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8:00 삼일절 태극기몹이 펼쳐질 탑골공원 도착

 

 

 봄날처럼 따뜻하던 지난 한 주와 다르게 춘삼월을 시샘이라도 하는지 3월 첫날, 하늘은 꾸물꾸물 진눈깨비까지 흩날렸다. 세계국학원청년단(이하 국학원청년단)은 승합차에서 내려 공수해온 책상이며 음향장비, 천막을 내린다. 삼일절 행사를 준비하면서 궂은 날씨를 예상은 했었지만, 매서운 꽃샘추위에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국학원청년단은 2003년부터 매년 삼일절에 태극기몹행사를 열어왔다. 태극기와 플래시몹의 합성어인 ‘태극기몹’은 국학원청년단이 만든 신조어다. 삼일절과 광복절, 개천절이 되면 어김없이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일 년에 삼일 뿐이지만 태극기를 입고 붙이고 들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순간, 심장이 뜨겁게 달음박질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AM 9:00 공연팀, 진행팀, 시설팀. 팀별로 헤쳐모여!

 

 

 국학원청년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것! 태극무(太極舞)와 신나는 바숨(바르게 숨쉬기)댄스 공연이 오늘도 준비되어 있다. 진눈깨비였던 눈은 어느새 굵은 눈발이 되어 날리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그들을 어찌 이길쏘냐. 국학원청년단원들은 추적추적 내리는 눈 속에서도 온몸으로 김을 내뿜으며 실전 같은 리허설을 진행했다.

 “무대가 이렇게 돼야 잘 보이지!”, “그렇게 되면 독립문에 가려서 음악이 무대를 볼 수가 없어.” 진행팀의 실랑이가 이어진다. 가장 먼저 도착해서 대충 비옷 하나 걸쳐 입고 종횡무진하는 진행팀은 궂은 날씨, 장비 관리에 만전을 기하며 음악 테이블 위치를 고정하고, 탑골공원 옆 인도에 펼쳐진 오늘의 무대를 어떻게 하면 넓게 또 시민들 이동에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매번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이번에는 대형 독립문에 태극기와 메시지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국학원청년단 배한우 씨가 아침부터 신나게 '2011년 대한독립문'을 만들고 있다.

AM 10:00 실전보다 더 신나는 리허설 시작~

 

 

 슬슬 오가는 시민들의 수가 늘어난다. 때마침 어린이 국학원청년단들도 행사장에 도착했다. 똘망똘망 어린이 의병들은 오자마자 여기저기 태극기 스티커 붙이기에 신이 났다. 얼굴에는 작은 태극기 스티커, 등과 배에는 큰 스티커, 양손에는 태극기까지 야무지게 들고서 삼일절 태극기몹 준비를 마쳤다.

 어린이 의병 도착을 확인한 국학원청년단 임종일 단장이 김구 선생님처럼 검은 두루마기를 걸치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아. 아. 국학원청년단 여러분 반갑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궂은 날씨도 행사 시작 시간이 다가오니 볕이 나고 있습니다. 오늘 삼일절 태극기몹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킨 선조의 뜻을 되새기고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알립시다”

 내리던 눈은 그쳤지만, 여전히 춥기만 한 날씨, 이때 진행팀에서 외친다. “공연팀 외투 벗고 태극기 티셔츠만 입으세요!” 날이 추워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들어본다. “얼른 태극기 티셔츠만 입으세요!” 체감온도는 영하 10도쯤 되는 듯한데 국학원청년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겉옷을 훌훌 벗더니 태극기 티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갑옷 입은 장수마냥 대열을 맞춰서고 리허설에 들어간다.

AM 11:00 “대한민국의 역사 독립을 외치다!”

 

 

 임종일 단장의 멘트를 신호로 행사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92년 전 삼일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께 묵념을 한다. 오가던 시민들도, 함께 자리해 있던 이들도 모두 모자를 벗고 짧은 시간이나마 감사한 마음을 올린다. 국학원청년단 김우겸 회장(27)의 2011 독립선언서 낭독이 이어진다. “삼일절의 정신을 이어받아 진정한 역사 독립을 이뤄야 합니다. 5천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홍익정신이 오늘날 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바로 서기를 기원합니다.”

