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수많은 정보를 접한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 출근하는 사람들의 소리, 옆에 누운 사람의 온기 등 시각 청각 촉각으로 다가온다.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내'가 깨어난다.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고,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떠오른다. 이렇게 나 자신의 존재로 돌아오는 것이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살핀다. 안색은 어떤지, 못 보던 주름살이 하나 늘어나면서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나의 모습에 낙담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만약 전날의 기억도 또렷하고 어제에 이어 오늘 해야 할 일도 분명한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내가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는 그 기준은 무엇일까?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자고 일어나면 매일 모습이 바뀌는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판타지 로맨스 영화다. 영화는 내가 '나'라는 존재를 인지하는 것은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인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영황 '뷰티인사이드' (감독 백종열)

영화의 주인공 우진은 18세 생일 이후 매일 아침 완전히 새로운 사람, 심지어 성별과 나이, 인종까지 초월해서 새로운 사람이 된다. 어떨 때는 키 185cm의 훤칠한 미남이 되었다가 바로 다음 날은 대머리 아저씨가 되었다, 다음날은 9세 꼬마 아이로 변한다.

남자 주인공은 아무리 절세미인으로 변신하더라도 결코 29세 남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 실제 모습은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에는 크게 2가지 주장이 있다. 우선 자아란 몸 안에 거주하는 존재라는 입장이다. 몸은 정신이 기거하는 그릇으로 철학자 게일런 스트로슨은 이른바 '진주 이론(pearl theory)'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진주 이론에서의 자아는 우리 존재의 핵심으로 평생 꾸준히 지속된다고 본다. 이런 자아 덕에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의식을 가진 ‘나’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매일 욕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나'이다.

반면 데이비드 흄은 자아는 단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지각, 사고의 다발들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다발 이론(Bundle Theory)'을 주장했다. 살면서 생기고 쌓인 경험의 축적으로 자아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기가 두 살이 될 때까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 아기의 자아의식은 만 2세 이상이 되어서야 형성됨을 보여준다. 이는 자아가 살면서 형성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다시 영화 <뷰티 인사이드>로 돌아가서, 영화는 시종일관 CF 속 한 장면 같은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29세 우진이 10년 넘게 매일 성별과 인종을 초월한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면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자아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또한, 영화는 '뷰티(Beauty, 아름다운)'는 '인사이드(Inside, 내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지만 정작 말하고자 하는 ‘내면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