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에 한반도가 들썩였던 2002년 K는 고등학생이었다. EBS 수능 특강 시청을 위해 반마다 설치된 특대형 TV는 어느새 축구선수들이 장악했다. 주번은 아침에 오자마자 칠판 한 귀퉁이에 그날 경기 대진표와 중계 시간을 적는 게 일이었다. 오프사이드도 코너킥도 몰랐던 여고생들은 한국과 일본은 물론, 저 멀리 유럽과 남미의 훈남 축구선수들의 이름과 나이, 취미까지 줄줄 읊기 시작했다. 그때는 야자도 하는 둥 마는 둥, 선생님들도 야자 감독을 하는 둥 마는 둥, K는 처음으로 월드컵이 지구촌 축제라는 사실을 느꼈다. 

▲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채운 붉은 악마들 (사진=FIFA 공식 홈페이지)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막강 전력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와의 4강 진출을 앞두고 펼친 경기. 야자도 쉬는 이날 K와 무리는 다들 '벌겋게' 차려입고 광화문으로 나섰다. K의 친구 L양은 광화문에 한 번 자리 잡으면 화장실도 못 간다며 할머니의 요실금 기저귀를 챙겨왔다고 했다. "짱드셈" 한마디 해주고 자리에 앉았다.

 

일찌감치 통제된 차량 덕분에 광화문은 온통 붉은 물결이 일었다. 골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옆에 누가 있든 서로 얼싸 안고 춤추고 울고불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사람들은 어깨에 어깨를 잡고 기차놀이를 얼마나 신 나게 했는지, K는 친구들과 다음날 학교에서야 얼굴을 다시 봤다.

▲ 7년 전 런던이 2012년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던 순간 런던 시민들의 모습 (사진=런던올림픽 공식 페이스북)
2012년-

 

하필이면 시차가 8시간이나 된다. 열대야에 날도 더운데 찝찝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서 아나운서의 입으로 메달 색깔을 듣기는 싫다. '왜 하필이면 런던이야'라는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본다. 런던이 8시간이나 늦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방(본방송) 사수를 위해서라면 자정부터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할 텐데 고민이 크다.



 왜냐고? 엄연한 근로소득자인 K가 매일 새벽 사람들과 모여서 박태환이 200m 자유형에서 쑨양을 제치는 모습을, 양궁 개인전 금은동을 우리나라 선수들이 싹쓸이하는 장면을 응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경기를 혼자 볼 수도 없다. 국가대표들이 겨루는 올림픽이라면 모름지기 서로의 애국심의 겨루는 대결의 장이 아닌가.

 

그 재미있다는 개콘(개그콘서트)도 혼자 보다 보면 다큐멘터리가 될 마당에 올림픽을 혼자 보는 모습이라니…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스카이프(화상 전화)라도 켜고 봐야 하는 건가 K는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같이 보면 더 재미있는 이유? 공감하고자 하는 뇌의 특성 때문

 
왜 올림픽을 혼자 보면 재미가 없을까? 굳이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보고 싶어하는 K의 성격이 문제라고? 아니다. 혼자 보는 스포츠 경기가 재미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 뇌의 신경, '거울 뉴런 시스템(Mirror Neuron System)'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지아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 교수 연구팀이 발견한 거울뉴런은 타인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그 행동을 할 때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를 말한다. '보는 대로 따라 하는 신경'이라는 거울뉴런은 뇌의 측두엽에 자리잡고 있다. 



 쉽게 말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기뻐하면 그 사람을 보고 있는 나 역시 기뻐지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슬퍼하면 그 사람을 보고 있는 나 역시 슬퍼지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과 에너지에 공명(共鳴)되어 내 뇌의 거울뉴런이 그것과 같은 감정, 에너지를 일으키는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 런던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유럽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자국의 국기와 대표팀 경기복으로 입고 응원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런던올림픽 공식 페이스북)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운동경기를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서 같이 보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 경기를 보면 주변 사람이 흥분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을 내 뇌의 거울뉴런이 이를 인지하고 이와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 같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흥분과 기쁨, 슬픔이 배가 된다. 공감을 하면서 그 정도가 증폭된다는 것. 실제로 실험을 한 결과 개그 프로그램을 혼자 볼 때보다 여럿이서 볼 때 무려 30배나 더 많은 웃음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공감'이란 인간이 이성적 판단 아래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공감능력은 거울뉴런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자율신경에서 출발하는 것,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8월 12일이면 런던올림픽이 폐막한다. 열흘 넘게 남은 올림픽, 모든 경기를 본방사수할 수는 없겠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 않던가.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응원하고 즐기며 서로를 마음껏 '공감'하고 '소통'하자. 공감은 인간 뇌가 가진 본연의 특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