥선대원군의 한글편지 등도 실려 있다.

황문환 소장은 '조선시대 한글편지 서체 자전'은 "난해한 문자 판독은 물론 서체적 조형미가 뛰어나 한글 서예의 작품 창작 서체로의 응용, 컴퓨터 폰트 개발, 패션 산업, 서체 디자인 등 예술과 산업에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품격까지 구비하고 있어 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