 태극기 티셔츠를 입고 양손에 태극기를 든 청년단들이 무대로 올랐다. '올랐다'고 하기에 살짝 무리가 있는 무대이지만 청년단의 당당함에 관객들은 압도된다. 가수 싸이의 'Right now'와 함께 시작한 공연, 청년단의 환호소리와 펄럭이는 태극기에 무대 주변은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됐다.

 독립문에 붙일 태극기를 정리하고 있던 진행팀이 또다시 바빠진다. “여러분 조금만 앞으로 가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넓은 인도가 꽉 차게 된 데에는 언론사도 한몫했다. KBS, MBC, 경향신문, AP통신, AFP통신, 연합뉴스, 뉴시스 등 무대 앞에는 마치 바주카포 같은 커다란 카메라들이 즐비하다.

AM 11:30 우리 안에 살아 있는 대한민국

 

 

 이어지는 태극무(太極舞) 공연. 국학원청년단의 ‘태극무’ 공연은 특별하다. 공연 첫 부분, 대형 태극기를 음악에 맞춰 천천히 들어 올릴 때 청년단은 '대한민국을 내가 들고 일어난다.'는 기분으로 시작한다. 청년단이 태극기몹을 할 때마다 태극무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극기가 대한민국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 대한민국을 향한 청년단의 열정이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태극무 공연이 끝나고 태극기가 빠져나간 무대에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청년단이 일본 순사들에게 끌려 나왔다. 어린이 국학원청년단이 “유관순 누나!”하고 외쳐댄다. 유관순 역할을 맡은 김휴경 씨(25), 방금까지 방실방실 웃던 얼굴은 사라지고 나라 잃은 설움이 한이 되어 비장함만 남았다. 순사들의 혹독한 고문에도, 친구의 만류에도 끝까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그녀.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고 일어나 아리랑을 부른다. 대학에서 연극을 한 지 3년째인 그녀이지만, 자신이 연기한 인물과 하나가 됐다는 느낌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한다. 유관순에 ‘빙의’한 그녀의 연기에 함께 아리랑을 부르는 어린이 국학원청년단의 얼굴에도 진지함을 넘어 엄숙함이 어린다.

PM 12:00 다 함께 외치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탑골공원에서 공연을 마친 청년단이 한 손에 태극기, 한 손에 피켓을 들고 종로2가 사거리 신호등 앞에 모여 섰다. 여기부터 독립문이 있는 서대문까지 길에서, 지하철에서 만세 행진이 시작된다. “삼일절을 맞아 대한민국 역사 독립을 선언하고 나라 사랑을 알리기 위해 세계국학원청년단이 나섰습니다. 다 함께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커다란 앰프를 어깨에 올린 청년단, 무거울 법도 한데 싱글벙글한다.

 인사동답게 여기저기서 보내오는 외국인들의 시선이 뜨겁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청년단을 향해 플래시를 연방 터뜨리며 “대~한민국”과 함께 엄지를 지켜 세워 ‘따봉’을 날려주는 이들. 청년단의 만세 소리에 힘이 실린다.

 행사의 대가답게 100여 명의 인원이지만 지하철 탑승도 일사천리. 세 팀으로 나뉘어서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만난다. “안녕하십니까. 시민 여러분. 세계국학원청년단입니다.” 목 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만난 청년단, 물 만난 고기마냥 분위기를 압도한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독립문역까지 두 정거장이지만 야무지게 2011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시민들과 만세를 외친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미모의 유관순 누나에게 태극기를 건네받고 엉겁결에 만세를 외친 이진수 씨(21)는 “휴일이라고 별 생각 없이 놀러 가던 길이었는데 이런 삼일절은 처음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PM 1:00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외치다

 

 

 1897년 조선이 독립국임을 상징하기 위해 지은 독립문, 그 역사의 현장에 세계국학원청년단이 왔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 시야가 넓게 트이고 저만치 멀리 독립문이 보인다. 어린이 단원들은 눈밭에 강아지마냥 한걸음에 뛰어나간다. 개선장군들처럼 한 발 한 발 발걸음도 씩씩하고 목소리도 우렁차게 만세를 외치며 걸어간다. 십 수명의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자전거에 태극기 하나씩 걸고 청년단의 만세에 환호를 보낸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독립문 아래에서 목 놓아 외친다. 일 년에 하루, 우리 안의 대한민국을 깨우고 우리의 대한민국을 그린 2011년 청년단의 삼일절이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