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앞은 안 보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어요. 태어나서 공부해서 대학가고, 돈 벌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의무로 또 열심히 돈을 벌다가 늙으면 죽는 게 인생인가? 도대체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에 삶이 허무해졌죠.”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고뇌할 때가 어느 순간 찾아온다. 고영아(47세) 씨에게 이런 고민이 찾아온 것은 40세 때 몸 건강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였다.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 고영아 씨는 그의 나이 40대에 건강의 적신호와 함께 찾아온 삶에 대한 고민을 브레인명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 고영아 씨는 그의 나이 40대에 건강의 적신호와 함께 찾아온 삶에 대한 고민을 브레인명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고영아 씨는 중국과 섬유무역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후 제2의 직업으로 시작한 일이 아동복 쇼핑몰이었다. 호평 속에 처음 5년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밤에 판매할 옷을 구입하러 다니고 낮에는 인터넷 주문을 소화하고 포장하면서 잠을 줄이고 식사는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시며 도왔고, 이모도 함께 했다.

그때부터 허리가 아팠고, 결국 디스크판정을 받았다. “허리디스크 때문에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했어요. 통증으로 잠을 잘 수 없어 새벽 1~2시에 깨어 공원을 걸었죠. 나중에는 누워서 일어날 수 없고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가 없어 자괴감에 빠졌어요.”

병원과 한의원 등 수많은 치료를 거듭했고, 신경차단술을 두 번 받았다. 그리고도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리에 절망했다. 다행히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아직 젊으니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보며 운동과 약으로 해 보자.”고 하여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삶에 대한 회의가 깊었다. “살아오면서 날 위한 선택이 있었나 돌아보았죠. 주변에서는 너는 너만 안다고 하는데 막상 나를 위해 산 적이 없었어요. 허리만 고칠 수 있으면 남은 인생을 착하게 살겠다고 결심했다가도 어릴 때부터 제 꿈을 펼 수 없던 환경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었어요.”

그때 삶의 의미에 관한 책들, 명상 관련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남편이 단월드 신도림센터에서 브레인명상을 시작하며 활기와 편안함을 되찾았다.

“저는 재즈댄스나 뮤지컬처럼 역동적인 활동이 더 좋아서 남편의 권유를 거절했죠. 그러다 센터에서 개최하는 ‘가족힐링데이’에 남편이 친정어머니와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가서 저보고 오라고 하더군요. 큰 기대 없이 방문했는데 브레인명상을 하면서 난생처음 온몸을 허공에 맡긴 듯 편안한 이완을 경험했어요.”

그는 이완명상, 진동, 연단수련의 재미에 점점 매료되었다. “지감명상을 하면서 에너지를 느끼니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마침 양자역학 관련 책을 관심 있게 보고 있었는데 양자역학 관점에서 바라본 브레인명상의 원리를 들으면서 명상이 과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고영아 씨는 결혼기념일 선물로 브레인명상 평생회원권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고영아 씨는 결혼기념일 선물로 브레인명상 평생회원권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남편은 결혼기념일에 그에게 평생회원권을 선물했다. “제게 건강과 행복, 그리고 제 삶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가장 값진 선물이죠.”

얼마 후 그는 심성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육 전에 ‘영혼의 새’ 애니메이션을 보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꺼이꺼이’ 울었어요. 제가 왜 사는 건지 고민하면 친구들이 4차원이라고 했죠.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너무나 편해서 그런 고민을 한다’고 했는데, 영상 속 주인공이 마치 저 같았거든요.”

심성 교육 때 ‘전력투구’라는 의지로 참여한 고영아 씨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았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그걸 느끼고 싶어하더군요. 차차 교육을 받고 수행하면서 그런 사랑을 해줄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이후 PBM(파워브레인 메소드)교육을 받은 그는 “교육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제가 제 뇌의 비밀을 안 듯했어요. 그동안 ‘나’라고 알고 있던 것이 전부 뇌의 작용이라는 것, 이렇게 뇌를 완전히 정화하면 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죠. 바로 뇌교육 전문가과정인 마스터힐러를 하고 싶었죠.”

