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9혁명기록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5월 18일(현지 시각)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5.10.~5.24., Executive Board)는 「4ㆍ19혁명기록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1960.4.19.) '4ㆍ19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됐다. 사진 문화재청
의에 죽고 참에 살자(1960.4.19.) '4ㆍ19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됐다. 사진 문화재청

「4ㆍ19혁명기록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4ㆍ19혁명기록물」은 1960년대 봄 대한민국에서 발발한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에 관한 1,019점의 기록물로, 1960년대 세계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친 기록유산으로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4ㆍ19혁명기록물, 거기로 나선 대학교수들(1960. 4. 25.)  사진 문화재청
4ㆍ19혁명기록물, 거기로 나선 대학교수들(1960. 4. 25.) 사진 문화재청

또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1894년~1895년 조선에서 발발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185점의 기록물로, 조선 백성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노력했던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동학농민군 임명장(1894). 사진 문화재청
동학농민군 임명장(1894). 사진 문화재청

이로써 대한민국은 ▲훈민정음(1997년), ▲조선왕조실록(1997년), ▲직지심체요절(2001년), ▲승정원일기(2001년), ▲조선왕조의궤(2007년), ▲해인사 대장경판과 제경판(2007년), ▲동의보감(2009년), ▲ 일성록(2011년), ▲5ㆍ18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2011년), ▲ 난중일기(2013년), ▲새마을운동기록물(2013년), ▲ 한국의 유교책판(2015년),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2015년),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2017년), ▲국채보상운동기록물(2017년), ▲조선통신사기록물(2017년) 등 기존의 16건을 포함하여 총 18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어 기록문화 강국으로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4.19혁명기록물

 4·19혁명 기록물은 1960년 4월 19일 한국에서 학생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시민혁명 자료를 말한다. 1960년 2·28 대구 학생시위부터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까지 그 원인, 전개과정, 그리고 혁명 이후 사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 등 혁명의 전후 과정과 관련된 일체의 기록물이다.

4.19혁명 당시 마산지역 학생일기(1960.3.20.). 사진 문화재청
4.19혁명 당시 마산지역 학생일기(1960.3.20.). 사진 문화재청

 4·19혁명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15년, 냉전이 빚은 한국전쟁 종료 이후 7년밖에 안 된 아시아의 최빈국이며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아래로부터 일어난 성공한 혁명이었다. 독재정권의 앞잡이 경찰의 발포로 무고한 학생과 시민 186명이 사망했고 6,026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시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워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이는 전후 제3세계에서 일어난 최초의 성공한 비폭력 시민혁명인 동시에 유럽의 68혁명, 미국의 반전운동, 일본의 안보투쟁(전공투) 등 1960년대를 휩쓴 세계적인 학생저항운동의 시발점이었다.

4.19혁명 부상자 개별기록서(1960)    사진 문화재청
4.19혁명 부상자 개별기록서(1960) 사진 문화재청

 한국은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미·소 분할점령으로 불가피하게 남북이 분단되었고, 1950년 세계적 규모의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3년 동안 치렀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약 450만의 사상자와 45%의 산업시설이 파괴되었고 분단은 계속되었다. 냉전 반공독재가 민주주의를 압살했다. 1952년 <더 타임스>에 실린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라는 문장이 세계 일반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4·19혁명으로 세계의 일반 시각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승리의 기록(1960.4.27.)  사진 문화재청
승리의 기록(1960.4.27.) 사진 문화재청

 4·19혁명 기록물은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역사적 조건에서 10살 안팎의 아이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독재에 맞서 비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료이다. 4·19혁명의 숱한 현장 사진기록과 수기들은 우리가 왜 민주주의를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우쳐주는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세계 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 동학농민혁명기록물

 한국 사회의 근대적 전환에서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및 동아시아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전근대적 봉건주의 사회에서 근대민주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이며 실험적 단계였다. 동학이라는 의미도 서양의 종교와 학문에 대립되는 것으로 19세기 후반의 경제 파탄과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에 대한 위기의식 등 사회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비록 그들에 의한 성공은 이루지 못했지만 한국 민중들이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고 평등사회를 해결하고자 무장투쟁을 벌인 것은 세계사적인 모범이 될 만한 사건으로 다음과 같은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다.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1894) 사진 문화재청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1894) 사진 문화재청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에 저항하고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운동 과정에서 동학군은 집강소라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 체제를 설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그들은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부당한 관행을 바로잡았다. 이러한 형태의 거버넌스는 신선한 민주주의 실험으로, 19세기 당시까지 유사한 제도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전봉준 공초(1895)  사진 문화재청
전봉준 공초(1895) 사진 문화재청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이 번영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았으며, 유사한 외국의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은 중국군과 일본군의 조선으로의 군대 파병, 이로 인한 청일전쟁 촉발과 일본의 승리로 이어져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질서 해체를 촉발하였다. 신청 유산은 어떻게 민중이 주체가 되어 역사를 보편적 가치, 즉 평등, 자유, 인권, 정의의 방향으로 전진시켜나갔는지를 보여주는 기억의 저장소이다.

순교약력(1923)  사진 문화재청
순교약력(1923) 사진 문화재청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동학농민군, 정부, 관료, 진압군, 민간지식인 등 여러 주체가 직접 생산한 종합적인 역사 기록이다. 이 기록물에는 동학농민군이 작성한 문서, 정부 보고서, 개인 일기와 문집, 각종 임명장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농민운동의 진행 과정과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의 권리와 평등, 식민주의에 대한 반대 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서 희귀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