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woodcut, 2023, ink on korean paper,  120x180cm.  사진 나광호
숲 woodcut, 2023, ink on korean paper, 120x180cm. 사진 나광호

경기도 양평군 오거스트하우스에서 10월 1일부터 열고 있는 나광호 작가 개인전 《양평도감》은 주위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을 그린 작품을 소개한다. 작가는 직접 발품을 팔아 식품을 찾아 보고 사전을 뒤적여 하나하나 이름을 맞춰보고 도감에서 일일이 학명을 확인했다.

질경이(차전초), 참나물, 취나물, 머위, 조선배추, 산딸기, 맨드라미, 망초, 무궁화, 바질, 상추, 브로콜리, 냉이, 장미, 백일홍, 자주루드베키아, 천인국, 민들레, 토끼풀, 접시꽃, 금계국, 왕고들빼기, 코스모스, 명아주.

접시꽃  woodcut, 2023, ink on arches paper,  100x80cm. 사진 나광호
접시꽃 woodcut, 2023, ink on arches paper, 100x80cm. 사진 나광호

 

작가는 이렇게 식물을 소재로 하여 작업을 한다. 그의 작업을 고충환 미술평론은 이렇게 소개한다.

“그렇게 작가는 채집된 식물들을 소재로 하여 목판화로, 실크스크린으로, 그리고 때로 동판화(에칭과 메조틴트)로 찍어낸다. 그중 스케일로 보나 압도적인 장관으로 볼 때 아무래도 메인은 흑백 모노 톤의 목판화일 것이다. 보통 판화는 소형을 생각하기 쉬운데(우표처럼 작은 판화도 있다), 웬만한 회화보다 큰 크기에도 불구하고 세부가 오롯한,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정치한 묘사가 특징이다. 보통 목판화로 치자면 저마다 특유의 칼맛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작가의 목판화는 그 상식을 재고하게 만든다. 칼을 기울여 새김질했다(파냈다)기보다는 회화의 점묘법에서처럼 끝이 뾰족한 도구(칼)를 이용해 일일이 한 점 한 점 떠낸 것도 같다. 우드 인그레이빙도 아니면서, 저 큰 화면에, 그것도 여백 하나 없이 빼곡한, 정치한 묘사가 살아있는 화면이 그림으로 치자면 집요한 그리기, 편집증적 그리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덧붙여 이런 과정을 거쳐 "작가의 그림(판화)에서는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이 자기표현을 얻고 있다"고 했다. 

"이 원초적인 생명력은 언제 어떻게 발현되는가. 미학적인 용어에 미적 거리두기란 말이 있다. 심적 거리라고도 하는데, 사물 대상의 본질이 드러나는데 요구되는 거리를 의미한다. 단순히 실질적인 거리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마음의 움직임, 심적 동요, 그러므로 어쩌면 감동을 위해 필요한 거리를 의미한다. 구상과 추상이 가름이 되는, 그러므로 나뉘는 경계의 논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무슨 말인가. 멀리서 보면 사물 대상의 형태가 보이지만, 작가의 그림에서처럼 사물 대상이 화면 전체를 채울 만큼 근접해서 보면,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혼성된다. 경계의 풍경이라고 해도 좋고, 혼성의 풍경이라고 해도 좋다.

코스모스  woodcut, 2023, ink on arches paper,  80x129cm. 사진 나광호
코스모스 woodcut, 2023, ink on arches paper, 80x129cm. 사진 나광호

바로 이 지점에서 의외의 풍경이 열린다. 자연의 에너지가 열리고, 우연하고 무분별한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이 열린다. 야성이 열리고, 야생이 열린다. 자연의 본성인 카오스가 열린다. 변태도 그렇게 열리는 것, 그러므로 카오스의 본성 중 하나로서, 식물에 잠재된 동물성이, 동물에 내재 된 식물성이, 사물에 잠자던 인격(그러므로 사물 인격체)이 열린다. 예컨대 엉킨 실핏줄 다발을 연상시키는, 선혈을 연상시키는, 동물성을 연상시키는 맨드라미가 그렇다. 그렇게 자연을 소재로 한 작가의 그림(판화)에서는 자연의 다른, 숨겨진, 잠재된(사람으로 치자면 억압된) 국면이 자기표현을 얻는다. 존 버거는 다르게 보기가 예술에서의 관건이라고 했는데, 자연의 다른 국면을 드러내 보이는 작가의 작업이 그처럼 자연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제안해놓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고충환 미술평론)

 나광호 작가의 개인전《양평도감》은 10월 31일(화)까지 오거스트하우스(경기 양평군 강상면 강남로 1244)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