남편도 선뜻 찬성하며 같이 하겠다고 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진 않았지만, 쳇바퀴 같은 삶을 끊어내고 새로운 나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통했어요. 제가 먼저 교육과정을 시작했는데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고, 뭔가 비워지는 느낌이었죠.”

그는 마스터힐러교육과정 중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자격시험에도 도전해서 자격을 취득했다. “한 과정 한 과정이 쌓여서 조금씩 제 삶이 변화했어요. 제 인생 목표가 돈과 명예, 외부적인 평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으니까요.”

고영아 씨는 어머니와 이모에게도 브레인명상을 권했고, 두 분 모두 마스터힐러 교육까지 마쳤다. “사랑하는 두 분이 평생 힘들고 아픈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안 아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권했죠. 저처럼 자신의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던 분들인데 자신 안에서 답을 찾으셨으면 했는데 건강하고 행복해지셔서 저도 기쁩니다.”

고영아 씨는 2019년 단월드 지도사범을 선택했다. “첫 권유를 받았을 때는 능력이 안된다고 생각했고 회원들도 부족하다고 할까 두려웠죠. 처음에는 어떻게 잘 지도할지에만 온통 집중했는데 점점 회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분들과 교류하는 제 자신의 모습도 보이더군요. 지금은 함께 수련하는 것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에 어려움도 많았다. “제가 준 홍보지를 눈앞에서 버리는 사람들을 보거나 거절당할 때 제 마음 밑바닥에 있던 감정들, 피해 의식들이 올라왔는데 점점 닦여나가더군요. 그리고 누가 시켜주는 수련이 아니라 자신만의 수행시간을 확보하고 주도적으로 해나갈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회원을 통해 제가 닦이고 성장하는 것을 느꼈죠.”

국학기공 강사인 고영아 씨는 2019년 3월부터 가산중학교 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 교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2019년 국제 국학기공대회에 출천한 학생들과 함께. [사진=본인 제공]
국학기공 강사인 고영아 씨는 2019년 3월부터 가산중학교 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 교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2019년 국제 국학기공대회에 출천한 학생들과 함께. [사진=본인 제공]

아울러 고영아 씨는 대한국학기공협회 국학기공강사 자격을 취득해 2019년 3월부터 가산중학교에서 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 지도를 하고 있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누워있고 무기력한 아이들을 끌고 가려고 2~3배 이상 에너지를 들였죠. 점차 알게 된 것은 떠들거나 무기력하다고 안 듣는 게 아니더군요. 나중에는 잘하는 아이에게 칭찬을 한번 더 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죠.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 시각도 바뀌었습니다. 겉으로는 다 컸지만 아직 사랑받고 관심을 끌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이해되었어요. 전보다 아이들을 너그럽게 바라보게 되었죠.”

그는 가산중학교 아이들과 2019년 국제 국학기공대회에 출전했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기운을 타고 늠름하게 경연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더군요.”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등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수업을, 홈스쿨링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한 학생이 머리가 아프고 잠을 못 잔다고 제게 연락을 했어요. 그래서 30일간 매일 연단 15분과 팔굽혀펴기를 할 수 있는 만큼 목표를 세워 해보자고 했죠. 매일 실천한 것을 카톡 문자로 주고받으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그 학생 덕분에 저도 체력단련을 할 수 있었고요. 30일 동안 저를 믿고 따라준 학생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고영아 씨는 멋진 기공트레이너로 성장하는 꿈과 함께 기공체조를 전 국민 생활체조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고영아 씨는 멋진 기공트레이너로 성장하는 꿈과 함께 기공체조를 전 국민 생활체조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고영아 씨의 꿈은 멋진 국학기공 트레이너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기공체조가 전 국민의 생활체조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