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KBS 별관에서 만난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은 매주 수요일마다 방송인들을 대상으로 동양고전을 강의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PD와 아나운서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뒤늦게 학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교수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라고 인사하자 나도 모르게 같이 인사를 할 만큼 인기가 많아 보였다.

이날 인터뷰는 10월 3일 개천절 특집으로 심백강 원장의 상고사 관련 특별강연이 어떠한 내용으로 방영될 것인가였다.

심 원장은 둥그런 안경테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단군과 개천절 그리고 홍익인간 사상에 대해 너무나 쉽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였다.

명나라 주원장도 개천이라고 했다?

심 원장은 단군이 나라를 세울 때 왜 개국이라고 하지 않고 개천이라고 했는가에 대해서는 명나라를 세운 태조 주원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 심백강 원장(민족정신문화연구원)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이 개국이라고 하지 않고 개천이라고 하였다. 왜 그랬냐고 하면, 자신들의 나라가 조그마한 제후국이 아니라 천하의 제국이라고 본 것이다.”

심 원장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단군고기>가 실려 있는데, 고조선이 9개의 제후를 거느린 제국으로 나온다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고조선이 개국이 아니라 개천이라고 했던 것처럼, 명나라도 개국이라고 하지 않고 개천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서 하늘은 무슨 뜻입니까?”라는 질문에, 심 원장은 “이때의 하늘은 천상의 천이 아니라 <대학>에서 말하는 ‘치국평천하’의 ‘천’을 일컫는다‘라고 대답하였다.

심 원장은 “우리 민족은 본래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전통이 있어요. 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이것이 모두 하늘에 제사지낸 전통 아닙니까? 추석 때 자신들의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데, 시월에는 국가에서 국중대회를 했다.”라며, “우리 민족은 시조와 함께 하늘에 제사를 같이 지냈어요. 왜냐하면 천손이라 여겼기 때문에. 우리의 뿌리가 하늘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어 “고구려의 동맹(東盟), 한가지 동 맹세할 맹인데, 국중대회이었다. 국민이 모여서 축제를 하는데 훌륭한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손이 되겠다는 맹세하는 자리가 동맹이 아니겠나”라며 ”그런 전통을 이어서 오늘날 개천행사를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국조를 천대하는 나라, 한국밖에 없어.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자신들의 조상에 대해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심 원장은 “중국에서는 황제를 모신 황능현이 있는데, 15억 인구의 성지가 되어 있다. 모택동, 장쩌민, 후진타오 이런 사람들이 다 가서 제사를 지낸다. 손문이 제사지낸 제문은 교과서에 실려 있다. 일본사람은 자기 시조 천조대신을 이세신궁에서 10년마다 한 번씩 사당을 새로 지어서 모신다.“라고 말하였다.

이어 “세종실록을 보면, 강화도 마니산에 단군 제천석단이 있고 제문이 있다는 기록이 나와요. 하지만, 그런 것이 있어도 홍길동 생가나 성춘향의 유적은 복원되면서도 단군 유적은 복원되고 있지 않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남들은 다 이렇게 하는데, 우리는 자기 조상을 우상이라고 하고 동상을 세우면, 목을 자른다.”라며 이 모두가 ‘식민사관의 후유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원장은, “박달임금을 한자로 쓰면 단군(檀君)이에요. 그런데, 친일사학자가 당골을 한자로 쓴 것이 단군이라 했다. 이것은 폄하시킨 것이다. 일본은 단군을 신화라고 해서 민족정신을 말살시켰다.”라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우리가 문헌과 고고학을 가지고 단군과 고조선의 실체를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다시 일본이 주장하는 실증사학으로서 다시 일본의 실증사학을 깰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고조선의 실체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심 원장은 ‘홍산문화’에 답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고고학계에서도 홍산문화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건국된 것을 증명한다. 제단, 적석총, 여신묘 3가지가 홍산문화의 특징인데, 이 유물들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심 원장은 중국 북경이 청나라와 명나라의 수도인데, 바로 그 수도의 상징이 ‘천단’이라는 것이다. 그는 “황제가 있으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 자기 조상을 모시는 태묘, 황제의 시신을 모시는 능 3대 구조를 갖추거든요.”라며 “홍산에서 발견된 여신묘의 사당이 태묘와 같고, 원형제단이 천단과 같고, 적석총이 명 13능과 같다. 따라서 산해경에서 북해 모퉁이의 나라가 조선이라고 기록했으니 문헌과 유물이 정확히 일치한다.”라고 말하였다.

