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학원은 한민족기념관과 공동으로 25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문학자 4인을 초청해 국학과 한국학의 차이를 논의하는 정기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사진은 종합토론하는 모습.

“21세기 한민족 후손에게 물려줄 것, ‘국학’”
“우리 민족의 역사서, 유물 등에 국학 면면히 이어져 왔다”

국어가 있고 한국어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국어라고 부르지만, 외국인은 우리말을 배울 때 '한국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국사가 아니라 한국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왜 그랬을까? 외국에서 공부한 서양학자들이 국사라는 단어 자체가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줄기찬 요구는 국사가 한국사로 바뀌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서울대학교에서 대종교를 연구해 처음으로 박사학위논문을 받은 일본인 학자가 말한 대로 ‘국학을 홀대하는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실.

이러한 가운데 7월 25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국학원 정기 학술회의는 한국학과 다른 국학의 가치를 조명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철학 분야 4인의 전문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한 학술회의장은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100여 명의 시민이 찾아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1부는 장영주 국학원장의 개회사에 이어 이종걸 국회의원과 만월 손정은 도전의 축사가 있었다.

국학원 설립자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은 기조강연문 '국학, 새 천년의 시대정신으로'에서 “국학은 태생적으로 국수주의가 될 수 없으며 민족 안에만 국한된 좁은 의미의 학문이 아니다”며 “보편적인 우주의 원리와 진리를 담고 있는, 넓고 깊고 큰 학문이다. 이러한 한국의 위대한 홍익정신이 있기에 ‘인류평화’는 21세기 인류에게 희망으로 남을 수 있으며, 한국은 위대한 정신이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2부는 국학과 한국학의 차이, 홍익인간 이념과 고조선 유물, 국학운동의 주역 등을 주제로 흥미로운 발표가 이어졌다.

먼저 국학과 한국학의 차이에 관해서는 김동환 국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논문 ‘국학의 개념 확립을 위한 제언’이 주목을 받았다. 

“국학이란 우리의 정체성의 중심이 되는 학문으로, 우리가 우리의 학문의 가치관적 근간을 부를 때 일컫는 명칭이다. 남이 우리의 학문을 부를 때 일컫는 한국학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즉 ‘나’라는 가치관적 자각에 의해 ‘나’라고 하는 것이 국학이요, ‘나’라는 가치관적 자각 없이 ‘너’ 혹은 ‘그’로 지칭하는 것이 한국학이다.”

김 연구원은 “1950년대『WEBSTER』사전에 일본학(Japanology)과 중국학(Sinology)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만, ‘한국학(Koreanology)’은 아예 없다”며 “외국 사전에 국학이 없는 것은 일본과 중국의 학문적 고유성은 인정받지만, 한국의 학문적 고유성은 철저히 외면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국학은 정신적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학문적 기반이기 때문에 정신적 사회간접자본(SOC)이다”며 “중국이나 일본은 국가가 책임을 지고 국학을 이끌어가는데 반해 우리의 국학은 공공부문에서 방기된 지 오래고 민간부문에서조차 외면당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학의 역사에 대해서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국학의 수난은 한말 일제하의 일제식민사학으로 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은 고려시대까지 살아있던 국학이 조선시대에 와서 크게 훼손되었다.”라고 밝혔다.

세조 2년(1456)에 각도 관찰사에게 20권이 넘는 상고사 기록을 모두 수러하라고  명령한 수서령(收書令)이 그것이다.

박 교수는 “이때 압수대상이 된 고기의 장서목록들이 실록에 기재되어 있지만 이암의 『단군세기』를 비롯하여 이맥의『태백일사』에 수록된 고서가 다 그 안에 들어있었다. 이 때문에 이맥은 목숨을 걸고 『태백일사』를 저술하여 후손들에게 마치 원천석(元天錫)이 그랬던 것처럼 뜯어보지 말고 비장하라 일렀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고조선 시대 무덤을 통해 ‘홍익인간 이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고조선 무덤은 순장(殉葬)이 없다. 순장이 없다는 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죽었어도 그 사람을 위한 다른 사람이 희생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하유역의 상나라에서는 순장풍습이 횡행했다.”고 말했다.

복 교수는 이 둘의 차이는 두 나라 간에 사람에 대한 인식차이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통해 알 수가 있다고 밝혔다. 즉 두 나라 중에 통치철학으로 인간 존중을 담은 홍익인간 이념이 있는가 여부가 무덤 양식으로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면면히 이어져 온 국학은 그동안 누가 지켜왔는가?

이에 대해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세기 국학운동은 '대종교'가 주도했다면, 21세기 국학운동은 '현대단학'이 주도했다고 말했다.

대종교는 만주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해 서일의 북로군정서가 청산리과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현대단학은 국학원을 2002년에 창립해 중국 동북공정에 대처했고 일본의 독도와 역사 교과서 왜곡에도 적극 항의했다.

조 교수는 “대종교가 국학을 기반으로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이 중심이었다면, 현대단학은 국학을 기반으로 매스컴을 통해 민족의식을 환기시켰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국학원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것으로 8월 9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동북아 역사 갈등 해소를 위한 한·몽·일 국제학술회의’가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