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의 한 구절이다. 최재목 영남대학교 교수는 이 노래 속에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다문화적인 사유가 있다고 말했다.

“채송화는 남미의 브라질에서, 나팔꽃은 인도에서, 봉숭아는 동남아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지구촌의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의식 속에서 마치 우리 고유의 꽃처럼 바뀌었고, 꽃밭에서는 어엿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10월 10일 올해 여론조사를 통해 ‘2012년에 주목할 10대 한국문화유전자’를 발표했다(기사 바로가기 클릭) 

최 교수는 <2012년에 주목할 한국문화유전자> ‘어울림’을 꼽으며 “어울림은 비빔밥처럼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것들이 한 데 모여 한판-한마당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우리 전통 속에 홍익인간(弘益人間), 접화군생(接化群生)이다.”라고 주장했다.

어울림을 좋아하는 한국인

먼저 어울림에 대해 살펴본다.

‘어울림’은 ‘어우르다’는 말의 명사형이다. ‘어울리다’는 여럿을 모아 한 덩어리나 한판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성격을 지닌 둘 이상의 사람이나 물건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주로 和(조화), 合(화합)을 의미하는 어울림은 개체 각각의 고유성이 사라진 ‘동화(同化)’가 아니다. 각양각색을 지키면서 모인 것들이 각기 다채로움을 발하면서 큰(커다란) 덩어리 즉 ‘한판-한마당’이 되는 것을 말한다.

최재목 교수는 어울림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비비면 맛있는 밥, 비빔밥을 예로 들었다. 또한 한국인의 특성으로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오지랖’도 있다.

오지랖이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겉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옷을 다 덮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물건에 이리저리 닿거나 스치기도 하여 다른 것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나 말이든 간에 적극 나서서 간섭, 참견하는 것을 꼬집는 말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무슨 일에 뒤로 빠지거나 숨어버리지 않고 여기 저기 적극적으로 나서서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밥도 혼자 먹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 마주 앉아 따신 밥 한 그릇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들의 고향이었다는 것이 최 교수의 말이다.

먹는 것에 관해서는 누가 오면 그냥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는 생각,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는 말, 최부자의 육훈(六訓) 가운데「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같은 경우 등에서 음식으로 어울리고 나누는 미풍양속을 볼 수 있다.

판소리에 나타난 ‘어울림’

최 교수는 서로 화합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은 판소리 더늠과 추임새에서도 가잘 잘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더늠이란 판소리에서 명창들이 사설과 음악을 독특하게 새로 짜서 자신의 장기로 부르는 대목을 말한다. 날실에다 끼워 넣는 씨실처럼 더늠은 수많은 버전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어 나온다.
또한 판소리를 부를 때 고수(鼓手)가 흥을 돋우기 위하여 발(發)하는 조흥사(助興詞)가 추임새다. 서양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국악에만 있는 독특한 요소이다.

추임새는 북치는 사람이 소리의 구절 끝에서 <좋다ㆍ좋지ㆍ으이ㆍ얼씨구> 또는 <흥!>과 같은 조흥사와 감탄사를 발함으로써 흥을 돋우고, 또 다음 구절을 유발하는데 도움을 준다. 추임새는 겉은 말이라도 장면에 따라 표현 방법이 다르고, 아무데서나 남발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서양음악은 연주자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 정숙을 유지하는데 반해 판소리는 창자와 고수 그리고 관중이 함께 추임새를 통해 흥과 설움, 한(恨)을 교류하는 것이다. 고수뿐 아니라 관중들도 창자와 함께 추임새로 소리를 이끌어 간다. 거기서 소리판의 생명력이 살아난다. 우리 어울림의 한 모습이다.

 

어울림 민속문화, ‘조각보’

여러 조각의 자투리 천을 모아 보자기를 만든 조각보에는 한국 고유의 어울림의 민속문화를 볼 수 있다. 여러 조각의 자투리 헝겊을 깁고 기워 만든 보자기에는 작은 것을 버리지 않고 아끼는 마음, 그리고 쓸 데 없는 것들을 새로운 의미로 살려내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이 인간관계에 적용되면, 예컨대 바보온달을 장군으로 만든 평강공주의 생각도 되고,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황희 정승의 사고도 된다. 세상에는 버릴 것이 없고, 모두 어울려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이다.

이런 사고는 우리 전통 속에 풍요롭다. 접화군생(接化群生: 뭇 생명체들에 응접하여 교화함), 요익중생(饒益衆生: 중생들을 풍요롭고 이익 되게 함), 홍익인간(弘益人間: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함. 무한 리필, 보태주는(give) 정신)이 그것이다.

한 번의 클릭으로 세상과 만나라!

21세기 인터넷 세계에서도 한국인의 어울림은 또 다른 능력으로 발휘된다.

최 교수는 “오지랖, 주변머리-주변성이란 것은 한국인들이 어울림을 이끌어내는 밑천이자 장점이다. 이것은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들여 연결해 가는 능력, 즉 스티브 잡스가 말한connect the dots!(점들을 연결하라!)의 귀재들이 한국인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은 수많은 점, 점들을 연결해서 하나로 묶어 상통, 달통하려는 ‘통(通)’의 사고와 능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통즉불통(通卽不痛),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했다. 기혈이 막히지 않고 통하면 통증이 없고, 그것이 막혀서 통하지 않으면 통증이 생긴다는 말이다.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잘 통하는 것을 최고라 생각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어떤 기사나 글(텍스트)을 읽다가 보면 보통 글자들과는 다른 색깔(보통 청색)로 강조된 것을 만난다. 이 글자들을 마우스로 클릭하면 그것과 관련된 또 다른 정보들이 화면에 떠오른다.

이런 식으로 클릭, 클릭해 가면 끊임없이 내용들이 연결되어 가며 하나의 맥락을 갖는다. 한 문서에서 다른 문서로 링크시켜 따라갈 수 있게 하는 것, 서로 다른 문서들이 연결되어 하나로 만들어지는 것을 요즘 용어로 ‘하이퍼텍스트’라 한다.

최 교수는 “링크=접속=접촉=터치에 따라 점, 점들이 임의적으로 연결된 관계 속으로 들어온다. 이런 유전자 구조를 우리는 갖고 있다”며 “먹물로 연결(학연)하거나, 핏줄(혈연)로 연결하거나, 지리로 연결하거나(지연) 어쨌든 네트워크상에 서서 서성거리며 인간관계를 링크해 가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계적 링크의 달인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다”며 “어디에서든 비집고 들어가서 사돈의 팔촌까지 관계를 엮어보려 한다. 수많은 가문의 족보에서 하이퍼텍스트적 사고를 만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 번의 클릭과 터치로 세상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8편 <정>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