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한 권이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는 오른쪽과 왼쪽으로 갈라져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교육부는 틈바구니에서 해당 한국사 교과서를 출판한 교학사에 '수정∙보완'을 지시하고 나섰고 교학사는 "출판사 이미지 실추에 테러 협박까지 받고 있다"며 발행 포기를 검토하고 나섰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문제의 시작은 어디이고, 무엇이 문제일까. 그 시작은 201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쪽(좌)으로 편향된 역사 연구를 지양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한다는 취지로 '한국현대사학회'라는 학술모임이 설립되었다. 보수, 우익 성향의 '뉴라이트' 학자들이 대거 포진한 모임이다.

 한국현대사학회는 학회의 전직 회장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현직 회장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를 집필자로 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다.

 뉴라이트 저자들이 쓴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과서 검정과정에 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현대사학회는 지난 2008년에도 <한국 근현대사>라는 제목의 대안교과서를 내놓았지만, 당시에는 검정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교과서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올해 5월 31일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는 제목의 학술회의를 통해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지적하면서부터였다. 학술회의에서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발제자들은 "기존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이 심각하다"며 "대한민국을 제대로 보는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과서의 논란이 가중된 것은 교과서 검정 통과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 교과서는)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하고 있다' '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확산되면서 부터였다. 실제로 해당 교과서의 저자로 참가한 학자들은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로 학술대회와 공개석상에서 이같은 발언을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누리꾼들 사이에서 공분을 일으켰던 내용은 실제 교과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과서에는 4∙19는 '혁명', 5∙16은 '군사정변',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서술하고 있다. 단, 그 서술 정도에 대한 온도 차는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좌우 진영의 정치적 대립으로 보이던 한국사 교과서 논란은 '왜곡'을 넘어 '오류'와 '표절' 문제가 제기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인터넷 집단지성 사전인 위키피디아를 표절했다는 의혹과 함께, 교과서에 실린 사진들이 구글과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사이트 속 사진을 무단 도용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이에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4개 역사단체는 해당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를 10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한국역사연구회∙역사문제연구소∙민족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는 "역사 왜곡에 심각한 사실 기술 오류까지 중요한 것만 지적해도 298건에 이른다. 기본적인 사실 관계 오류만 해도 124건"이라고 지적했다.

 식민사관에 근거하여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기 위한 교과서라는 지적 이전에, 역사 교과서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사실 오류가 속속 드러났다. 이에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수정 및 보완을 통해 재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가 검정이 취소된 전례가 없으므로 재검토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교육부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 논란의 핵심에 출판사인 '교학사'의 이름이 오르내려 출판사 이미지가 실추되면서 교학사 측에서 12일 "(한국사 교과서) 발행 포기를 포함해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출판사의 조치에 해당 교과서를 저술한 이명희 공주대 교수를 비롯한 저자들은 "발행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발언하고 나섰지만 사태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교학사 대표와 직원들에게 테러 수준의 협박 전화가 오는가 하면, 교학사의 다른 출판물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가 다음 주 중으로 발행 포기와 관련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사단법인 국학원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우리얼찾기운동'을 통해 '국사 과목의 수능 필수화'라는 성과를 이뤄낸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클릭] 좌우 정치 이념이 사로잡혀 사실 여부를 떠나 왜곡된 주장만을 일삼는 교과서 논란은 국민으로 하여금 역사에 대한 관심을 더 멀어지게 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한국사 교과서 논란'은 출판사의 발행 포기 여부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