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기 직전, 비를 머금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을의 금요일. 김양은 선릉·정릉에 다녀왔다.

▲ 선릉·정릉 경내에 마련된 의자. 꼼꼼히 선릉·정릉을 돌아본 사람이 배치한 듯 경치를 바라보기 좋은 곳에 놓여 있다.
선릉·정릉 경내에는 ‘앉아서 경치를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곳에는 어찌 알았는지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비록 공원이 아닌 유적지이지만, 잠시 머리를 식히고 가기에는 참 좋다. 이제 날씨가 추워 오래 앉아 있긴 힘들겠지만 봄이나 가을에는 마음 맞는 사람과 도시락 가지고 놀러 오기도 좋겠다.

그러고 보니 선릉역 인근은 미묘한 특징이 있다. 소문난 맛집이 적다는 것.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프렌차이즈 음식점으로 선릉역 특유의 맛집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명한 집은 있기 마련. 3대째 이어왔다는 평양음식점 ‘평가옥’과 선릉역 근처에 있다는 ‘뽕족’이 대표적이다. 평가옥은 선릉·정릉을 빙 둘러싸고 있는 뒤쪽 길에 있다. ‘평양냉면’에 대한 환상이 있는 김양이 언젠가 가보리라 생각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릉·정릉 다음 코스는 코엑스 근처 봉은사였기 때문에 중간에 배고프면 어쩐지 너무 서러울 것 같아 냉면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이해해 달라. 저녁에는 비가 온다고 했는데, 춥고 배고프면 얼마나 서럽겠는가.

▲ 온반 전체 상차림 모양. 찬은 간단하게 나온다. 온반은 평안도 지방에서 즐겨 먹던 장국밥으로 토종닭 육수에는 녹두전, 버섯, 만두, 당면 사리와 각종 꾸미를 얹어 맛을 낸다. 11,000원.
그래서 냉면과 만두가 맛있다는 평가옥에서 결국 냉면이 아닌 ‘온반’을 먹었다. 만둣국과 온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쌀밥’이 함께하는 온반 승리, 그리고 소고기 육수와 토종닭 육수 둘 중에서 토종닭 육수를 선택했다. 토종닭 육수 온반에는 녹두전, 버섯, 만두, 당면 사리와 각종 꾸미가 얹어진다. 소고기 육수 온반에는 쇠고기, 버섯, 육전, 만두, 당면 사리와 각종 꾸미가 얹어진다고 한다.

▲ 토종닭 온반에 들어간 커다란 만두와 녹두전, 버섯 등이 보인다. 닭 육수 특유의 느끼하지 않고 맑은 국물이 개운한 맛을 낸다.
온반 육수 선택에는 식당 아주머니의 도움이 컸다. “소고기와 토종닭 온반 중에 뭐가 더 맛있나요?”라는 물음에 식당 아주머니는 “둘 다 맛있지만, 토종닭 온반이 좀 더 개운해요”라고 답했다. 토종닭 온반이 1,000원 더 비싸긴 했지만.

▲ 갓 내리기 시작한 커피. 저기압인 날씨 덕분에 커피 향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삼성동 커피 볶는 집’ 본점의 김지현 사장은 “오늘처럼 저기압인 날은 커피 내리기엔 까다롭지만, 향은 오히려 더 좋아요.”라고 말했다.
배가 엄청나게 부른 상태로 평가옥을 나와서는 ‘밥을 먹었으면 역시 식후 땡이지’라며 근처에 있는 커피집을 들렀다. 평가옥에서 왼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있는 ‘삼성동 커피 볶는 집’으로 핸드드립 전문 커피집이다. 테이블이 대여섯 개 남짓한 조그만 집 한쪽 구석에서는 턴테이블에서 클래식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 커피 집 창 밖으로는 선릉·정릉의 푸른 숲이 보이고 안에는 클래식 음악이 조용히 흐른다.
이날 사장님이 추천한 커피는 ‘브라질산’ 원두. 천천히 내려지는 커피 향을 즐기며 잠시 쉬는 동안 얼마 전 발표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떠올랐다. 빵 굽는 냄새처럼 좋은 냄새를 맡으면 이타심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 그렇다면 커피 냄새도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기 쉽게 만들지 않을까?

하루 평균 2만 3천4백 회, 1만 3천5백 리터의 공기가 드나드는 코는 목과 귀, 눈으로 바로 연결된다. 그리고 코에서 맡은 냄새는 기억과 감정을 처리하는 변연계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 가끔 익숙한 향을 맡으면 과거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로 맡은 냄새가 뇌로 직접 연결되다 보니 후각기능으로 뇌 상태를 알아볼 수도 있다. 후각기능을 상실하면 측두엽 기능이 저하되었거나 알츠하이머병으로 뇌 손상이 생기지 않았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음식물섭취, 성행위, 노여움, 쾌감 등을 관장하는 뇌 부위와 후각중추가 인접한 만큼, 후각 기능이 저하되면 발기부전이나 불감증 등에 시달릴 수도 있다.

깊숙이 커피 향을 들이마시며 즐기며 ‘식후 땡’을 충분히 즐기고 나니, 이제 다시 다음 코스로 움직일 때가 되었다. 바로 도심 속의 사찰, 봉은사다. ‘브라질’ 원두로 내린 구수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