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얼교실 -

제1강 참전계경 제3강령 애 (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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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하지 않는 인류의 주제, '사랑'.
 우리 선조들은 그 사랑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한민족의 사랑은 어떻게 세상에서 펼쳐왔을까.

 한민족은 사랑에는 범위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이 있다는 것. 이는 <참전계경> 제3강령 애(愛)를 통해 6가지 규범, 43가지 공간으로 나눠진다.

>> 6범範 43위圍 ㅣ 제1범 서恕, 제2범 용容, 제3범 시施, 제4범 육育, 제5범 교敎, 제6범 대待
 

 

 사랑에 대한 여섯가지 규범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제 1범 서 恕, 내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같다.

 내가 배가 고프면 다른 사람의 배도 고플 것이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면 다른 사람도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공자의 '혈구지도(絜矩之道)'와 일맥상통한다. '혈구지도'란 사서삼경의 한 각론으로 앞뒤를 헤아려 올바른 것을 찾아 따르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보다 1,800년이나 앞선 <참전계경>에서는 이를 '혈구이안(絜矩以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도를 뜻한다. 이 개념은 우리 민족의 경전과 한민족 경전인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제 2범 용 容, 만물을 포용한다는 뜻이다.

 만 리의 바다에는 만 리의 물이 흐르고, 천 길의 높은 산에는 천길 높이의 흙이 쌓여 있다. 물이 흘러넘치는 것도 완전한 포용이 아니고, 높은 산의 흙이 무너지는 것도 완전한 포용이 아니다.
 

 제 3범 시 施, 사랑은 베푸는 것이다.

 베푼다는 것은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이며, 또한 덕을 널리 베푸는 것을 말한다. 굶주리는 사람에게는 물질적으로 베풀어야 하며, 또한 덕을 베풀어 천성의 이치를 밝혀 주어야 한다.
 

 제 4범 육 育, 가르침으로 즐기고 잘 가꾸는 것이다.

 사랑이란 가르침으로 사람을 착하게 키우는 과정이다. 사람에게 일정한 가르침이 없으면 마치 옷에 깃을 달지 않은 것과 같고, 그물에 추를 달지 않은 것과 같다. 즉, 아무쓸모가 없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참전계경>에서는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제 5범 교 敎, 가르침이란 사람의 도리를 배워주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배움이 있으면 백 가지 행실이 바르게 되고, 배움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제 도리를 못하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사랑'을 먼저 가르침을 주고 배움을 갖도록 했다. 몸으로 먼저 터득을 하고 그 다음에 정보를 주고 정리를 시켜주었다는 것.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먼저 가르침을 주고 난 다음에 체험을 하게 한다.

 '가르치다'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이는 '가르다'와 '치다'가 만난 단어다. 이를 풀어보면 '가르다'는 것은 정보를 판단하는 것, '치다'는 것은 돼지를 치고 닭을 치듯이 몸을 잘 간수해주는 것이다.
 

 제 6범 대 待. 사랑의 마지막 단계는 기다리는 것이다.

 한민족의 사랑은 먼저 베풀고 잘 가꾸게 해주고 좋은 정보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기다리는 것이다. <참전계경>은 사랑의 이치란 보이지도 들리도 않는 것으로 오직 사랑하는 마음을 기다리고 쌓아 나감으로써 장래의 앞길을 무궁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민족은 태어나서 10살까지 '하늘을 감동시키는 정성'을 깨치게 하고 10대에는 더 넓은 사회에서 자연의 순리와 같은 믿음, 신의를 갖게 했다. 그리고 20대가 되면 바로 '사랑'을 익히게 한다. 이 시기에 한민족은 사랑을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홍익가정을 꾸리게 할 것인지를 정교한 가르침으로 전하고 있다.

 '성(性)'이란 생명(生)의 본래 마음(心)을 뜻한다. 성(性)을 교환(交)한다는 것은 이성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참전계경>의 '사랑'은 '하늘과 땅이 서로 생명의 마음을 교환하는 과정'으로도 보고 있다. 사랑이란 사람과 사람의 사랑, 그리고 우주의 순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는 '삶'이라는 우리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삶'에서 시옷(△)은 생명(인간), 미음(☐)은 땅을 뜻한다. 원반각으로 점점더 범위가 확대된다고 보면 나아가 이응(❍)은 하늘이라고 볼 수 있다. 한민족의 사랑은 인간(△)과 땅(☐) 차원에서의 사랑은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 하늘(❍)의 사랑이 있어야 삼원이 조화로운, 완전한 사랑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는 곧 '세가지 집의 주인'이 되는 것과도 같다. 사람(△)의 마음이 사는 몸집, 땅(☐)의 나라집, 그리고 전체 차원의 하늘(❍)을 뜻하는 지구집이 그 세가지 집이다. 먼저 몸집의 주인이 되고 점차 범위를 넓혀 하늘 차원의 지구집의 주인이 될 때, 우리는 얼이 큰 어른이 되고, 얼이 커져서 '신(神)'과 같이 된 어르신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한민족의 '사랑'이다. 

 

다음주 토요일(6월 29일) 한얼교실은
<참전계경> 제4강령 '제(濟), 세상을 향한 더 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