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난 체하고 뽐내는 번뇌 망상의 몸뚱이를 내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까닭에 사람을 비롯한 모든 중생은 남의 몸뚱이를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너를 패배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않고는 더 많은 애욕, 재물, 권력을 쟁취할 수 없는 참으로 기막힌 부조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미혹 속에서 올바르지 못한 우리의 삶은 당연히 모두 무너지고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정력을 위해서 천산갑과 박쥐와 원숭이 뇌를 먹었지만 정력은 늘리지 못하고 도리어 코로나19와 원숭이 두창이라는 무서운 질병을 얻어 육신이 무너지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 몸뚱이의 행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문명의 기구를 창출하였으나 그로 인해 혹독한 자연재해와 일반재해로 이 몸뚱이가 없어지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젊고 건강했던 욕망의 이 몸뚱이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속절없이 늙고 병들어서 허물어져 가는 죽음을 맞이하여 소멸하여 사라져 버리고, 싫어하는 것은 버리고 좋아하는 것은 얻으려는 희망도 모두 이루지 못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세계에 있는 수많은 별과 일체 존재들은 하나의 티끌까지도 빠짐없이 모두 소멸하여 없어지는 고통을 면하지 못하는 것도 오직 허망한 욕망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같은 모든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티끌만큼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우리 모두 본래부터 부처이기 때문에 모든 괴로움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기보다 쉽습니다.

이제 그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암자에 이름이 똘이라는 반려견이 있었습니다. 2018년 6월경 어느 날 운동을 하게 하려고 목줄을 풀어주었습니다. 이 똘이가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서 며칠 동안 산과 들로 찾아 헤매었지만 끝내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후에 이웃 주민의 밭에서 죽어 있는 똘이를 발견했습니다. 6월의 더운 날씨로 죽음의 원인도 밝혀낼 수 없도록 사체는 부패하였고 그 부패한 모습과 냄새는 며칠 동안 떠나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을 때의 건강한 모습은 무엇이고 주검으로 바뀐 흉물스러운 모습은 무엇이며, 구역질 나는 냄새와 사체 속에 우글거리는 벌레들은 또 무엇인가? 생은 사로 인하여 있고, 사는 생으로 인하여 있습니다. 주검으로 바뀐 흉물스러운 모습이 없으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도 없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없으면 흉물스러운 모습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검의 흉물스러운 모습도 그 나름의 구실과 작용을 하고, 생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도 그 다운 역할과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육신의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역질 나는 악취도 그 다운 작용이고, 빠른 단백질의 분해를 돕고 있는 징그러운 벌레들도 그 나름의 역할과 작용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징그러운 벌레와 단백질이 분해되지 않아서 악취가 없다면 지구는 우리들의 눈앞에 더욱 흉물스러운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맛있는 진수성찬은 좋아하고 뒤에 배설하는 똥은 더럽다고 싫어합니다. 우리의 버릇과 습관이란 참으로 허망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썩고 더러운 대변이 없으면 화려하고 맛있는 진수성찬이 없고, 진수성찬이 없으면 대변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러운 똥도 그 다운 역할과 작용을 하고, 맛있는 진수성찬도 그 다운 역할과 작용을 합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여당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진수성찬을 좋아하는 것이고, 지금 우리가 싫어하는 여당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더러운 똥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버릇과 습관에 홀려 갈팡질팡 헤매는 어리석은 행위임을 냉정하게 살피고 깊이 통찰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 잘난 체하고 뽐내는 아만(我慢)과 다른 사람은 경시하는 어리석음과 코로나19, 자연재해, 일반재해와 태어나고 죽는 모든 고통이 그 나름의 역할과 작용이라고 바르게 살피고 밝게 본다면 당신과 이 모든 것이 바로 그 다운 역할과 작용을 하는 이 마음의 부처님입니다.

어떤 스님이 운문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운문 선사가 말했습니다.

“마른 똥 막대기이다.”

예전에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뒤처리를 작은 막대기를 잘 다듬어서 그것으로 먼저 처리한 다음 물로 닦아냈었습니다. 보잘것없고 흔한 똥 막대기이지만 그 나름의 역할과 작용을 하며, 아무리 위대하고 귀하신 부처님이라도 그 나름의 역할과 작용을 할 뿐입니다.

우리는 똥 막대기는 보잘것없다고 싫어하고 부처님은 위대한 분이다, 하여 좋아합니다. 하지만 똥 막대기가 더러워서 싫어하고, 부처님이 위대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나는 똑똑하다고 잘난 체하며 뽐내며, 너는 어리석다고 경시하는 망상에 부합하면 좋아하고 부합하지 않으면 싫어하는 버릇과 습관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내가 부처라고 좋아하지 않았고, 똥 막대기라고 해서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신도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으면 석가모니 부처님과 똑같은 부처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