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2월 27일 오전 10시 30분 밝은누리관에서 특별 자료를 공개한다. 이날 1919년 3·1운동 시기 국내외에서 제작·배포되었고 그동안 실물이 공개되지 않았던 독립선언서류 원본 총 32점을 공개한다.이번에 공개되는 독립선언서류는 크게 3가지. 첫째는 전남 목포, 경남 통영·하동, 평북 철산 등지에서 발견된 3·1 독립선언서들이다.3·1운동 당시 국내에서 다양한 독립선언서가 배포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지만 실물로 남아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행사에서는 3·1운동 당시
전명운의사기념사업회는 대일항쟁기에 친일파 처단에 앞장선 죽암 전명운의사의 서세 72주년을 맞아 11월 18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추모식을 거행했다.전명운 의사는 18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04년 겨울, 20대 초반의 전의사는 노상에서 일본인 노무자들이 한국인 부녀자를 희롱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 일본인들을 구타 응징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 관헌의 추적을 받게 됐고 종현성당 신부로부터 “젊은 청년들이 서양 학문을 배워야 일본과 대적할 수 있다”는 권유를 받자 가족에게는 편지 한 장을 써놓고 인천에서 떠나는 중
외교부는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 740만 재외동포들과 함께 △재외공관 개최 100주년 기념행사 및 축하리셉션, △한중 우호 카라반, △일본 우토로 평화기념관 건립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이 외교부의 3개 기념사업은 대통령 소속 ‘3·1운동및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행사위원회’가 추진 중인 ‘중점사업’이다. 외교부는 이번 100주년을 국민과 동포가 함께 ‘온 겨레의 축제’로 기념하면서, 3‧1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되새기고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적 공감대를 확산
“일본의 한국지배가 한국에 유익하다. 또한 한국의 농민들과 일반 백성들은 일본인을 환영한다.” 1908년 3월 21일 대한제국 외교고문이면서 친일파인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가 샌프란시스코 지역 신문사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망언을 하였다. 이를 안 한 한인청년은 이틀 뒤 스티븐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아쉽게도 불발되고 만다. 한인 청년의 이름은 바로 전명운 의사이다. 죽암전명운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전무진) 주관으로 열린 전명운(1884~1947) 의사(義士) 순국 제71주기 추모제가 11월
우운문양목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최재학)와 태안반도남면청년회(회장 이재용) 주관으로 우운 문양목(文讓穆, 1869∼1940) 선생 제14회 추모제가 11월 11일(일) 충남 태안군 문양목선생 생가지에서 거행되었다.이날 추모제에는 가세로 태안군수와 박종덕 충남서부보훈지청장, 남평문씨 종친회를 비롯한 시민 16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개회사, 약력소개, 추모사, 헌화·분향, 폐식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우운문양목선생 기념사업회 최재학 회장은 추모사에서 "우운 문양목 선생은 적빈한 생활 속에서도 조국 독립과 한인들을 위해 헌신하신 분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난 2005년부터 10년 동안 독립운동가 열전 60권을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애족장과 독립장 이상의 유공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 중에서 대중성과 집필가능성을 고려해 선별했다.연구소 관계자는 “총 100인의 독립운동가 발간은 4년 정도 소요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활동 속에서 되새기고
지난 7월 12일 안전행정부에서 후원하고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에서 진행하는 현장답사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진행되었다. 반가운 얼굴이 하나씩 나타나며 10시가 조금 넘자 참가자 70여 명이 모두 모였다. 간단한 인사와 오늘의 일정 안내 후 유치부에서 2학년까지, 3~4학년, 5~6학년, 학부모 이렇게 4개의 조로 나누어 우리는 현충탑으로 향했다. 현충탑에서
2010년도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로 조선이 병탄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미국 일본 영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역할에 대하여 집중 조명해 본다.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으로 온 나라가 안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렸다. 안 의사는 순국하기 직전까지 집필하였던 동양평화론 전감(前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