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은 입춘(立春)이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째 절기로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로 보통 양력 2월 4일경에 해당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입춘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었다. 입춘날에는 입춘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채(五辛菜)를 오신반(五辛盤)에 올려 먹고, 민가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었다.

《동국세시기》에 “경기 산간의 여섯 고을에서는 움파, 산갓, 승검초를 진상한다. 산갓은 초봄에 눈이 녹을 때 산속에서 저절로 나는 갓이다. 뜨거운 물에 데쳐 초장에 버무려 먹는다. 맛이 매우 매우므로 고기를 먹을 뒤에 먹기 좋다. 승검초는 움집에서 기른 당귀의 싹이다. 은비녀처럼 깨끗한데 꿀을 싸서 먹으면 맛이 몹시 좋다”고 하였다.

2월 4일 입춘을 맞아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에서 현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입춘첩을 붙였다. [사진=정유철 기자]
2월 4일 입춘을 맞아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에서 현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입춘첩을 붙였다. [사진=정유철 기자]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오신반((五辛盤, 다섯 가지의 자극성이 있는 나물로 만든 음식)을 장만하여 수라상에 올렸다. 오신(五辛)은 매운맛이 나는 다섯 가지 훈채(葷菜)인 파, 마늘, 부추, 여뀌, 겨자를 말하는데, 입춘일(立春日)이면 봄을 맞는 의미에서 이 다섯 가지 나물을 만들어 먹고, 또 이 나물을 오신반에 담아서 이웃에 나누어 주곤 했다.

민간에서는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겨났으며, 춘일 춘반(春盤)의 세생채라 하여 파·겨자·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먹었다.

두보(杜甫)의 입춘(立春) 시에, "입춘일 춘반 위엔 생채가 보드라웠어라, 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갑자기 생각나네. 쟁반은 고문에서 나와 백옥이 다닌 듯하고, 채소는 섬섬옥수로 푸른 실을 보내왔었지.〔春日春盤細生菜 忽憶兩京全盛時 盤出高門行白玉 菜傳纖手送靑絲〕"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이곡의 시 입춘서회(立春書懷, 입춘에 회포를 적다)를 보면 당시 입춘 풍습을 알 수 있다.

유자는 별 뜻 없이 어버이 그리워하게 마련 / 遊子思親無別意

소인은 땅을 생각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 / 小人懷土是眞情

찾아온 푸른 봄을 토우가 이미 싣고 왔는데 / 土牛已載靑春至

돋아나는 흰 머리칼은 차녀도 막기 어려워라 / 姹女難禁白髮生

한배 아직 열지 않아 입술이 마르던 차에 / 未撥寒醅唇尙燥

새로 돋은 봄나물 보니 눈이 번쩍 뜨이누나 / 忽看新菜眼還明

벼슬길에서 전원의 즐거움을 함께 맛볼 수야 / 宦途不倂田家樂

당년에 대경을 배운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네 / 愧殺當年學代耕

토우(土牛)는 진흙으로 빚은 소를 말한다. 옛날 입춘 날에 토우를 만들어 멍에를 씌우고 채찍으로 때리며 관청 뜰에서 밭 가는 시늉을 하여 풍년을 기원하던 풍속이 있었는데, 이를 타춘(打春)이라고 한다. 후대에는 진흙 대신 짚이나 갈대 혹은 종이로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를 총칭하여 춘우(春牛)라고 하였다. 입춘날 토우 모는 풍속은 고려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차녀(姹女)는 불로장생할 목적으로 도가(道家)에서 연단(煉丹)할 때 쓰는 수은(水銀)의 별칭이다. 한배(寒醅)는 봄에 마시기 위해 겨울에 미리 담가 둔 술을 말한다.

신채(新菜)는 바로 봄나물 오신채를 말한다. 대경(代耕)은 벼슬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 〈왕제(王制)〉의 “제후의 하사를 상농부에 비교해 보더라도, 그 녹봉을 가지고 농사짓는 일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諸侯之下士 視上農夫 祿足以代其耕也〕”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이렇게 입춘에는 오신반, 생채요리로 추운 겨울을 지내는 동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게 한 것이다.

