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成 25年 (헤이세이 25년)'
 이는 일본에서 TV나 신문, 달력에서 만나게 되는 조금은 생소한 표시다. 일왕의 즉위와 함께 황위(皇位) 계승 직후 새롭게 원호(元號)를 정하는 것으로 일본만의 '연호'라고 볼 수 있다. 간단한 이력서 한 장을 적으려고 해도 일본은 서기보다 '헤이세이'를 선호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소학교에서 일본만의 독자적인 연호 계산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2012년'이라는 말보다 '헤이세이 25년'이 더 익숙한 것이 일본인들이다. 물론 젊은 층으로 갈수록 연호를 사용하는 정도는 줄어들 수는 있다. 그러나 일본만의 연호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존심은 대단하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연호는 아무나 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 속 연호라는 것은 천자(天子)  즉, 천하를 다스릴 정통성을 인정받은 군주만이 제정할 수 있었다. 제국의 군주가 아니면 연호를 제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 못한 군주는 제국의 연호를 받아서 연도를 표기해야 했다. 정리하자면, 독자적인 연호를 쓴다는 것이 곧 가장 으뜸가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조선은 건국 직후 명나라의 연호인 '홍무'를 사용했다. 조선의 왕은 황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연호는 황제국인 명나라만의 고유 권한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한제국의 황제를 선포한 고종만이 유일하게 독립적인 연호 '광무(光武)'를 사용했다.

▲ 우리얼찾기국민운동본부가 지난 7월 31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기연호와 서기 병기를 촉구했다.

 대한민국은 공식 연호로 '서기(西紀)'를 쓴다. 올해는 서기 2013년이 되는 해다. 그렇다면 서기란 무엇인가. 이는 예수가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하는 연도계산법이다. 8세기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현재 전 세계에 통용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우리 대한민국의 5천 년 유무형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정신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비록 국호는 바뀌었으나 대한민국이 반만년 역사를 가진 유례없는 한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는 바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그 반만년 역사를 가장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단기(檀紀, 단군기원)'를 사용하지 않을까.


 대한독립선언서와 기미독립선언서 및 임시정부의 각종 문서에는 '단기'가 쓰여 있다. 광복 후 1961년까지도 정부의 공식연호는 단기였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사회가 큰 변혁기를 맞게 되었다. 바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것이다.

 1961년(단기 4394년) 5월 16일, 당시 육군 소장 박정희의 주도로 제2공화국의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는 군사정변이 발생하였다. 입법 사법 행정부를 모두 장악한 군사정권은 변화가 필요했다. 그 변화의 하나로 연호를 단기에서 서기로 바꾸었다.

 <단기연호 이젠 복원되어야 한다>의 저자, 단기연호연구소 고덕원 소장은 "한 해 앞선 1960년 11월 윤보선 정부 때 각종 사회 시스템과 관련하여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그 50개 문항 중 하나로 '단기' 사용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며 "군사정권이 만든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사회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단기' 사용에 관한 설문 결과를 왜곡하여 '서기 사용을 가장 많은 이들이 원한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단기와 서기를 함께 사용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단기만 사용하자' 그리고 마지막이 '서기만 사용하자' 순이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에서는 '함께 사용하자'는 의견에 '서기만 사용하자'는 의견을 더해서 많은 국민이 '서기만 사용하기를 바란다'는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당시 제출된 '참모연구서'에 따르면 "사학계의 권위 있는 학자들이 단군기원의 신화적 비합리성을 지적하면서 서기사용에 적극 찬성하였다...단기연호를 폐지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문명국가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고 우리나라의 인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초 윤보선 정부는 외국과의 교역, 그리고 외국과의 우편 업무에서 단기가 사용되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외국과의 관계된 공식 업무에서 서기와 단기를 함께 쓰는 방안을 추진 중이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은 "서기와 단기를 혼용함으로써 복잡과 혼란을 야기할 것이며 불편을 줄 것"이라고 딱 잘랐다.

▲ 상량식을 마친 숭례문 상량문. 서기(西紀)로만 기재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국보1호를 되찾는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올해로 4346년을 맞는 단기를 쓴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아직까지도 일왕 즉위를 기준으로 연호를 쓰는 일본은 선진국이 아니라는 말인가. 단군기원의 비합리성을 지적한 권위 있는 사학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군사정권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변화를 일으킬 한 방편으로 단기를 선택한 것을 통해 우리는 단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숫자이지만, 단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 민족이 언제부터 시작된 민족인지를 계속해서 자각시키는 것과 같다. 가장 일상적인 날짜 사용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이 고취되는 것이다.

 이에 이종걸 의원(민주당)은 지난 6월 '연호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경제발전을 시급하게 추진하면서 서구화, 세계 공통이라는 행정편의를 이유로 단기가 폐지되면서 국민 자긍심과 정체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이번 법률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이 의원은 "대한민국 공용연호는 서력기원으로 하되 단군기원을 함께 쓰는 방안을 정리했다"며 "이를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반만년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그에 걸맞는 국민적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민사회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얼찾기국민운동본부는 지난 7월 31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기연호 함께 쓰기 운동을 시작했다. 얼찾기운동본부 주관단체인 국학원 장영주 원장(대행)은 "연호란 효율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긍심의 상징"이라며 "단기연호 함께 쓰기에 동참하는 국민 100만 명의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기연호 이젠 복원되어야 한다>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한다.

 "올해로 몇 살이세요?"
 "네 제 나이는 스물두 살인 ㅇㅇㅇ 씨의 나이에다 스물셋을 더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제 나이는 4346년이지만, 지난 50년 동안 남의 나이(2013년)를 사용했더니 남의 나이에다가 2333년을 더해야 제 나이를 알 수 있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안타까움이 있다면 '2333년'을 더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