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은 500년, 한지(韓紙)는 1,000년을 간다고 한다. 우리 전통 한지의 우수성을 밝혀주는 대표적인 유물은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으로 신라 경덕왕10년(751)에 불국사 중창 때 봉완되었다. 무려 1,300여 년의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5일 각기 원료와 방식을 달리해 제작한 48종의 한지를 과학적으로 시험 및 분석해 결과를 견본과 함께 수록한 보고서 〈우리 종이, 한지 분석편〉을 발간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5일 한지의 과학적 시험 및 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  〈우리 종이, 한지 분석편〉을 발간했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5일 한지의 과학적 시험 및 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 〈우리 종이, 한지 분석편〉을 발간했다. [사진 문화재청]

자연친화적 소재와 고유의 방식으로 제작되는 한지는 현재 세계적으로 재질의 안전성과 보존성이 뛰어난 종이로 평가받아 고예술품 보존과 복원에 활용되며, 비단만큼 질기고 풍부한 질감으로 패션 소재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번 책자는 국립문화재연구원이 2017년부터 한지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국내외 문화유산 복원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하도록 추진한 품질기준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 발간한 〈우리종이, 한지 공정조사편〉에 이은 두 번째 결실이다.

〈우리 종이, 한지 분석편〉에서는 한지의 주원료인 닥나무 목부와 껍질 사이에서 생성되는 닥섬유를 비롯해 닥섬유를 삶는 과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잿물 등 증해제, 점질물의 종류와 한지의 뜨는 방법인 초지법 등을 달리해 제작한 48종의 한지 견본이 수록되었다. 이를 통해 색깔과 균질성을 비롯해 인장강도 등 한지의 안정성과 보존성에 영향을 미치는 각각의 특성 분석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전통한지와 개량한지의 주요 제작공정 일러스트. [사진 문화재청]
전통한지와 개량한지의 주요 제작공정 일러스트. [사진 문화재청]

연구결과 국내산 닥인 한지가 수입산 닥인 한지보다 대체적으로 강도가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전통적인 초지 방식인 흘림뜨기로 제작한 한지가 특정 방향으로만 물질을 하는 개량방식인 가둠뜨기 한지에 비해 방향별 강도 차이가 작아 전통한지가 강도와 치수 안정성 면에서 우수한 종이임이 확인되었다.

가둠뜨기(쌍발뜨기)는 일본의 화지(和紙)를 만들 때 쓰는 방식으로, 섬유를 가둘 수 있는 틀과 발을 이용해 종이를 뜨는 기술이다. 기술습득이 용이하고 생산성이 외발뜨기에 비해 높은 장점이 있으나 가로세로의 강도 차이가 난다.

반면, 전통 한지를 만드는 흘림뜨기(외발뜨기)는 줄에 직사각형 틀을 매달아 여러 방향으로 물을 흘려보내며 종이를 뜨는 기술이다. 앞뒤로 흔들며 틀과 직각 방향으로 앞 물을 떠서 뒤로 흘려보내는 ‘앞물질’로 닥섬유를 뜨고, 좌우로 틀을 흔드는 ‘옆물질’을 통해 종이의 두께를 조절해 고르게 펴준다. 그다음 대각선 방향으로 옆 물을 떠서 물을 버리는 것까지 앞뒤와 좌우, 대각선으로 물질을 반복하면 섬유가 여러 방향으로 꼬여 일정한 두께를 가지면서도 질기고 튼튼한 양질의 한지를 만들 수 있다. 가둠뜨기에 비해 기술습득이 어렵고 생산성이 낮은 단점이 있다.

〈우리 종이, 한지 분석편〉보고서에 수록된 전통방식인 흘림뜨기와 개량방식 가둠뜨기에 대한 분석자료. [자료 보고서 갈무리]
〈우리 종이, 한지 분석편〉보고서에 수록된 전통방식인 흘림뜨기와 개량방식 가둠뜨기에 대한 분석자료. [자료 보고서 갈무리]

한편, 증해제로 탄산나트륨이나 수산화나트륨을 쓰고, 점질물로 폴리아크릴아마이드를 사용해 가둠뜨기 방식으로 한지를 제작할 경우 전통 방식에 비해 성분이나 특성이 고루 같은 ‘균질성’과 흰 정도를 나타내는 ‘백색도’가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종이, 한지 분석편〉보고서는 문화재청 누리집과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 공개해 누구나 열람, 활용할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향후 중국 선지(宣紙)나 일본 화지와의 제작기술과도 비교 분석해 한지의 독창성과 전통성을 과학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