또한 입춘이 되면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입춘은 정월의 첫 번째 절기이고, 봄을 알리는 날이기 때문에 신년(新年)으로 여긴다. 그래서 해가 바뀌면 묵은해의 액(厄)을 멀리 보내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입춘축을 써서 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것이다. 입춘축을 춘축(春祝)·입춘서(立春書)·입춘방(立春榜)·춘방(春榜), 입춘첩이라고도 한다. 춘첩(春帖)은 봄에 붙이기에 얻어진 명칭이다. 대구(對句)를 이룬 문구를 붙이기에 춘련(春聯) 또는 대련(對聯), 입춘에 붙이기에 ‘입춘첩’이라고도 부른다. 문에 붙이기 때문에 ‘문련(門聯)’, 문기둥에 붙이기에 ‘영련(楹聯)’, 일정한 크기에 표제(標題)를 적기에 ‘첩자(帖子)’라고도 한다. 입춘이 드는 시각에 맞추어 붙이면 좋다고 하여 밤중에 붙이기도 하지만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서는 써 붙이지 않는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장유승 역해)를 보면 “임금이 거처하는 대내(大內)에 춘첩자를 붙였다. 벼슬아치와 서민의 집, 시장 가계에도 모두 춘련(春聯)이라 일컫는 글을 기둥과 벽 등에 붙이고 비는데, 춘축(春祝)이라 한다”고 하였다.

대궐에서는 입춘이 되면 내전 기둥과 난관에 문신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 좋은 것을 뽑아 연잎과 연꽃 무늬를 그린 종이에 써서 붙였다. 유득공의《경도잡지(京都雜志)》에 의하면, 입춘이 되기 열흘 전에 "승정원에서는 초계문신(抄啓文臣, 당하문관 중에서 문학에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다달이 강독·제술의 시험을 보게 하던 사람)과 시종신(侍從臣)에게 궁전의 춘첩자를 지어 올리게 하는데, 패(牌)로써 제학(提學)을 불러 운(韻)자를 내고 채점하도록 한다."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또 입춘축으로 두루 쓰는 것을 소개하였다. 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문신호령 가금불상(門神戶靈 呵噤不祥) : 대문과 방문의 신령이 불길한 것을 물리친다.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며 집안은 넉넉하고 사람은 풍조하다.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 비바람이 순조로워 계절이 온화하고 풍년이 든다.

민가의 기둥과 문미에는 보통 대련을 쓰는데 다음과 같다.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다.

거천재 내백복(去千災 來百福) : 모든 재앙 물러가고 온갖 복이 찾아온다.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 : 요임금의 세월, 순임금의 세상.

애군희도태 우국원년풍(愛君希道泰 憂國願豊年) : 임금 사랑하여 도가 태평하길 바라고 나라 걱정하여 농사가 풍년 들기 원한다.

천하태평춘 사방무일사(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 : 천하는 태평한 봄날이요, 사방에 아무런 일도 없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 입춘이니 대단히 길하고 봄이 오니 경사가 많다.

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은 요즘에도 입춘에 흔히 볼 수 있다. 이 건양다경은 《주역(周易)으로 설명해야 한다.

‘建陽(건양)'은 정월(正月)의 괘인 ‘태(泰)'괘를 설명한 것이다. '陽이 建하다'는 뜻이며 泰괘의 아래에서 3개의 陽(三)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양은 선비를 의미하니 말하자면 뜻있는 선비가 기초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泰괘를 더 살펴보면 내괘가 삼양(三陽)이고 외괘가 삼음(三陰)이라 '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또 선비인 陽(─)이 소인인 음(--)을 밀어내는 형상이니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된다는 것을 말한다. 泰괘는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운동을 상징한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그런 때를 상징하는 괘가 바로 泰괘인 것이다.

그런데 양이 위에 있고 음이 아래에 있어야 정상인 듯 싶은데 그 반대다. 즉 양이 아래에 있고 음이 위에 있다. 이렇게 있어야 밑에 위로 상승하려는 양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려는 음이 서로 만날 수 있다. 음양이 만나야 생명이 탄생한다. 양이 위에 있고 음이 아래에 있으면 양은 그대로 위로 올라가고 음은 아래로 내려 가버리니 교합(交合)이 이루어지지 않다. 이 泰괘가 역 64괘 가운데 가장 좋은 괘인 이유를 알 것이다. 해마다 봄을 맞이하여 나라와 국민이 대길하고 다경하길 바란다. 입춘대길에 그런 마음을 담는다.

이렇게 보면 입춘첩의 내용이 나라와 천하가 평안하기를 바라는 뜻이 많았다. 조선 후기 문인 야곡(冶谷) 조극선(趙克善)은 “입춘이면 대궐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춘첩자를 붙여 복을 기원하는데 신하로서 임금의 복을 빈다면 괜찮지만 자신의 복을 비는 것을 허망한 짓[世人於立春日, 例作文字貼門戶以徼福 至於闕庭官府, 無不盡然. 若以臣子而爲君父祈祝, 猶或可也.[......] 其餘所以自求福利者皆妄也]”이라고 비판하였다.

대통령선거가 있는 임인년 올해 입춘을 맞이하여 거천재 내백복(去千災 來百福)하고 입춘대길 건양다경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