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년 동안 고구려 수도였던 집안, 그 역사를 더듬다
425년 동안 고구려 수도였던 집안, 그 역사를 더듬다
  • 글/사진=정유철 기자
  • hsp3h@ikoreanspirit.com
  • 승인 2014.10.21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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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속 우리 역사 기행 14

고구려 국내성 집안은 어떤 곳인가. 집안은 지금 중국에서는 集安으로 쓰지만, 원명은 輯安이다. 또 통구(通溝), 통구(洞溝)라고도 했다. 구석기시대에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단군조선의 영토였으며 고구려 국내성이 이곳에 있었다. 서기 3년 유리왕이 이곳으로 천도를 한 후 427년 20대 장수왕이 평양으로 다시 도읍을 옮길 때까지 집안은 425년간 고구려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집안은 중화왕조의 관할에 들었다. 당나라는 집안에 가물주도독부(哥勿州都督府)를 두고, 안동도호부가 관할하도록 하였다. 이후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일어나 이곳을 차지하여 집안은 서경압록부의 환주(桓州)가 되었다. 발해는 집안에 환주를 설치하였다.

▲ 집안 시가지. 집안은 425년간 고구려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원나라는 요양에 요양행중서성을 두어 요양로, 심양로를 관할하게 하였고 이때 집안은 요양로의 동녕부 관할에 속했다. 명나라 때는 도사(都司), 위소(衛所)를 두어 집안은 도사 관할의 건주위(建州衛)에 예속됐다. 청나라 말기에 집안은 길림장군이 관할하는 서남경계였으며, 군사주둔지와 행정관리상 봉천장군(奉天將軍)이 관할했다.
1902년 봉천장군이 조정에 집안(輯安)으로 명칭을 변경할 것을 건의했다.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워 집안은 봉천성 관할이 되었다.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요동성 통화가 관할하게 되었고, 1965년에는 집안(集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9년 시로 승격되었다.

 1994년 중국 정부는 집안시를 ‘중국역사문화명성’(中國歷史文化名城)으로 명명했다. 2004년 중국 우수여행성시로 선정됐고, 2004년 7월1일 집안시의 고구려 왕성, 왕릉과 귀족묘 등 42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집안에는 고구려 유적이 가장 많다. 유적지가 32곳, 고분군이 74곳 고성터가 8곳, 비석류가 7곳이다. 중요도별로 보면 중국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가 2곳, 성급문물보고단위가 4곳 현(시)급문물보호단위가 10여곳이다. 전국 중정점문물보호단위로는 광개토대왕비를 포함한 통구고분군, 국내성과 환도산성 두 곳이다. 저녁 후 집안을 떠나며 그 역사를 살펴보았다. 집안 고구려 유적 답사를 마치고, 우리 민족의 근거지였던 집안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집안의 역사가 궁금했던 것이다. 집안을 출발하여 통화에 다시 도착했다. 7월16일 아침에 출발한 곳.

▲ 통화 시민들이 강변 공원에서 에어로빅을 하고 있다.

통화에서 중국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엿보기로 했다. 통화 강변 공원으로 갔다. 체제는 다르지만, 그들도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 인간으로서 감정과 욕구는 같을 터. 통화 시민들이 감정을 표출하고 욕구를 해결하는 방식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전등불이 하나둘 늘어가는 동안 강변 공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노인,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녀노소가 나와 휴식을 취했다. 그보다는 문화생활을 즐겼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음악에 맞춰 10여 줄 넘게 쭉 늘어선 여성들이 에어로빅을 춘다. 제법 옷을 갖춰 입은 사람은 앞에서, 좀 편한 사람은 그 뒤로 줄을 지여 온몸을 바쁘게 움직이며 즐거워한다. 미처 신을 갈아 신지 못하고 구두를 신은 채 에어로빅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 체조를 하는 이들에게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 통화 강변 공원에서는 밤에 불꽃 놀이 공연을 한다.

에어로빅 여성들 옆에서는 중국 전통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무예를 달련한다. 음악에 맞춰 기공을 하는데, 무척 진지하다. 옆에서 에어로빅 음악이 꿍꽝! 울려도 무예 단련에 여념이 없다. 한쪽에서는 기공을 한다. 조용한 음악에 몸을 앞뒤 좌우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물 흐르듯 지도하는 이를 따라서 한다. 이 줄 맨 뒤에 슬그머니 붙어 그네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해보았다. 이런 체험 언제 하랴!

옆을 보니  남자 셋이 제기차기를 한다. 우리나라 제기는 많이 차는 사람이 이기지만, 중국 제기차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차다가 아무에게 불쑥 던져 받게 한다. 상대가 받지 못하면, 점수를 얻는 모양이다.

완전히 어두어지자 강 건너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하늘을 향해 쏜 불꽃이 아래로 쏟아지는데 장관이다. 눈과 마음을 황홀하게 했다. 공원에 점점 사람이 늘자 공안(公安)이 나와서 질서를 잡는다. 행상인, 포장마차가 종종 보이고 도로변에는 차량으로 가득찬다. 우리네 풍속과 다를 바 없다. 공원 안쪽에는 화장실이 있어, 편하게 놀 수 있다. 그러는 동안  통화의 여름밤이 점점 뜨거워진다. 뜨거워지는 통화를  뒤로 하고 기차를 탄다. 백두산으로 가는 기차. 밤새 기차를 타고 내일 아침에 이도백하에 도착할 것이다. 

9시41분 발, K7389차. 돈화(敦化)발 이도백하(二道白河)행 기차다. 우리는 침대차에 탔다. 딱딱한 자리에 앉아서 가는 칸, 누워서 타는 칸, 경와(硬臥), 연와(軟臥), 기차는 하나지만 칸칸이 좌석이 다르다. 앉아서 가느냐 누워서 가느냐에 금액 차이가 있다. 기차에 올랐더니 3층으로 된 침대가 마주 보게 되어 있다. 한 칸에 6명이 탄다. 좌석을 차표를 구입할 때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 안에서 다시 정해준다. 빈 곳을 찾아 정해주는 통에 우리 일행은 서너 곳으로 흩어졌다. 밤새 갈 것을 생각하여 술 한 잔 하고 잠을 청했다. 종일 돌아다닌 탓인지 금방 잠에 빠졌다. 이대로 어디로 갈지! 중국의 밤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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