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의 《번역의 모험》(교양인)은 ‘문턱이 낮은 한국어’를 어떻게 쓸 것인지 알려준다. 30여 년 동안 번역 현장에 몸담으며 한국어의 개성을 살리는 독창적인 번역론을 모색해온 저자의 숙련과 통찰이 담긴 책이다. 읽다 보면 “아!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무릎을 치는 일이 자주 있는 이유이다.

이희재 지음 "번역의 모험" 표지. [사진=정유철 기자]
이희재 지음 "번역의 모험" 표지. [사진=정유철 기자]

 

《번역의 모험》은 외국어를 우리 말로 번역할 때 ‘문턱이 낮은 한국어’로 옮기는 법을 다룬다. 언어에 웬 문턱? 저자가 말하는 문턱이 낮은 글은 독자가 편히 ‘정주행’하도록 돕는 글이다. 그러니 문장에 담긴 뜻이 금방 와닿지 않는 모호한 대목에서 독자가 읽기를 멈추거나 다시 뜻을 살피려고 ‘역주행’하게 하는 글은 문턱이 높은 글이다. 글을 읽다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 되돌아가 다시 읽는다면 그건 ‘문턱이 높은 글’이다. 그런 글은 역자가 자원을 덜 들인 탓에 대신 독자가 자원을 더 들여야 한다. 문턱을 낮추면 독자는 멈추지 않고 역주행하지 않는다.

문턱이 낮은 한국어를 쓰려면 저자는 첫째 쉼표를 줄이라고 한다. 긴 문장이 아닌데도 별 생각 없이 글 안에 쉼표를 찍는 사람이 많아진 것을 저자는 영어의 영향 탓으로 본다. 종속절이 앞에 오는 영문을 쉼표까지 그대로 살리는 번역의 영향을 받아 한국어로 글을 쓸 때에도 기계적으로 쉼표를 찍는 사람이 많아졌다.

“쉼표는 글이 치밀하고 분석적이라는 느낌을 독자에게 주고 독자가 세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순기능도 있지만 너무 많으면 글의 흐름을 끊습니다.”

문턱이 낮은 한국어를 쓰려면 저자는 둘째 쉼표가 남발되는 바람에 멀어진 부사와 동사를 되모으라고 한다. 부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부사가 도우려는 동사의 바로 옆자리이다. 부사가 제자리에 놓여야 문장이 안정된다.

세 번 째로 문턱을 낮추려면 ‘찌르기’를 잘해야 한다. ‘찌르기’라니? 중요한 대목에만 독자가 집중하도록 글을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주제조사 ‘은/는’을 아껴야 한다. 주제조사는 말 그대로 문장 안에서 주제가 이것이다하고 주제를 찌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주제조사가 나오면 독자는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뜬다. 그러니 ‘은/는’ 핵심을 찔러야 하고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이희재 지음 "번역의 모험" 입체 표지. [사진=정유철 기자]
이희재 지음 "번역의 모험" 입체 표지. [사진=정유철 기자]

 

저자는 이어 ‘흘려보내기’ ‘맞추기’ ‘낮추기’ ‘살리기’라는 주제로 문턱을 낮추는 법을 소개한다. 이어 ‘사이시옷’과 ‘띄어쓰기’를 다루는데 그 이유로 저자는 “글을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배제의 수단으로 삼았던 조선 기득권층의 문자 권력 유습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서 섰다”고 한다. “한글은 무섭도록 문턱이 낮은 글자였지만 조선은 무섭도록 문턱이 높은 사회였다. 조선인의 무한한 잠재력을 짓누른 한글 억압은 조선의 망국으로 이어졌다.”

《번역의 모험》을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를 염두에 두고 쓴 번역론이지만 글을 쓸 때 누구나 참고할만한 책이다. 내가 쓰는 한국어 문장이 문턱이 높은지 낮은지 모른다면 더욱 이 책을 옆에 두어야 한다. 저자의 전작 《번역의 탄생》이 ‘번역의 바이블’ 불리며 언어를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필독서로 꼽았다. 이번에 나온 《번역의 모험》 또한 그렇다.

이 책에서 다음 문장은 꼭 기억해두고 싶다.

“현대 한국어에서 ‘문장’은 완결된 생각이나 감정을 담은 글의 최소 단위라는 중립적 의미로 씁니다. 하지만 전통 한국어에서 ‘문장’은 좋은 글을 뜻했습니다. 훌륭한 번역문도 훌륭한 창작자로 똑같이 훌륭한 ‘문장가’입니다. 좋은 번역을 좋은 문장입니다. 좋은 번역가는 좋은 문장가입니다. 아무리 기계번역의 시대가 와도 좋은 문장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 또한 좋은 문장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