공생발전, 자본주의 4.0 등은 단군시대 때의 기성품!

심백강 원장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자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이기도 한 ‘홍익인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바로 동양사상과 자본주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21세기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한 홍익인간사상은 무엇일까?

▲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동양사상이라고 하면 부처의 자비, 공자의 인 등이 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반면에, 자본주의는 이익창출이 최고의 목표이다. 자본주의는 경제논리는 강하지만 도덕논리는 약하다. 동양사상은 도덕논리는 강하지만 경제논리는 약하다. 그런데, 홍익인간사상은 널리 인간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고 하였다. 이 점에서 인간을 사랑하라는 동양사상과 다르다.

홍익(弘益)이란, 이익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익을 혼자 즐기라 하지 않고 함께하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말하는 공생발전, 공리주의 다 같은 얘기다. 최근에 ‘자본주의 4.0’도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말해서 대단하다고 하는데, 이미 4천 년 전에 단군의 홍익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이익이라는 것이 혼자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고 함께하면 그게 선이고 인이고 자비이다. 선과 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국조 단군은 사랑하라 하지 않고 이익을 함께 나누라고 하였다. 홍(弘)은 인이고 자비이라면, 익(益)은 현대 자본주의가 강조하는 이익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도덕과 경제를 다 같이 균형 있게 발전시키자는 것이 홍익인간사상이다. 그런 위대한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고조선이 200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금반지를 만들려면, 금부터 캐야 하듯 사료연구가 절실해

심 원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자, 중국 청나라 때 만들어진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학자들이 고조선 사료가 없다고 부정하는데, 사고전서 안에 고조선 사료가 많이 있거든요. 이 부분을 뽑아서 사료집으로 묶어내고 알기 쉽게 번역하여 세상에 내놓고 싶어요.”

하지만, 이후에 말을 잇지 못하는 심 원장의 고민은 무엇일까?

“결국 예산문제이다. 3년 동안 2~3억 원이면 해낼 수 있는데...”

최근에 연구 예산을 받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단군 관련한 연구는 최종 심사에서 탈락하여 낙심이 커 보였다.

그러면서 심 원장은 “(중국의) 동북공정도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세웠으면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식민사관을 청산하지 않아서 그 연장 선상에 동북공정이 나온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이냐. 사료부터 먼저 해야 된다. 금반지를 손에 끼려면, 금부터 캐야 된다. 금 캐는 일도 안 되어 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일단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사료를 정리해서 널리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심 원장은 “역사학계에서만 자기들이 통설이라고 고수하고 있지, 사회 전반의 흐름이 다 바뀌었다. 머지않아 우리의 역사가 바로 서게 된다”라고 자신하였다.

고조선의 역사가 문헌과 유물을 통해 실체로 밝혀지고,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사상’이 현대 자본주의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번 강연에 시청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낼지 주목된다.

 KBS2 개천절 특집 프로그램 -  ‘민족의 시원을 다시 생각한다’

 1강 : 홍산문화를 보면 고조선이 보인다. (10월 3일 밤 12시 35분)
 2강 : 홍익인간과 동양사상 (10월 4일 밤 12시 35분)

 *재방송은 10월 4일 낮 11시 15분, 10월 5일 낮 11시 15분

■ 심백강 교수 프로필
1956년생, 국립대만사대 및 중국연변대학교 대학원 졸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연구직 전문위원, 동양문화연구소 이사장, 민족문화연구원장(현). 제3회 정민학술문화상 수상. 주요저서로는 <제3의 사상(2001년)>, <2000년만에 밝혀지는 한민족의 역사-황화에서 한라까지(2007년)>