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추석이 6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가위는 일년 중 가장 좋은 명절. 옛부터 중추가절(中秋佳節)이라 하였다. 『열양세시기』에 "이 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벽촌의 가난한 집이라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고 하였다.

추석(秋夕)은 가배(嘉俳)라고 하였으니 신라 풍속에서 비롯하였다. 『삼국사기』에 그 기사가 전한다.

"신라 유리왕 때 6부의 중간을 나누어 두 부로 만들고 왕녀(王女) 두 사람이 각각  한 부 안의 여자를 거느리고 편을 갈라 7월16일부터 날마다 일찍 큰 부의 뜰에 모여 베를 짜게 했다. 그리하여 을야(乙夜, 2경 밤 9~11시)가 되어서야 파했다. 이렇게 팔월 보름까지 하여 그 간의 성적을 따져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했다. 이때 노래와 춤을 추며 온갖 놀이를 다했다. 이를 가배라 했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되 '회소(會蘇), 회소(會蘇)'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 아름다워 훗날 그 소리를 따라 노래를 지었다. 이 노래를 회소곡이라 한다."

옛부터 길쌈을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왕녀, 왕의 딸이 관장할 정도니 말이다.  나라에서 이렇게 길쌈을 장려하니 신라 여성들은 평상시에도 길쌈에 힘썼을 것이다. 하지만 길쌈은 힘든 노동이다. 그러니 경기를 하듯 편을 갈라 경쟁을 하도록 하고 격려하면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른다.  

이렇게 신라 여성들이 베를 짜는 동안 남자들은 무엇을 했을까?  신라 남자들은 활을 쏘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무술을 연마한 것이다. 중국 측 기록인 『수서』(隋書) <동이전> 신라 조에 임금이 추석날  음악을 베풀고 신하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상으로 말과 천을 내렸다고 하였다. 『구당서』(舊唐書)<동이전>에도 신라국에서는 8월 15일을 중히 여겨 음악을 베풀고 잔치를 열었으며 신하들이 활쏘기 대회를 하였다고 나온다.  

  중국 사서에 이런 기록이 나온 것은 한가위는 신라만의 풍속이기 때문이다. 다른 기록도 있다. 서기 838~847년 당(唐)에 유학하여 신라 절에 머물던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절에서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떡 등을 마련하여 8월 보름 명절을 지냈다. 이 명절은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신라에만 있다."라고 하였다.

한가위의 유래을 신라와 발해와의 싸움에서 왔다고 언급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엔닌의 기록 때문이다.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보면 "노승 등이 말하기를 '신라국이 발해국과 서로 싸웠을 때 이날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이 날을 명절로 삼아 음악과 춤을 추며 즐겼다. 이 행사는 오래도록 이어져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온갖 음식을 마련하고 가무와 음악을 연주하며 밤낮으로 이어져 3일 만에 끝이 난다. 지금 이 산원에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며 오늘 명절을 지냈다."고 하였다(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그러나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보다 훨씬 전 유리왕 때 한가위 풍속이 있었다. 철종 10년(1859) 윤정기(尹廷琦)가 지은 『동환록 (東寰錄)』에는 "신라는 8월을 기다리는데 가배라고 한다. 지금 배우자 풍속은 가배가 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배(俳)는 배우(俳優)인데, 배(徘)와도 통한다. 그렇다면 달 아래에서 춤을 추고 배회하였는데, 결국 오로지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즐기는 것에 중점이 두어져, 가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가배가 언제부터 추석으로 바뀌었을까. 많은 이들이 중국의 영향을 든다. 『 대대례(大戴禮)』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삼대(하ㆍ은ㆍ주나라)의 예에 천자는 봄날 아침에 해에게 제사를 지내고 가을날 저녁에 달에게 제사를 지낸다. 해에게 하는 제사는 동단에서 하고 달에게 하는 제사는 서단에서 한다.(三代之禮, 天子春朝朝日, 秋暮夕月, 祭日東壇, 祭月西壇)" 여기서 조(朝)와 석(夕)은 배례(拜禮)를 말한다.  "춘조조일 추모석월(春朝朝日, 秋暮夕月)에서 추석이 나온 것이라고 보는 설이다.

중국에서는 이날을 중추절(仲秋節)이라 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서 가을을 맹추(孟秋)ㆍ중추(仲秋)ㆍ계추(季秋)로 나누고 8월을 중추지월(仲秋之月)이라 한데서 나온 것이다. 중추절에 달구경을 하는 풍속은 한참 뒤 당나라 때 생겨났다.

이렇게 추석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이다. 신라에서 비롯되어 고려, 조선에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농경사회에 중요한 명절이었다. '5월 농부 팔월 신선'이라 하였듯이 농사에 힘써 풍년이 들면 8월에는 풍성하고 여유가 있으니 신선이나 다를 바 없다. "농촌에서는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멸정로 삼는다. 새 곡식이 이미 익고 추수가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날 사람들은 닭고기, 막걸리 등으로 모든 이웃과 실컷 먹고 취하여 즐긴다. " (『동국세시기』)

이 명절이 점차 외국으로 퍼져나갔다. 신라에서 발상하여 즐긴 한가위 명절이 점차 중국과 일본으로 확대되어 지금은 세 나라 모두 성대하게 보내는 명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