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중일지 지도(왼쪽)와 원본인 1:50,000 지도(오른쪽)

일본군 14연대의 전쟁보고서 '진중일지'에는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의 의병 학살 기록이 자세히 담겨 있다.  2,0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의병 토벌작전 기록에 빠짐없이 첨부된 근대적 기법의 지도다. 놀라운 점은 이 지도들이 조선에서 만들어진 지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 등고선으로 지형의 높낮이를 나타냈고, 각 지방의 지명과 도로의 형태를 꼼꼼하게 표시했다. 풍수적 성향이 짙은 조선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근대 기법이 사용됐다.

1861년 완성된 대동여지도 이후 이렇다 할 지도가 없었던 조선에서 일본군은 비밀리에 제작한 한반도 지도를 확보하고 군사 작전에 활용하였다.

오는 3일 밤 10시, KBS 1TV '역사스페셜'에서는 구한말 일본 육군 참모본부가 비밀리에 내린 지령을 받고 조선 각지에 잠입한 일본군 간첩대가 30여 년간 한반도를 도둑 측량한 과정을 추적한다.

▲ 도둑측량으로 만들어진 군사비밀지도
제작진은 '진중일지'의 지도가 필사본임을 확인하고 일본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20세기 초반 근대 지도 48만여 장 가운데 원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강행되기 전 조선이 지도 제작을 위한 측량을 일본에 허가했다는 기록은 구한말 역사 문헌 어디에도 없다.

일본군 장교 무라카미 지오키치의 일지는 일본이 18세기 후반 조선과 청나라에서 비밀 측량을 진행했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일본은 무라카미가 조선에 입국하기 전부터 불법 측량을 자행하고 있었다. 일본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육군 참모본부는 1878년 창설 이래 밀정을 이용한 도둑 측량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한반도를 도둑 측량한 최초의 첩보 장교는 가이즈 미쓰오였다. 이후 1887년까지 이소바야시, 사코, 와타나베 등의 첩보 장교들이 속속 조선에 잠입했다. 첩보 장교들은 한복을 입고 조선인 행세를 하며 지도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역사스페셜'은 한반도 남단에서 서울을 거쳐 최북단까지 조선 팔도를 정탐한 일본군 첩보 장교 6인의 측량 루트를 분석, 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