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없는 것은 비단 도둑, 대문, 거지뿐만은 아니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다. 거칠 것 없이 펼쳐진 자연이 가장 먼저 제주에 온 사람을 반긴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물질문명이 만들어낸 빌딩숲의 세련미보다는 자연이 선사하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오면 마음의 시계도 한 템포 느려진다. 바쁜 일상생활에 묻혀 보지 못했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 익숙하지는 않지만 설레는 이 기분이 그리워 명상여행을 떠나는 것이리라.

지난 6일부터 3박 4일간의 제주 명상여행을 마무리하며 속으로 되뇐 말이 있다. ‘땅을 열어 하늘을 담은 도시, 자연 속에서 자신과 하나 될 수 있는 진정한 평화의 섬’, 그곳이 ‘제주’라는 것이었다. 코리안스피릿에서는 제주에서 나흘 동안 동행 취재한 명상여행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10주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한다.

▲ 제주시가 6일 제주를 찾은 일본호흡명상동호인 100여 명을 환영하는 뜻으로 현수막과 꽃다발을 선물했다.

긴 겨울의 장막을 뚫고 불어오던 따스한 봄바람이 잠시 멈칫했다. 지난 6일 오후 100여 명의 일본호흡명상동호인을 맞이한 건 꽃샘추위의 바람이었다. 제주에 많은 것 중 하나가 바람이라더니, 첫날부터 제대로 제주의 바람 맛을 본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이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피어났다. 타국에서 맛볼 이색적인 문화와 자연명상에 기대가 가득했다.

이들이 제주에 와서 가장 처음 찾은 제주의 명소는 ‘삼성혈’이었다. 삼성혈은 지금으로부터 4,300여 년 전 제주도의 개벽시조인 삼신인(三神人, 고을나(髙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에서 수렵생활을 하다가 우마(牛馬)와 오곡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삼공주를 맞이하면서 농경 생활이 비롯되어 탐라왕국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 삼성혈은 제주도의 개벽시조인 삼신인이 태어난 곳으로, 강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제주도의 강력한 파워스팟 중 한 군데이다.

이 곳에는 땅에 세 개의 구멍이 나 있다. 신기한 것은 이 지혈(地穴)을 향해 주위의 수백 년 된 고목 나뭇가지들이 경배(敬拜)하듯이 뻗어있다는 것이다. 땅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강력해 주위의 것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비나 눈이 많이 내려도 일 년 내내 고이거나 쌓이는 일이 없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제주에서 기운이 가장 좋은 곳이기에 매년 춘ㆍ추대제(春·秋大祭)및 건시대제(乾始大祭)도 이곳에서 열린다. 조선 중종(中宗) 21년(1526) 목사(牧使) 이수동(李壽童)이 처음 표단(標壇)과 홍문(紅門)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春·秋奉祭)를 시작한 이래 그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혈은 하늘의 기운과 연결되어 있는 곳입니다. 별자리로 따지자면 북극성과 같은 자리죠. 북극성이 어떤 별인지는 잘 아시죠? 깜깜한 밤하늘에서 빛나며 어디서든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해줍니다. 제주 사람들은 북극성의 자리에는 삼성혈을, 북두칠성의 자리에는 제주성 안에 북두칠성 모양의 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삼성혈에서는 북극성으로부터 내려오는 천기(天氣)와 땅에서 올라오는 지기(地氣)를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 일본호흡명상동호인들이 삼성혈을 향해 양손을 뻗어 에너지를 느끼고 있다.

일본호흡명상동호인들은 삼성혈을 탐방하며 이곳의 에너지를 느껴보는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명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굳은 몸을 풀었다. 무릎에 가볍게 진동을 주며 긴장된 몸과 마음을 이완한 후, 눈을 감고 양 팔을 삼성혈을 향해 뻗었다.

코베에서 온 고모리아 마스미 씨는 명상하면서 “삼성혈에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다”며 “온몸이 앞뒤로 흔들릴 정도로 진동이 왔다”고 했다. 같은 지역에서 온 마키우라 히데미 씨 역시 “들어오기 전보다 삼성혈에 들어온 후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며 “파워스팟(power spot) 같은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호흡명상으로 기 감각을 단련한 동호회 회원답게 에너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삼성혈의 맑고 강한 에너지가 인상적이었는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이곳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받는 이들도 있었다. 삼성혈 근처에 있는 나무에 기대어 에너지 교류 명상을 하는 회원도 눈에 띄었다.

▲ 일본인 동호인 한 명이 양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놓고 삼성혈의 강한 에너지를 받고 있다.

삼성혈 안에는 삼성전(三聖殿)이 있다. 삼성전은 삼성시조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으로, 제향은 매년 후손들이 춘기대제(4월 10일)와 추기대제(10월 10일)를 봉향한다. 이 곳에는 제주의 정신을 한 눈에 보여주는 현판이 전시되어 있다. 바로 ‘홍화각(弘化閣)’ 현판이다.

현존하는 국내 현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이 현판은 1474년에 제작된 국보 제1호 숭례문 현판보다 39년이나 앞서 제작된 것이다. 가로 163cm 세로 66cm 크기인 홍화각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제주 출신 고득종이 썼다고 알려졌다.

▲ 삼성혈 안에는 삼성시조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인 삼성전(三聖殿)이 있다. 삼성전 안에 홍화각 현판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 15일 홍화각 현판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한 바 있다. 글씨체는 세종 16년(1434) 갑인자 금속활자의 서체와 동일하다. ‘홍화각’이란 글자는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 (弘益人間 理化世界)’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여 이치가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홍익철학이 제주의 뿌리정신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것은 비단 중국, 한국, 일본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을 품는 위대한 정신이 이 땅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홍익정신의 실체인 선도(仙道)문화 원형이 생활문화로 가장 잘 살아있는 곳 역시 제주이다.

우려내면 낼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설렁탕처럼, 알면 알수록 진국 같은 맛이 나는 곳이 제주도인 것 같다. 다음 편에는 제주인의 문화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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