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시인 조재도

 

 

산 넘어 또 산 넘어 마당바위 황토고개 지나
오리오리 시오리 얌동 상여집 지나
승동이네 외양간 지나 굴 껍질만 한 마을

천만 눈송이 흰 송이 복닥복닥 내리면
집집마다 일찍 싸리문 지그리고
등잔에 석유 넣어 불을 켜어요

 

모과 빛 불빛 이야기 소리 두런두런
어느 날은 굴품해서* 동치미를 먹고
어느 날은 얼음 백인 홍시를 먹어요

 

윗목엔 화로
요강에 쪼르륵 오줌 누는 소리

 

눈은 내려 쌓이고
마당 가 두엄더미에도 눈은 쌓이고
밤바람 소리 웅-웅, 산짐승처럼 내달리면
시나브로 식어가는 부뚜막 온기

 

웅얼대는 잠꼬대
끌어다 덮는 이부자락

 

아침 햇살에 훤한 문창호지
추녀 끝에 쌓인 눈 제풀에 떨어지고
밤새 중의 옷 빛으로 식은 화로의 재
문에 붙여놓은
유리 구멍으로 내다본 세상은
어랄라 저것 좀 봐, 천지 간 백설.

 

*배가 고픈 듯하다.

이미지 조재도
이미지 조재도

 

출처  :  조재도 시집 《어머니 사시던 고향은》(열린서가, 2023)에서

 

저자 조재도 시인 소개

 

 

 

 

시인 조재도는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어려서 청양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가 홍익중학교와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1981년 졸업과 함께 대천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이후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에 이어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두 차례 해직되었다. 1994년 복직 후 2012년 조기 퇴직하기까지 충남의 여러 학교에 근무하면서, 15권의 시집과 다수의 책을 펴냈다.

조재도 시인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농촌의 생활 문화와 정서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해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고향 시편’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기계문명의 시대를 산다고 해도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의 삶의 자취가 애틋하게 남아 있다.

조재도 시인은 이 연재가 앞서 살다 간 사람과 뒤따라 오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