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사람처럼 화선지 위에 그려댄다. 그리고 또 그려도 이 벅찬 가슴은 후련하지 않다. 담묵淡墨으로도 그려보고 초묵焦墨으로도 그려본다. 그래도 가슴만 터질 뿐, 독도를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안타까움을 어찌하랴, 독도의 흙이라도 발라 봐야지. 그 흙 그림 속에서 비로소 독도의 진경이 보이는 듯하다. 나는 경건한 자세로 '그림과 자연이 어우러짐'을 본다. – 이종상,'독도진경과 그날의 해돋이' 중에서 -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선생님의 정신세계, 예술혼은 무엇입니까?예술은 깊이 들어가야 하니까
한국의 사신사상으로 볼 때 한라 백록담이 남주작南朱雀을, 강화 첨성단이 우백호右白虎를 백두의 천지가 북현무北玄武를 상징해오고 있다면, 막상 동쪽을 수호하는 좌청룡左靑龍은 어디일까? 이런 의문에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을 만들었던 대나무를 얻어온 동해의 기이한 섬, 문무대왕의 수장유언水葬遺言을 떠올리며, 선뜻 독섬獨島이라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 이종상, '모화근성募華根性에서 섬 그리기 의도적 꺼려왔던 것 문제' 중에서 - 선생님의 자생문화론이란 무엇입니까?고구려벽화를 보면 사신사상四神思想으로 되어있다고 합
- 박선희 교수 (상명대학교) 고대 한국인은 어떤 옷을 입고 살았을까? 고조선 복식형태를 그대로 계승한 부여사람들의 일상적인 옷차림을 중국 사서에서 살펴보자. 실크 속옷에 코발트색 모직물 겉옷을 입고 흰 담비코트를 걸쳤다고 한다. 당시 부여는 공작새처럼 털이 길고 코발트 빛 깃털을 가진 ‘갈지’라는 새를 닭처럼 키워 털갈이 때 빠지는
남도영 (동국대 명예교수)우리 민족은 말(馬)과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발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지마(三趾馬)는 구석기 때부터 자생했고 현재의 말인 일지마(一趾馬)는 청동기시대에 이미 가축화되었음이 함경북도 소평동 패총과 제주도 곽지패총 등 전국에 확산된 유적으로 알 수 있다. 문헌으론 사기, 실록 등 우리나라 관찬사서(官撰史書)와 중국의 정사(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